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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엡 4:13-16
성경본문내용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강설날짜 2013-01-06

2013년 특강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

 

말씀:에베소서 4:13-16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항상 성숙해 가는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는 언제든지 성숙해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다움을 상실해 버립니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어느 정도 진전 해 나가다가 이제 영광스런 교회가 되었겠다고 생각하고 자만에 빠져 부패하고 세속화되어 교회다움을 상실해 버린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 속에 있는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로서의 분명한 자기 신분 인식을 하고 주님이 재림하셔서 극치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성숙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성숙해 가는 교회들은 어떠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인 교회입니다. 13절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라고 했는데 이것은 마치 어떤 그림을 그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키가 어느 정도 되시는데, 우리가 그곳까지 자라가야 된다는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키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모르죠?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그 온전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라고 하는 것은 우리 각자를 말하는 것보다 ‘우리가 다 하나가 되어, 우리가 한 사람을 이루어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한 사람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것도 우리 창원한결교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늘 있는 참된 교회, 곧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신자들을 다 합쳐놓은 교회, 그 교회가 한 사람을 이루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데까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에 까지 이르러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13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자라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을 믿는데 서로 다르게 믿는다면 그것은 성숙해 가는 교회가 아닙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완전히 성숙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해 가는 교회는, 곧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로 교회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데서 곧 사람의 수나 예배당의 크기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 찾아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교회의 성장의 특징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이 사람은 이렇게 믿고, 저 사람은 저렇게 믿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이 사람은 이렇게 알고, 저 사람은 저렇게 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혼란을 일으키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교회라고 하는 특성을 찾을 길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가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르게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이라고 했는데 왜 그것이 특별하게 나타나느냐 하면 기독교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곧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일에 있어서 곧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 일에 있어서 하나인가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성숙해 있는가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들을 다 모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점점 알아가고 있는가, 그런데 그 알아가고 있는 것이 서로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알아가는 것이 서로 같지 않고 다르다면 그것은 성숙한 교회가 아닐 것입니다. 성숙한 교회는 우리 각자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이여야 하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같은 생각으로 굳어져 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슨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한테 다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신 그 기준, 그것에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러한 지식이 함께 모이고, 그러한 하나님을 같이 믿어나갈 때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성숙하는 교회의 모습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이 교회와 관련해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알아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로 모아주시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교회가 성숙하는 요건이요, 그것이 이 땅위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인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 말씀을 배워 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하나가 되는 일에 힘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다 보면 우리의 신앙의 패턴들이 서로 다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적인 면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감정적인 면에, 어떤 사람은 행동하는 면에 강한 그런 다양성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과 아는 일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성숙하는 교회는 바로 이 일 곧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인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일을 위해 지난 십여년을 힘써 왔습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많은 진보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새해에도 계속해서 이 일에 힘써 나가야 합니다.


