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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1:21-28
성경본문내용 (21)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22)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23)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24)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5)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26)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27)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28)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강설날짜 2015-09-20

2015년 마가복음 공부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1:21-28

 

마가복음 1:21-39절 말씀은 가버나움에서 보낸 예수님의 하루를 담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중심지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 사역의 네 가지 특징인 가르치시는 일과 귀신을 쫓아내신 일과 병자를 치료하신 일과 복음을 선포 하신 일이 모두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21-28절 말씀은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있었던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나훔의 동네’라는 뜻으로 갈릴리 서북쪽에 위치 해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은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가 지나갔습니다. 가버나움은 정치,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는 세리 레위가 근무하던 세관도 있었습니다(2:14).

 

21절에 보면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 오시자마자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지면 시작되고 토요일 해가 지면 끝이 납니다. ‘회당’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성전 대신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교육을 하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 오시자마자 처음부터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22절에 보면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에 뭇사람이 놀랐습니다. 그들이 놀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서기관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율법을 베껴 써서 보존하고 해석하여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 율법 전문가였습니다. 이들은 주로 자기보다 권위 있는 선배 랍비들의 해석을 인용해서 가르쳤습니다. 서기관들은 단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는데 그쳤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의 근원으로써 말씀의 권위를 가지시고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아는 지식, 지혜가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계시하시고 있는 예수님 자신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게 합니다(참고, 잠 1:7, 마 13:11). 가버나움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아는 깨달음으로까지는 가지 않았어도 ‘서기관과 같지 않다, 그 말이 권세가 있다’고 하는 정도는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여 알아보고 믿는 데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 나라 복음이었을 것입니다(참조. 막 1:14-15). 마가는 회당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가르침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지는 않고 단지 그 교훈에는 권세가 있었다는 사실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23절에 보면 “마침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은 천사 중에서 타락한 무리입니다(계 12:9).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입니다. 본문의 악령은 예배하는 공간에, 예배하는 시간에, 예배하는 어떤 사람 속에 말 그대로 귀신같이 숨어 있었습니다. 가장 거룩할 것 같은 장소와 시간에 귀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권세 있는 말씀이 선포되자 더는 숨어 있지 못하고 소리 질러 대항 하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 질러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24절을 보면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악령 들린 사람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예수님의 정체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습니다. 사실 악령 들린 사람이 알아본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 알아본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과 상관 맺기는 싫어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귀신과 귀신의 영향을 받은 존재는 회개와 믿음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께 대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항하는 것은 단지 심리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단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에 관해 알거나 그 분의 신성을 믿는 것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에 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신성을 믿고 있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멸하려 오신 분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상관 맺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야고보서 2:19절을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귀신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해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통치를 거절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을 지식적으로 안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 분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지식으로만 주님을 알고 있지 않는지, 지식적으로만 주님의 신성을 인정하고 믿는다고 하고 있지 않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식적인 앎을 뛰어 넘어 주님을 인격적으로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 분과 관계를 맺으며, 그 분의 통치를 받아 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악령과 악령 들린 사람을 구별하시면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26절을 보면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습니다. 귀신이 인간에게 들어가는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들을 파괴하고 손상시키고자 함입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귀신들림을 단지 정신질환의 초기 단계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볼 때 적대적인 외부 세력이 이 사람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사단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귀신과 예수님의 충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많이 쫓아내는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힘들여서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을 행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귀신을 쫓아내기에 충분하셨습니다. 귀신을 제압하는 예수님의 권능은 비록 이 세상이 사단의 통제 아래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예수님의 능력이 사단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단은 지금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사단은 순종해야 합니다. 사단의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 안에서 허용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욥의 경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욥기서에 보면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하신 것 이상으로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결국 사단과 그의 하수인인 귀신들은 영영히 불 못에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계 20:10). 예수님은 귀신의 권세를 완벽하게 통제하셨습니다. 잠깐이라도 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세였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귀신은 늘 쫓겨납니다. 귀신이 쫓겨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일은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훼방하니까 귀찮고, 괴롭고 해서 못 견디겠어서 행하신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가르치는 말씀이 권세 있음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들이 느끼는 대로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는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더러운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쳐 주심과 더불어서 의도적으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사단 마귀가 지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인류의 시조요, 대표인 아담이 사단의 시험을 받아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단절됨으로 인간은 사단의 세력 하에서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상실한 그 마음으로 죄를 사모합니다. 그리고 죄의 값인 사망 아래 영원히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의 활동을 방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백성을 구원할 계획을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엡 1장). 그에 따라 또한 사단과 사단의 세력 아래 있는 자들을 유기 할 계획도 작정하셨습니다. 창세기 3:15절은 아담과 그 언약을 맺으시는 것으로서 예언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것으로서, 곧 예언의 성취로서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에 따라 예수님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는 일을 하십니다. 그 최후 결전을 십자가에서 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며,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통해서 그러한 사역을 행하시는 메시아 되심을 계시하여 주시는 일을 해 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당하시지만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죄와 사망을 이기심으로 사단을 굴복시키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가운데 재림하심으로 사단을 영원히 분리, 격리시켜 사망 아래 놓여 있게 하십니다. 따라서 그때까지는 사단은 비록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의 어둠의 세력과 공중에 있는 악한 영들’을 지배하여 이용하여 믿는 자들을 미혹하는 일을 하지만 일시적인 것이요, 또한 실패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구원하신 자기 백성을 사단의 미혹으로부터 보호 하시고 견고히 붙잡으시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귀신은 사단의 이용을 받는 악한 영들입니다. 이들은 사단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거짓말하는 자(요 8:44)로서 믿는 자들을 미혹하여 속이는 일을 합니다. 그런 자들로 있는 대표적인 자들이 거짓 교사입니다. 디모데전서 4:1-2절을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양심이 화인 맞아 외식함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하여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게 하여 예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귀신들리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귀신들린 사람이 있고, 귀신들리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 세상에서 죄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사단의 권세 하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귀신들렸다는 것은 사단의 조정을 받는 악한 영들이 단지 사람의 정신과 지성과 몸을 미혹하고 압제하는 한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며 다니신 각 지역에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일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 곧 구원 사역을 증거 하시는 일로써 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대적하는 사단을 멸하심으로써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것은 메시아 되신 예수님의 구원 사역과 관계하여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귀신들림 병듦에서의 치유와 관계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귀신들린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귀신들린 자인 것은 그들에게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귀신들린 현상이 몸이 압제 받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몸 밖으로 표현되는 사람도, 또는 몸에 두드러진 어떤 현상이 없을지라도 사람은 그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인 마귀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셔서 함께 하심이 없는 한에는 모두다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지배하는 마귀의 역사는 그들이 멸망당하는 날까지 계속됩니다. 이 마귀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압제하여 막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하시는 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합니다.

