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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후 2:13-15
성경본문내용 (13)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14)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5)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강설날짜 2010-02-14

2010년 데살로니가후서 공부


바울의 감사!


말씀:데살로니가후서 2:13-15

오늘은 경인년 설날입니다. 설은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명절 중에 가장 중요한 명절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교회 많은 지체들도 고향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을 잠시 쉬고 데살로니가후서를 통해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감사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어떨 때 감사합니까?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가 감사하는 내용과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을 비교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감사 내용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교정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사의 내용은 바로 앞의 내용과 비교되어 나옵니다. 바로 앞의 내용이란 9-12절에 나오는 악한자의 임하는 것 곧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들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악한 자의 역사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보암직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감사는 그러한 보암직한 일들이 나타나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얼마든지 사단의 일들로 위장되어 나타나는 것인지를 10절에 보면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듯이 오늘날도 사단의 일군들이 복음의 일군으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좇아가는 것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그들 마음 속에는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없습니다. 곧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러한 유혹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전쟁이 일어나는 가운데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13-14절을 보면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과 복음으로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내용인가 하는 것을 점검하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란 늘 보암직한 것들이 나타나야 감사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무언가 남들보다 두드러진 업적이 나타나야 감사하고, 남들보다 특별한 능력들이 나타나야 감사하고, 남들보다 뛰어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결국은 자화자찬의 자기 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다하였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일을 이루어 내었는가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이 세상의 보암직한 것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러한 내용들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이러한 감사를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이 참된 감사인지를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 사도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을 보고 이렇게 된 것은 자신이 전도를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택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처음부터 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할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반응이 나타나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누가 얼마나 그 사람에게 잘해 주었는가? 얼마나 정성을 드렸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 전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2b절을 보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아무나 듣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듣고서 ‘그것 참 좋은 소식이네. 나도 믿어야지!’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택이 왜 감사한 것입니까?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우리가 스스로 생명을 선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여 믿음의 길에 들어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여러 가지 종교 가운데서 내가 기독교를 선택하여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종교적인 것입니다. 아직도 자신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죄의 권세 아래 있기에 스스로 빠져 나올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외부에서 끄집어내어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택하심이 아니면 결코 그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전도를 받고서 믿음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주님께서 택하시고, 행하신 일임을 증거하는 현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도 왕이란 사람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만 명을 전도하였다고 하여도 ‘내가 아니요’가 나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절에 보면 바울은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신을 사도로 삼아 주신 것이 오직 주님의 택하심의 은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수고하였지만,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하였지만 그 모든 것이 다 주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택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 한 자의 마땅한 고백인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택하셨기에 택한 자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여서 점점더 거룩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를 닦아서 점점 거룩하여 지는 그러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영이 임함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얻은 것입니다. 또한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곧 거룩함과 구원을 내가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입니다. 얻는다는 것은 나에게서 능력이 없을 때 얻는 것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다면 그냥 얻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얼마나 자신이 무능하였으면 거저 주시는 것을 감사하겠습니까?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데도 거저 준다면 우리의 자존심이 허락지를 않는 것입니다. ‘나를 어찌 보고 이렇게 대접하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이 무능력한 자임을 인정하는 자라면 그저 주시는 것을 감사할 뿐입니다. 이러한 자가 믿음이 큰 자입니다. 믿음이란 표적과 능력과 기적을 행하는 자가 믿음이 좋은 자가 아닙니다. 표적과 능력을 행하고서도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노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마 7:21-23). 그러나 참으로 자신은 주님의 은혜를 얻어야만 하는 가난하고 불쌍한 자임을 알고서 얻는 것을 기뻐하는 자가 진정 믿음이 큰 자입니다.

마태복음 15:21-28절을 보면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여인을 헬라인으로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서 개같이 여김을 받는 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같이 여겼습니다.

그런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님께서 주인의 상에서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는 말씀이 옳다고 했습니다. 곧 자신이 개가 맞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스로보니게 여인은 개와 같은 자신에게 부스러기 은혜라도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이 여인을 보고서 무어라고 하십니까? 28절에 보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시로 그의 딸이 나았습니다. 여기서 보면 무엇이 큰 믿음입니까?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행함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얼마나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를 제대로 알고 주님께 겸손히 긍휼을 구하는 사람이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큰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큰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진정한 감사의 내용인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하신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처음부터 택하시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누구로부터 받은 복음인가를 드러내는 것이지 바울 자신을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얻는 것입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는다는 것은 최후의 심판 때에 나타날 영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미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의 영광이 무슨 영광이었습니까? 바로 십자가의 영광이었습니다. 세상이 볼 때는 가장 저주받아 죽는 죽음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고난의 길이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받는 고난이란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자꾸만 세상의 썩어질 영광으로 바꾸려고 합니다만 그러나 베드로전서 4:14절 말씀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영광의 영이 그 위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도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나타날 영광을 미리 당겨서 맛보게 하시는 방법이 무엇이라는 겁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쉬운 길이 아니기에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15절을 보면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단의 역사를 따라 악한 자가 온갖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이 가득하여도 바울의 말로나 편지로나 가르침을 받은 그 복음을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굳게 할 것은 내가 만들어 낸 그 무엇을 굳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로부터 주어진 것들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주어진 것들이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택하심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지키는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날에 그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두 곳만 보고 마치겠습니다. 베드로후서 1:10-11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행하라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부르시고 택하신 것을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한즉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의 행위를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에베소서 1:3-14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한 이 복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주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예정하시고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6절에 보면 주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감사 제목이 우리의 감사 제목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부르심과 택하심 위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게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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