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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12:13-17
성경본문내용 (13)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14)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15)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16)가져왔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17)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강설날짜 2016-07-31

2016년 마가복음 공부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말씀:마가복음 12:13-17


마가복음 12:13-44절까지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성전에서 행하신 가르침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13-34)과 무리에게 하신 강론(35-40),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치심(41-44)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일로 시험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막 11:15-19). 이 일로 인해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라고 하며 따져 물었습니다(막 11:27-33).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대답해 주지 아니하시고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 해 주셨습니다(막 12:1-12).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자신의 그와 같은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배척한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예수님과 유대지도자들 간의 갈등이 본격화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3-15절 말씀을 보면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자존심이 몹시 상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뽑아서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여기서 ‘책잡으려’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그류소신’(άgρεύσωσιν)이라는 말로 사냥꾼이 사냥감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허점을 찾아 활을 쏘아 짐승을 잡는 동작을 의미합니다. 마태는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22:15절에서 이를 ‘올무에 걸리게 할까’라고 표현했고, 누가는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20:19절에서 사냥꾼이 사냥감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을 묘사하는 ‘엿보다가’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자존심이 몹시 상하여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애를 쓴 것입니다.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꼬투리를 잡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바리새파와 헤롯당에서 사람을 뽑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평소에는 원수처럼 지내던 헤롯당과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면서 그들을 정직한 사람들처럼 꾸며서 보냈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가증함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유대지도자들의 보냄을 받아서 온 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곤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14-15절을 다시 보면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구약성경이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한 바리새인과 헤롯당에서 온 자들의 질문은 율법의 적용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그들의 질문은 ‘율법은 과연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허락하는가?’하는 것입니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14-15). 그들은 예수님께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기대한 대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그들의 질문 서두에 붙인 예수님에 대한 아부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질문하기에 앞서서 먼저 예수님을 한껏 치켜세우는 아부를 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14). 그들은 예수님을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는 분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여기서 ‘참되시다’라는 말은 ‘ajlhqhv"’(알레테스)라는 말로 숨겨진 바가 전혀 없이 정직하며 순수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권위를 고백하는 용어로 여러번 사용되었습니다(참조. 행 8:13; 롬 3:4; 고후 6:8). 또한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다’라는 말은 상대적인 인간의 판단이나 지위 혹은 상황에 따라서 흔들림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참되시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참되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는 분이다고 한껏 치켜세운 것입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아부를 통해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질문에 대답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님이 참되시고 편벽되이 행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믿었다면 예수님을 시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면서 이렇게 간교하게 말로 아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정치적인 계산을 한다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참되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율법에 따라서 신적 존재로 우상화된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금해야 합니다. 신명기 8:17-19절을 보면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신격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다른 신을 섬기고 그에게 절하는 우상숭배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반대하면 이것은 로마 당국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예수님은 반로마 정치범으로 체포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러한 답변을 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러한 올무를 피하기 위해서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이 가하다고 대답하면 이번에는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이었던 바리새파가 예수님을 정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던진 질문은 어느 쪽으로 대답을 해도 올무에 걸릴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어느 쪽도 택할 수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5b-17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외식함을 아셨습니다. 곧 그들의 악한 의중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15). 이에 그들은 데나리온을 가져다가 예수님께 보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16).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16).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17).


