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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6:45-56
성경본문내용 (45)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46)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47)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48)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49)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50)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더불어 말씀하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51)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52)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53)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54)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55)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채로 메고 나아오니(56)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강설날짜 2016-02-28

2016년 마가복음 공부


물 위로 걸어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6:45-56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병행구절인 요한복음 6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 한적한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사건(요 6:1-15)과 자신이 생명의 떡이심을 증거 하신 사건(요 6:22-71)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 본문 4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표적을 행하신 후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건너편 벳새다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병행구절인 요한복음 6:14-15절에 보면 그 이유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요 6:14-15).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후에 사람들은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다”라고 하며 예수님을 잡아 임금을 삼고자 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여 앞서 보낸 것입니다.

 

46-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리들과 작별하시고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날이 저물매 제자들이 타고 가던 배는 바다 가운데 있었고 예수님은 홀로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밤 사경(새벽 3시에서 6시 사이)까지 계속되었습니다(48). 예수님께서는 홀로 산에서 기도하시며 거의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그런데 48절을 보면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촉에 의해서 서둘러 육지를 떠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벳새다로 가던 제자들은 밤 사경이 되도록 맞바람으로 인해서 힘들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병행구절인 요한복음 6:19절을 보면 요한은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 여리쯤 갔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육지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밤이 되면서부터 점차 거세게 불어오는 맞바람 때문에 노를 저어 가는데 아주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폭풍과의 싸움은 밤 사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까지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물 위를 걷는 것은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것은 그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표적이 됩니다. 49절에 보면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놀라 소리질렀습니다. 그러나 물 위로 걸어오신 분은 유령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마가복음 본문은 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5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배에 올라 제자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이에 제자들의 마음이 심히 놀랐다고 했습니다. 바람을 아무나 그치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그냥 제자들을 지나가시려고 하셨습니다. 48절을 다시 보면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이 맞바람으로 인해 힘들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에 올라 도와주시지 아니하시고 그냥 지나가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제자들이 처한 상황에 비춰볼 때 아주 어색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까? 배에 올라 제자들을 도와주어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지나가고자 하셨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마가복음의 저자가 왜 이런 이상한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어색한 표현은 구약 성경을 배경으로 하여 볼 때 아주 의도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나가다’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관련해서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33:1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출애굽기 33:22-23절을 보면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19: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에 보면 ‘지나가다’라는 표현이 다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함께 쓰여 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욥기 9:1-11절을 보면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 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이 흔들리며 그가 해를 명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봉하시며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욥기 8장에 보면 수아 사람 빌닷의 말에 대한 욥의 대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물 위를 걸으시며 지나가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구약 곳곳에 ‘지나가다’라는 말이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함께 쓰여 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지나가시려고 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0절에 보면 바다 위를 걸어오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놀라 소리 지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내니’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보면 ‘ejgwv eijmi’(에고 에이미v)입니다. 이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관련되어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내니’라고 번역된 이 헬라어 표현 ‘ejgwv eijmi’는 구약성경 70인 역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체와 관련해서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이사야 41:4절을 보면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곧 그니라”고 했을 때 ‘내가’라는 말은 70인 역에서는 ‘ejgwv eijmi’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사야 43:10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내가 그 인줄 깨닫게 하려함이라”고 했을 때 ‘내가’라는 말은 70인 역에서는 ‘ejgwv eijmi’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내니’라는 표현은 구약성경 70인 역에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ejgwv eijmi’는 또한 출애굽기 3:14절과도 관련이 됩니다. 여기서도 이 표현은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되어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애굽에 종살이 하던 자기 백성에게로 보내어 출애굽을 명령합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묻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출 3:13).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출 3:14).