두 번째, 성숙하는 교회는 세상 풍조에 요동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그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 특징을 14절에서 이야기 합니다. 14절을 보면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고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숙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냐 하면 사람들이 내는 사상이나, 궤술, 소위 시대의 풍조, 정신에 따라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요지부동하고 굳건하게 서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면서 황소걸음처럼 느릴지라도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목표를 향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이 성숙하는 교회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이런 문제 저런 문제로 요동하게 되면 그 교회는 성숙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요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14절 말씀에서는 어린아이가 안 되면 된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의 특징 중에 하나가 이 사람이 이런 말 하면 이게 옳은가 보다, 저 사람이 저 이야기 하면 저게 옳은가 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하는 교회는 첫 번째 특징에서 이야기했던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어져서 무엇을 판별할 수 있으면 이 세상에 어떤 사상이 몰려올 때 그것도 그럴 수 있겠다, 저것도 그럴 수 있겠다 그렇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면에 있어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주 철저한 면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주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받아 들여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련된 어떤 일에 있어서는 곧 진리에 대해서는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한테 부드럽게 대해줘야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믿는가 하는 면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아주 철두철미하게 믿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 중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어떻게 믿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두철미하게 믿지 말고 그냥 우리를 위해서 좋은 이야기로 믿으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본의를 가르쳐 나가거나 배워 나가기보다 긍정의 힘이나 꿈과 같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설교가 그렇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우하다가는 결국에는 교회 안에서 계시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침묵을 하고 말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면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게 우리의 신앙을 말씀에 일치 시켜야만 합니다. 곧 말씀의 본의를 배워나가는 일에 분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언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세상 풍조에 밀려 요동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씀에 철두철미하게 근거한다고 하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경을 좀 많이 써야 되고 말씀이 우리한테 어떻게 계시해 주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교회라고 하는게, 신앙이라고 하는게, 자신의 이런저런 문제를 좀 해결해 주는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 사람들은 그런 방식에 따라서 그런 식으로 제시되는 곳에 많이 몰려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본의를 가르치는 교회가 도리어 배척을 받습니다. 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쏟았던 하나의 사조가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소위 풍요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뭐든지 잘 된다는 것입니다. 잘 된다는 기준이 뭐냐고 하면 세속적인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돈도 많이 벌고, 병도 다 낫고, 예수 믿으면 뭐든지 잘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면만 강조하다보니 사람들이 뭘 잊어버리느냐 하면 예수 믿는 길은 십자가를 뒤 쫒아 가는 길인데, 그것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복 받는 이야기만 자꾸하면 우리의 마음은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곳으로 나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라고 하는 것도, 교회라고 하는 것도 세속적으로 바꾸어 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현상들이 아주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면에 있어서 아주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내 구미에 안 맞아도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철두철미하게 지키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분명히 되어야지 그렇지 않고 사람의 구미에 맞추다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 자체가 얼마나 변하기가 쉬운 사람들입니까? 얼마나 자기 중심적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나의 구미에 맞춰 나가다가는 망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구미에 맞추면 안됩니다. 오직 말씀이 우리에게 제시해 주시는 그 굳건한 터 위에 서 나가야 합니다. 말씀이 믿으라고 하는 것만 믿고, 믿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안 믿고, 그 근거에 따라 나가야 우리가 굳건하게 흔들림이 없이 나갈 수 있고, 그것이 성숙하는 교회이고,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에 더욱 힘써 나가야 합니다.


세 번째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라가라고 합니다. 15절을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는 이 말씀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규정해 주신 의미에서 참된 것을 행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하는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일을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부지런히 찾아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두 가지는 우리 스스로와 관련된 어떤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부터는 우리가 바깥으로 도출해 나가는 참된 것을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그 동기가 사랑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것을 하긴 하는데 그 동기가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동기에서 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곳이니까 한다는 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해 나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런 일에 더욱 신경을 써서 그것이 무엇인지 힘써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참된 일이 무엇인가? 내가 추구해 나가야 할 참된 일이 무엇인가? 교회 전체로써 해 나가야 할 참된 일이 무엇인가? 그 참된 일을 찾아서 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선교일 수도 있고, 구제일 수도 있고, 전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동기가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 것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동기, 곧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 사랑이 넘쳐나서 되는 일이 교회의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게 성숙하는 교회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개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위에 살아가거나, 교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고 했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느껴져서 그 사랑이 차고 넘쳐서 내가 착한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에 한번만이라도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내 현실을 놓고 보면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어떤 존재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존재로 만들어 주시고 어떻게 하셨는지를 하루에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점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위해서 힘써 성경을 봐야 합니다.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늘 묵상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느껴지고, 우리의 심령을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을 행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혼자서 해 나가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네 번째 성숙하는 교회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16절에 보면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서로 연결이 되어져서)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며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숙하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각 지체가 서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강한 사람도 없고, 또 매일 남의 도움만을 받아야 할 만큼 연약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도움을 주고받아야 되는 존재들입니다. ‘나는 강하기 때문에 주기만 해야 된다. 나는 받을 필요가 하나도 없다.’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나는 너무 연약해서 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게 되어있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혼자 서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교인들로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의도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연약성을 잘 아시기 때문에 교회라는 훌륭한 제도를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우리는 혼자 세워 놓으면 신앙생활 잘 안 해 나갑니다. 우리는 이런 자신을 늘 경험을 통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연결 되어져서 이 일을 하게끔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늘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여 서로 연락되어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자꾸 열어야 합니다. 누가 와서 내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을 자주 안 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해서 내 마음을 안 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들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내 마음을 다 열었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내 이웃의 형제한테 내 마음을 못 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도가 된 우리는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가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많은 노력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하는 교회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상적인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서 네 가지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상적인 교회로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 가운데서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 가야 합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그렇게 이상적인 교회로 자라가지 않을 때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올 한해 우리 교회가 더욱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진리에 대해서 철두철미 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일을 힘써 행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서로 연락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 곧 성숙한 교회로 자라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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