유대는 주전 63년 이후 로마의 영지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후 6년까지도 로마 황제에게 인두세를 내야 했습니다. 인두세는 로마의 은전인 데나리온으로 내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은전에는 가이사의 형상과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황제’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를 신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글씨와 그렇게 신적인 존재로 간주된 자의 형상을 새긴 데나리온은 우상숭배적인 은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세내파와 같은 율법에 철저한 유대인들은 그 은전을 아에 만지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러한 우상숭배적인 물건을 가이사에게 돌려주라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전혀 위배되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반대했다고 트집 잡힐 가능성을 피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답변은 진퇴양난을 벗어나는 지혜로운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진퇴양난을 벗어나는 데서 그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 여기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참조. 신 6:5). 그런데 예수님의 이 답변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속 나라 모두에게 순복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해석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이사의 것들을 가이사에게 돌려주라는 것은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가르침이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이 강조되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와 세속정권의 요구가 조화될 때에는 둘 다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부딪힐 때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예수님의 지혜로운 대답에 그들은 심히 놀라며 기이히 여겼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을 구실을 찾으려했던 그들의 계획은 보기좋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교활한 간교를 부려 예수님을 책잡으려 한 것은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넣어 체포할 음모를 꾸미는데 필요한 구실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소에는 원수처럼 지내던 헤롯 당원을 끌여 들였던 것입니다. 헤롯 당원은 로마의 충복들입니다. 그들은 헤롯 왕을 지지하는 정치적인 집단으로서 로마의 지원과 로마의 제반 영향을 받은 헤롯 가문의 열성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했던 민족주의자들인 바리새파사람들은 평소에는 이들을 원수같이 여겼습니다. 결코 용납하고 함께 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런 헤롯당을 예수님을 책잡아 체포할 수 있는 구실을 찾기 위해서 그들을 끌여 들이고, 그들과 손을 잡은 것입니다. 더욱이 자신들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을 마치 ‘의인인 체’하도록 위장 시켜 보냈습니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20:20절을 보면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인인 체했다’는 말은 ‘정직한 자인 것처럼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그들은 정직한 자인 것처럼 꾸미도록 한 것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이렇게 악의에 찬 비열한 모습까지 서슴없이 행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받치라”고 하신 후에 또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신 것은 그들의 악한 의중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것은 유대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의무가 있듯이, 하나님께도 세금을 바쳐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황제가 데나리온 동전에 자신의 초상과 함께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황제’라는 글을 써 넣어서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게 하면서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에게서 숭배를 받으며 영광을 누리고자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단지 그가 통치하는 영역의 백성들로부터 그가 부과한 세금에 따라서 정해진 세금을 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을 비롯하여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경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 한 분 뿐이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천지의 주재이심을 믿는 믿음을 고백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들의 주가 되신 사실을 확인시켜 그들이 주에게서 나왔고 주로 말미암아 살며 주께로 돌아가는 존재, 곧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인 그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하여야 할지를 말씀해 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본질적인 문제에 놓여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권세에 복종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의도로 나온 이들이 예수님 앞에서 가져야 할 태도는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어야 합니다. 로마 황제의 권세에 복종하여 그에게 정해진 세금을 바쳐나가는 이들입니다만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생각하여야 하고, 그래서 생명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권세에 복종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 그 믿음에 있음으로써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있는 자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을 떠남으로써 예수님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 심히 악한 자의 모습을 더욱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택하신 자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그래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예수님의 권세이며, 생명을 얻게 하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사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묻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입니다. 열심당원들은 데나리온에 새겨진 가이사의 형상과 글을 문제 삼아 이 돈으로 세금을 바칠 것을 정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않았으며, 대항하지만 이것이 세금을 내는 의무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만일에 이것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로 다룬다면,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동전의 한 면에 불교의 다보탑이 새겨져 있는 10원짜리 동전을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가 다 우상숭배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돈으로 각종 세금을 내는 것을 비롯해서 모든 곳에 사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화폐에 이렇게 이방 종교에 관한 것이나 사람을 신으로 다루는 형상을 새겼다고 해서, 이 화폐의 사용 여부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을 숭배하는 문제로 삼으며 논란을 삼고, 세금 납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행위는 결코 온당하지 않습니다. 화폐에 무슨 형상이 새겨져 있으며, 어떤 글이 쓰여져 있든지 간에 국가에 대한 백성의 의무는 이행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화폐는 단지 매매를 비롯한 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사용 수단이며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옳지 않습니까?”하며 묻는 자들에게 데나리온 동전을 보게 하면서 “지금 너희들이 이 데나리온 동전에서 보고 있듯이 너희는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 가이사에게냐? 그렇다면 가이사의 것이 아니냐? 그러면 가이사가 사용하고자 하는 대로 너희가 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이 혹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라는 대답을 피하고 대신에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라고 대답할 경우 이것을 책잡아서 열심당원의 분노를 사게 하여 그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해를 입게 할 구실을 찾고자 한 그들의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일까요? 이중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지도자들의 악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대지도자들이 보낸 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외식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15). 이것은 그들의 악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의인인척 하며 나와서 질문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책잡기 위함이었습니다. 마가는 이 사건을 통해서 바로 이와 같은 유대지도자들의 악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은 곤란한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지혜롭게 대답하심으로서 그들의 악한 의도를 무산시켜 버리셨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기 위해 고심하여 만든 덫을 말씀 한마디로 부수어버리셨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예수님의 길과 생각은 우리 인간의 그 어떤 길과 생각보다 높습니다(참조. 사 55:9). 예수님은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지혜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정화하시며, 유대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로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권위에 복종하며, 그 이루시는 새 출애굽의 역사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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