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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6:7-29
성경본문내용 (7)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8)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9)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10)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11)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12)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13)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14)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가로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 하고(15)어떤 이는 이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16)헤롯은 듣고 가로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17)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18)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19)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20)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21)마침 기회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22)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및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여아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너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23)또 맹세하되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24)저가 나가서 그 어미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미가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25)저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한대(26)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저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27)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 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28)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여아에게 주니 여아가 이것을 그 어미에게 주니라(29)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강설날짜 2016-02-14

2016년 마가복음 공부


열두 제자를 전도 여행 보내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6:7-29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 전도 여행을 보내시는 사건입니다. 마가복음 3:14-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신 이유를 말씀 해 주고 있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6:14-15).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예수님께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신 것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이제까지 자기와 함께 하며 훈련을 받은 열두 제자들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서 전도 여행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0:1-1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도로 삼으시는 사건과 그 열두 사도를 전도 여행 보내시는 일이 같이 기록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서는 열두 제자를 사도로 부르신 사건과 이들을 전도 여행 보내시는 사건이 서로 분리 되어서 나타납니다. 곧 열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신 사건과 이들을 전도 여행 보는 사건 사이에는 시간적인 간극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신 것은 자신을 대신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예수님 자신이 하신 일을 대신 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서 능히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먼저 그들을 자기 곁에 두시고 교육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도 그 일의 일환이었고, 갈릴리에서 그들과 함께 다니시며 복음 전도를 하시고 가르치시고 이적을 행하신 것도 다 그 일의 일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때가 되어 이들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서 전도 여행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구조를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불러 둘씩 둘씩 짝을 지어서 전도 여행을 보내시는 사건(7-13)과 제자들이 돌아와서 전도 여행 보고를 하는 사건(30) 사이에 세례 요한의 죽음(14-29) 사건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마가는 이를 통해서 열두 제자들의 전도 여행을 세례 요한의 순교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는 이를 통해서 제자들이 전도 사역을 감당할 때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기 전에 먼저 마가복음 6:6절 말씀을 보면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시는 배경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셨습니다(막 6:1-6). 그러나 예수님은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시고 나사렛 주변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기를 계속하셨습니다. 그러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과 같이 열두 제자들을 불러 둘씩 둘씩 짝을 지어서 전도 여행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서는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0:1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시면서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뿐만 아니라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함께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시면서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와 병자를 고치는 권능을 주신 것은 새 출애굽의 표적입니다. 스가랴서 13:2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35:5-6절을 보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때가 지금 도래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13절에 보면 제자들이 나아가서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들을 고치는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구원의 때가 도래할 때 반응하는 바람직한 방식은 회개입니다. 이제 새 시대가 도래 하고 있으므로 옛 시대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버리고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부여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보내신 자라고 하는 신적 증거를 보이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부여받은 권능을 나타내어 행함으로써 그들이 하는 일은 예수님이 하신 사역인 사단의 권세에 압제되어 있는 사람들에게서 사단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심으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어떤 자세로 전도 여행을 떠나게 하십니까? 8-9절을 보면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전도 여행 중에 지켜야 할 원칙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고 합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0:5-10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열두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갖추어야 할 자세는 제자들의 사역과 함께 새 출애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지팡이를 가지고 여분의 신도 없이 한 컬레의 신을 신고, 여분의 옷도 없이 한 벌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복장은 출애굽을 연상시킵니다. 출애굽기 12:11절을 보면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 그들로 하여금 신을 신고 지팡이를 손에 잡고 급히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29:5절에 보면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출애굽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40년 광야생활 동안 그들의 의복이나 신이 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먹이시고 입히신 것을 말씀해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전도 여행을 떠나 보내시면서 여분의 신과 옷도 준비하지 말고 떠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새 출애굽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출애굽의 복장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떠날 때 출애굽의 모습을 가지게 하신 것은 오직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떠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0:10절을 다시 보면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일군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인이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10-11절을 보면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지 그곳을 떠나기 까지 거기 유하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더 부유한 사람의 집으로 옮겨 다니면서 편안함을 추구한다면 그 전해지는 복음의 내용과 맞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는 단지 언어만이 아니라 복장과 사역과 그리고 삶의 모습이 복음을 반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자신들을 영접하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곳에서 떠날 때는 “발의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것은 유대인의 관습에 따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 지경을 통과하여 여행을 할 때면 다시 유대 땅을 밟기 전에 자기들의 신발과 의복에 묻은 먼지를 떨어 제거를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이와 같은 행동은 이방 땅의 흙을 불결한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떠난 곳이 이방인 지역이나 사마리아의 고을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이 전도 대상이었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0:5-6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을 떠날 때에는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열두 제자들이 유대인의 땅 내에서 이러한 관습을 시행함으로써 유대인 마을을 이방 지역과 같이 불결한 지역이라고 선언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 지역이라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지역은 이방인 지역과 다름없는 불결한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유대인이라고 해서 정결함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유대인이라도 불결하며,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발의 먼지를 떠는 것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이방인으로 존재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과 18장에 보면 후에 바울은 복음을 거절하는 자에게 심판을 경고할 때 이 상징적 행동을 적용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51절을 보면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8:6절을 보면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심으로써 거절하는 자들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복음의 사도로서 담대함을 가지고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14-16절을 보면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가로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 하고 어떤 이는 이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헤롯은 듣고 가로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열두 제자들의 전도 사역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 지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하는 사역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는 엘리야라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반응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의 반응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이들이 아직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는 않았지만 엘리야나 선지자라고 여기는 반응을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는 반응은 불신앙적인 반응이 아니라 궁극적인 신앙으로 나아가는 도상에 있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롯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14절을 다시 보면 “헤롯 왕이 듣고 가로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16절을 다시 보면 “헤롯은 듣고 가로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헤롯은 제자들의 전도 활동으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기가 목 베어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헤롯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세례 요한이 부활한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례 요한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을 믿었듯이 예수님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자신이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였기 때문에 예수가 세례 요한이 부활한 자라고 할 때에 예수님을 믿기보다는 세례 요한보다 더 위험한 인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동일시하는 견해를 소개한 후에 17-29절에서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저자가 열두 제자들의 전도 여행 사건을 다루면서 왜 이렇게 세례 요한의 죽음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예수님의 운명도, 예수님의 파송을 받아 전도 여행을 떠난 제자들의 운명도 세례 요한과 같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의 삶은 고난의 삶입니다. 수많은 희생이 따를 것입니다. 심지어 순교까지도 각오해야만 합니다. 제자도와 고난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전도인의 삶을 살고자 할 때 반드시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제자의 삶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삶인 것입니다(막 8:34; 마 16:24; 눅 9:23).