 

본문의 더러운 귀신들린 자도 그렇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압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인 줄 압니다. 또한 귀신은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도 압니다. 자기들을 영원히 멸하러 오셨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자기들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어떤 권세를 가지신 분이신지, 그 권세로서 무슨 능력을 나타내실 것인지를 보여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온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의 권세는 하나님 자신의 권세입니다. 그 권세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것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은 사단의 나라와 그 권세를 멸하시는 것으로서 입니다. 그 사실을 귀신 스스로가 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심판 주로서 사단의 나라와 그 권세를 멸하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심판하시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로 인도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권세를 행하시는 것을 나타내시는 것으로서 더러운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꾸짖으시며 나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는 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7-28절을 보면 “다 놀라 물어 가로되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에쌈베쎄산’(έθαμβήθησαν)입니다. 이 단어는 두려움이나 공포의 어조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권세를 보고 두려움을 가질 정도로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단과의 전면전에서 자신의 권세를 보여 주시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것에 대해 어떤 공포감을 느낀 것입니다. 예수님의 간단하고 단호한 명령에 귀신은 순종하고 귀신들린 자는 놓임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를 처음 개척할 때도 보면 4-5년 동안 이러한 일들이 수련회 때마다 있었습니다. 참으로 우리도 이러한 역사를 목도하면서 어떤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모습을 보며 어떤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 것이 바로 우리가 느꼈던 것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는 것을 보면서 다 놀라며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라고 하며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일을 권세 있는 교훈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이 권세 있었다는 사실이 22절에 이어서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가는 예수님의 그 교훈의 내용을 몽땅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훈의 내용보다 그토록 권세 있는 예수님의 정체에 더 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르치신 내용은 몽땅 생략하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귀신의 말은 기록할 정도로 마가는 예수님의 정체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구약에 익숙한 유대인에게 거룩한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마가는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교훈의 내용에 초점이 있습니다. 불교나 유교를 보면 부처나 공자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가르침을 본받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빼버린 불교나 유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그다음에 생각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하신 일은 종종 생략합니다(요 21:25).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정체를 깨달아 바르게 신앙고백을 하고 경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정체에 관심 두지 않고 그분의 교훈만 배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경영자 예수’, ‘상담자 예수’와 같은 식으로 그분의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면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 탁월한 인간 정도로 인식하고 마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이런 점을 늘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귀신조차 말씀 한마디로 복종케 하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이토록 권세 있는 교훈을 하시는 이 분이 누구신가?’에 초점을 두고 기록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본받을 분으로 제시하기보다 그 분을 깨닫고 복종할 분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나오기까지 계속해서 ‘이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신가?’라는 관심이 고조 되도록 글을 구성하였습니다. 성경을 배우는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초점이 있습니까? 좋은 교훈을 배워서 마음의 양식으로 삼는데 있습니까? 아니면 단조로운 삶을 살다가 가끔 한 번씩 소리 지르고 놀라기도 하는 맛으로 신앙생활을 합니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예수님의 본질을 꿰뚫는 귀신같은 통찰력을 가지기 위해서 입니까? 결국은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복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안다면 귀신조차 복종하는 예수님께 우리가 복종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 복종하여 삽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게 하시고 그 분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각자의 심령에 충만히 임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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