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니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씀하신 ‘스스로 있는 자’가 바로 ejgwv eijmi로 번역 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본문에서 이 번역에 해당하는 단어는 ‘에흐예’(hy:h;א)라는 단어입니다. 이 ‘에흐예’라는 단어를 70인 역에서는 ‘ejgwv eijmi’라는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이름은 ‘에흐예’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 ‘에흐예’의 뜻이 히브리어로 ‘에흐예’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에흐예’는 두 번 반복이 됩니다. 출애굽기 3:14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보면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입니다. 첫 번째 ‘에흐예’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두 번째 ‘에흐예’는 이 이름을 가진 하나님에 관한 서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인 ‘에흐예’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세르’ 뒤의 히브리어 ‘에흐예’가 잘 알려 줍니다. ‘에흐예’는 ‘하야’(hy:h) 동사의 미완료형으로 ‘계속 존재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맥상 ‘에흐예’는 단순히 계속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면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3:12절은 이러한 의미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 여기서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을 때 ‘있으리라’는 말은 ‘에흐예’의 번역입니다. 이때 ‘에흐예’는 단지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문맥상 모세와 함께 존재할 뿐만 아니라 모세와 함께 행동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에흐예’는 단지 존재할 뿐만 아니라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말씀은 그저 유령이 아닌 사람 예수라는 뜻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 ‘에흐예’라고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신적인 존재임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 ‘에흐예’의 뜻이 그러하듯이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고자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함께 계실 때 바람은 그치게 됩니다. 51절을 보면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라고 했습니다. ‘에흐예’되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곧 바람이 그쳤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다 위로 걸어오시고 바람을 그치게 하신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제자들은 심히 놀랐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이러한 제자들의 반응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그들의 마음이 둔하여졌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52절을 보면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 졌음이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 졌다’는 것은 ‘완악하여 졌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진 것은 오병이어의 표적을 깨닫지 못함과 관련이 됩니다. 물 위를 걷는 표적과 오병이어의 표적은 모두 예수님께서 신적인 분 곧 하나님이심을 암시하는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물 위로 걸어오신 표적을 보이신 예수님을 보고도 그들은 당황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이런 놀라운 표적들을 보고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마가는 제자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을 ‘그 마음이 둔하여 졌다’라고 표현했습니다(52). 제자들이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의 표적을 잘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그 마음이 둔하여 졌기 때문입니다. 곧 그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경직성이 새로운 현상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기존의 이론을 바꾸지 않으려는 고집 때문에 새로운 현상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인간이 신일 수 없다는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면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표적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들을 과학주의적인 생각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학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서 완악함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과학주의적인 시각으로 예수님의 표적들을 보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이든, 물 위를 걸으신 표적이든 우리는 모두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참조. 마 19:26).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같은 고정관념을 고집하는 완악함을 버려야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새 출애굽의 역사를 행하셨다면 어찌 오병이어의 기적이 불가능하겠습니까? 어찌 물 위를 걷는 것이 불가능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표적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은 신적 존재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주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야 합니다.

 

53절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는 게네사렛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가 45절에서 본 것처럼 본래 목적지는 벳새다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행은 다른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54-56절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님이 왔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병든 자를 침상체로 메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는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대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대는 자들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의하면 병든 자의 치유는 새 출애굽의 시대가 도래한 표적입니다. 이사야 35:5-6절을 보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때’는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는 때입니다. 이사야 35:10절을 보면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입니다. 이사야 35:4절을 보면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는 포로로 잡혀간 하나님의 백성이 돌아오는 새 출애굽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보기에 치유의 역사는 메시아의 표적입니다. 마가는 치유 사역을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을 통해 새 출애굽이 도래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약속된 메시아이십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4:28-31절을 보면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향해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오신 분이 예수님이신지 아닌지 아직 긴가 민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오라고 하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런데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러자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갑자기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소리질러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신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 위로 걸어오신 이 표적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을 소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놀라운 이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물 위로 걸어오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신 예수님이 삼위 하나님이시요, 성경에 약속된 그 메시아이심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 출애굽의 역사에 참예 하며, 어떠한 풍랑 가운데서도 요동하지 않고 오직 우리 주님을 믿고 따르며, 헌신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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