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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10:23-31
성경본문내용 (23)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24)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25)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26)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27)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8)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29)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30)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31)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강설날짜 2016-06-19

2016년 마가복음 공부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말씀:마가복음 10:23-31

 

오늘 본문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17-22절 말씀을 통해서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의 길을 묻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는 그를 사랑하사 그에게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21). 그때 그는 재물이 많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하고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부자와 구원의 관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재물이 많으므로 슬픈 기색을 하며 근심하며 떠나는 부자 청년을 지켜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다’라는 표현은 ‘구원을 받다’라는 표현과 동일한 뜻을 가집니다. 25-26절 말씀을 보면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다’라는 말이 곧 ‘구원을 얻다’라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23절 말씀은 부자가 구원을 받기가 심히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들은 이 말씀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이 말씀을 거절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말씀을 듣고도 나와 상관없는 말씀이라고 거절하며 반대한다면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4a절을 보면 부자가 구원을 받기가 심히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매우 놀랐습니다. 제자들이 놀란 이유가 무엇일까요? 놀람은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부자가 구원을 받기가 심히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놀랐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제자들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소에 제자들은 부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율법의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재물의 복을 받는다는 신명기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신명기 28:2-6절을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이와 같은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서 부자들은 율법을 잘 지킨 결과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자들은 구원을 받기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기에서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아 부자가 되는 것은 율법이 잘 지켜지는 사회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토지법이나 노예 해방법, 빚 탕감법, 희년법 등이 잘 지켜질 때 그러한 나라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나라 속에서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을 어기는 나라는 국력이 약해지고 가난하게 됩니다. 특히 그러한 나라 속에서는 토지를 잃는 사람들, 노예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자가 되기 심히 어렵습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부자들은 법을 어기며 부를 축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부자들의 재산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서 말하는 ‘재물’은 17-22절에서 언급된 토지를 많이 가진 부자 청년의 경우처럼 율법을 어기면서 축적한 불의한 재산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의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대신 재산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구원받기가 쉽겠습니까? 당연히 어렵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는 생각이 한국교회에 뿌리 깊이 내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란 제자들과 유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처럼 물질 축복의 복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물질의 복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나그네로 살기도 하고, 순교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물질의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거짓 교사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막 8:34).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고 재물의 복을 받기 위해 예수님을 좇는 자들이 있습니까? 성경은 그들이 구원받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고 예배에 참석하고 직분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는 것은 심히 어렵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23).

 

부자가 얼마나 구원받기가 어려운지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명확히 알려 주십니다. 24b-25절을 보면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기서 ‘바늘귀’가 예루살렘 성문 중에 하나로서 낙타가 짐을 내려놓아야 통과 할 수 있는 낮은 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문이 9세기 이전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 한다’는 표현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만약 ‘바늘귀’를 짐을 내려놓은 낙타가 통과할 수 있는 낮은 문을 가리킨다면 낙타는 짐을 내려놓고 성문을 통과한 후에 다시 짐을 지고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잠시 재물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은 후에 다시 재물을 지고 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구원 받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은 그러한 가르침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26절을 보면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이 구원 받기가 심히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도대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부자가 구원 받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불가능하다면 가난한 자가 구원 받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지 않는가?’ 부자들이 율법을 잘 지켜 물질의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한 제자들에게는 그러한 복을 받지 못한 가난한 자들은 더욱 구원 받기가 어렵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7절을 보면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사람의 능력으로 구원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구원 받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구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27). 사람에게 구원이 가능한 이유는 구원의 능력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기 불가능한 부자가 불의한 재물을 포기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8절을 보면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반응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제자들에게 적용하여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게 한 것이 누구로 말미암았습니까?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켜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합니다. 29-3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29-30).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게 합니다(29). 이렇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30).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하십니다. 27절을 다시 보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집이나 전토나 가족마저도 복음을 따르기 위해 포기할 수 있게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재산을 처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우리를 감동시키십니다. 가족이 예수 믿는 것을 반대 할 경우에는 가족 대신에 예수님을 택할 수 있게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또 가족에게만 베푸는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세상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게 하십니다. 이러한 변화를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계신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30).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토대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불의한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복음 대신에 가족을 택한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 적용되어야 할 말씀은 부자가 구원 받기가 심히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러한 구원관은 행위 구원론이 아닙니다. 구원의 조건은 ‘예수님과 복음’임을 29절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29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집이나 토지나 가족을 포기하는 행위는 막연한 자신의 선행이 아니라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행하는 믿음의 실천인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열매가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매는 예수님과 복음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곧 예수님과 복음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원관은 행위구원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과 믿음을 전제로 한 구원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행위 없는 구원을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없는 구원이 있을 수 없듯이, 행위 없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구원하실 수 있지만 행함과 열매 없이 스스로 구원을 확신하는 것은 자기 확신에 불과합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14-17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희년법을 따르면 희년이 될 때 토지와 집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희년법을 따라 토지와 집을 포기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할 때 집과 토지를 백배나 받습니다. 29-30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백배나 받을 수 있습니까? 교회를 통해서 백배나 받는 것입니다. 토지와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성도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교회에 토지나 집을 내어 놓으면 교회에서 이러한 토지와 집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때 토지나 집을 포기한 사람들은 이 모든 재산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누릴 수 있는 것이 백배나 더 많아집니다. 형제, 자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많은 형제, 자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러한 일이 초대교회에 실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2:43-47절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초대교회에는 토지와 집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교회에 내어 놓았습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31절을 보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먼저 된 자’(prώtος, 프로토스)란 권력자를 가리키는 마가복음의 용례(막 6:32; 9:35; 10:44)를 참고해 볼 때 재물에 관해 다루는 문맥상 경제적 권력을 가진 자 즉 부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해 논하는 문맥이므로 부자가 나중 된다는 말은 그들이 구원의 길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부자가 구원을 받기가 심히 어렵다는 23절의 말씀과 평행이 됩니다. ‘나중 된 자’는 ‘먼저 된 자’와 대조되고 있으므로 가난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은 그들이 먼저 구원의 길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만드는 것도 그쳐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원래 그대로 있을 때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불의한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명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막 10:21).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재물을 섬기는 자는 이러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복음은 인간이 싫어하는 것을 명합니다. 이러한 복음은 교회의 문턱을 높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전하면 교회의 문을 닫아야 할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짓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왜곡하면서 존재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단순히 존재하고 많은 사람을 끌어 모우기 위해서 복음을 왜곡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부자들이 슬픈 기색을 하며 근심하며 떠나가는 교회입니까? 아니면 양심의 가책을 덜고 기뻐하는 교회입니까?

 

참된 복음은 전폭적인 반응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목숨과 재물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택하라고 합니다. 그 복음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목숨을 내어 놓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막 8:34). 자기를 부인함에는 불의한 재물의 포기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은 고난의 길이였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 또한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고 한 걸음 한 걸음 가시다가 넘어지신 길입니다. 두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조롱과 멸시를 당하신 길입니다. 저주와 수치를 당하신 길입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신 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고, 하나님의 복음은 그렇게 우리에게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희생을 치루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팔아 이 복음을 사야 하는 것입니다(참조, 마 13:44-46). 단지 물질적인 번영의 복음을 전하고 받아들이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의 가치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 피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 피로인하여 구원을 받았다면 어찌 물질이 없다고 부족하겠습니까? 온 세상을 얻고도 구원을 얻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어도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얻었다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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