 

그러면 세례 요한이 왜 죽음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까? 세례 요한이 죽음의 길로 가게 된 것은 헤롯에게 직언을 하였기 때문입니다(17-29). 17-18절을 보면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형제의 아내를 취한 것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레위기 20:21절을 보면 “누구든지 그 형제의 아내를 취하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이 무자하리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형제가 살아 있을 때 형제의 아내를 취하는 것을 금지한 율법에 근거하여 헤롯이 그의 형제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여 사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지적을 듣고 헤롯은 세례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헤롯은 세례 요한을 참수한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16살이던 B.C. 4년부터 A.D. 39년까지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통치한 인물입니다. 나라의 사분의 일을 다스리는 통치자였지만, 백성들은 그를 왕 곧 분봉 왕이라고 불렀습니다(눅 3:1). 헤로디아는 안티파스의 이복형제 아리스토불루스의 딸이었고, 안티파스의 다른 이복형제 빌립의 아내였습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헤롯 안티파스는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4세의 딸과 이혼하고 헤로디아도 이혼시켜 결혼을 하였습니다(17).

 

19절을 보면 헤로디아도 요한을 원수로 여겨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감히 세례 요한을 죽이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0절을 보면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라고 했습니다. 헤롯은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하였습니다. 또한 요한의 말을 들을 때마다 크게 번민하면서도 달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에게 세례 요한을 죽일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21-29절을 보면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를 하였습니다. 그때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함께한 많은 자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때 헤롯 왕이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 아이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면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헤롯은 맹세하면서까지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겠다고 합니다. 그때 헤로디아는 딸에게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주기를 원한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왕이 근심하였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맹세를 하였기 때문에 왕의 체면상 자기 맹세를 지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절하지 못하고 시위병을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하여 세례 요한이 헤롯에 의해 목 베임을 당하여 죽은 것입니다.

 

30절을 보면 새 출애굽의 역사를 위해서 전도 여행을 떠났던 열두 제자들이 돌아와서 전도 여행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들 열두 제자들은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였습니다. 열두 제자들의 첫 전도 여행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의 자세를 배우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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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마가복음 3장] 한편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 file 막 3:1-6 손재호 2015-11-15 1503
105 [마가복음 3장]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형재요 자매 file 막 3:20-35 손재호 2015-12-06 1961
104 [마가복음 3장] 열 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신 예수님 file 막 3:13-19 손재호 2015-11-29 1542
103 [마가복음 3장] 많은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 file 막 3:7-12 손재호 2015-11-22 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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