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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6:1-6
성경본문내용 (1)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2)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3)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4)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5)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6)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강설날짜 2016-02-07

2016년 마가복음 공부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6:1-6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5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네 가지 비유로 말씀하신 후에, 네 가지 이적 사건을 행하셨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4:35-41), 거라사 광인을 고쳐 주시며(5:1-20),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 하던 여인을 고쳐 주시고(5:21-34),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 주셨습니다(5:35-43). 그러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 기초해서 보면 본 사건은 두 번째 고향에서 배척 받으시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보면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이적을 행하신 후에 가버나움에서 떠나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향은 아마도 나사렛일 것입니다(참조. 마 2:23; 눅 4:16). 마가는 고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그저 ‘고향’이라고만 기술하고 있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3:53-54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마가복음에서 오늘 사건을 기술하는 것과 마태복음에서 기술하는 사건이 시간적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네 가지 하나님 나라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네 가지 이적을 행하신 것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 뒤에 오늘 이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바로 오늘 이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기록은 서로 다른 행적 후에 있은 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두 기록은 같은 시간대에 있은 동일한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고향인 나사렛으로 간 때를 모든 비유를 마치신 뒤에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마태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집중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예수님께서 여러 이적을 행하신 것보다 나중 순서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사렛으로 가시기 직전의 마지막 행적으로 다루어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나사렛으로 돌아오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습니다. 마가는 그 가르치신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처음 나사렛에서 배척 받으셨을 때 회당에서 가르치신 내용을 보면 그 내용이 짐작됩니다. 누가복음 4:18-19절을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61:1절 이하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죄와 그 형벌인 죽음으로 인해 신음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언하신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제 그들에게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시는 은혜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생각해 볼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들고 놀랐습니다. 2-3절을 보면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본래 자기 고향 사람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지혜로운 말씀과 이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라고 하며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은 첫 번째 배척을 받을 때에 나타났던 반응과 동일합니다. 그러니까 나사렛 사람들은 이번에도 전에 예수님을 대하던 때와 전혀 달라진게 없었다는 말입니다. 여전히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불신앙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누가복음 4:22-23절을 보면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을 때도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 요셉의 아들이요, 또한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인 인간 예수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계시되고 있고 이적 행하심에서 계시되고 있는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지혜로운 말씀과 행하신 놀라운 이적을 메시아의 지혜와 권능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목수인 요셉의 아들인 예수에게서 저런 지혜로운 말씀이 나오고, 놀라운 이적이 행하여지는지 이상히 여기며 의문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고향에 돌아오셔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능력을 행하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인간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행하신 이적을 통해서 메시아의 지혜와 권능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여전히 예수님의 부모와 형제와 자매를 잘 알고 있다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3).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무나 친숙한 이웃에 불과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은 놀라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최소한 선지자로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바로 아는 일에 방해가 되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의 이와 같은 모습은 예수님을 선지자로도 믿지 않은 유대인들의 축소판이었습니다.

 

4절을 보면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누가복음 4:23-27절의 말씀의 이해에서 비로소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23-27절을 보면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메시아의 지혜와 권능을 보고서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에 대한 탐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이 품은 생각이 무엇인지를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눅 4:23-24). 이 말씀은 “너희는 ‘의원아! 너를 고치라’는 속담을 내게 적용하여 내가 이적을 행하는데 가버나움 사람들에게만 행하고 있지 않느냐? 그래서 그들에게만 좋은 일을 해 주고 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거기서 행한 이적을 고향인 이곳 나사렛에서 행하여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말 하지만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일러두는데 자기 고향에서 존경받는 선지자는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의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존경 받는 선지자가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엘리야와 엘리사도 고향에서 배척을 받았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과부를 도왔는데 당시 3년 6개월이나 가뭄이 들어 온 땅에 기근이 계속될 때 도움이 필요한 이스라엘인 과부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야가 보냄을 받은 것은 그들이 아니라 이방인인 사렙다 과부였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인 과부를 놔두고 이방인 과부에게로 간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엘리야를 배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들에게로 가지 않고 수리아 사람 나아만을 고쳐 주었습니다. 이것 역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지자 엘리사를 배척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고 저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탐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었던 탐심이란 곧 바알과 아세라를 향한 탐심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에게서 풍요와 번성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뭄이 들어 기근이 들자 그 해결을 바알과 아세라에게 의지했습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의 인생의 의지를 바알과 아세라에게서 찾고자 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엘리야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은혜인 이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91:14-1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건지십니다. 자기 이름을 아는 자를 높이십니다. 자신에게 간구하는 자들에게 응답하십니다. 환난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 환난에서 건지시며, 영화롭게 하십니다. 자신의 구원을 보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버림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의지한 이스라엘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도 탐심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적을 통해서 메시아이심을 나타내셨는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자 하지 않고 단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력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유익을 구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나사렛에서 이적을 행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도 바로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인 메시아는 배척하고 탐심으로 가득찬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탐심 때문에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였듯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곳에서는 존경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라고만 말씀하지 않고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4).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가까이 다가가셔서 그들이 원하는 바인 죄로부터의 구원을 은혜로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5절을 보면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3:58절을 보면 마태는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과 그 행한 이적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메시아 되심을 보지 못하고 따라서 믿지 않음으로 그들에게는 메시아의 권능을 나타내시지 아니하셨습니다. 그것은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그들 가운데 메시아로서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는 아무런 권능도 나타내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거기서는 많은 능력을 행하시는 것을 피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새 출애굽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5b절을 다시 보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는 대로 나사렛 사람 모두가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소수인 몇몇 사람들이지만 자신에게서 메시아의 권능을 바라보며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수하여 고쳐주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새 출애굽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여기서 ‘이상히 여기셨다’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보면 ‘qaumavzw’(다우마조)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5:20절에서 군대 귀신 들렸던 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고침을 받은 후에 데가볼리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큰 일을 전하였을 때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겼다’라고 했는데 그때 쓰인 단어와 동일합니다. 곧 5:20절의 ‘기이히 여겼다’는 말이 ‘qaumavzw’(다우마조)입니다(참조. 12:17; 15:5). 데가볼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막 5:1-20). 데가볼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놀라운 능력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큰 일로 인해 기이히 여길 뿐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데가볼리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데가볼리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큰 일로 인해 기이히 여겼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사렛 사람들의 완고한 불신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이 사건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중요한 교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 자신들도 앞으로 직접 전도 사역을 감당할 때에 이런 배척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두 번째로 고향 나사렛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셨다고 하는 기록이 성경에는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믿을 기회가 한정 없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종종 다시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때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6b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을 떠나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6b). 여기서 ‘두루’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면 ‘kuvklw/’(퀴클로)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둥굴게’, ‘둘러싸듯이’, ‘사방에’, ‘사면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주변의 모든 촌을 방문하셨고, 고의적으로 나사렛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촌을 돌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 후에 고향 나사렛 주변의 모든 마을을 돌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은 7절 이하에서 언급하고 있는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는 사건과 연결이 됩니다(막 6:7-13).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지만 낙심치 않으시고 모든 촌을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부르사 둘씩 둘씩 전도 여행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의 배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 하는 일에 매진하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 예수님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우리로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사람들로부터 배척 받을 수밖에 없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때에 낙심치 않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힘입어 더욱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 하는 일에 힘쓰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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