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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딤전 4:11-16
성경본문내용 (11)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12)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13)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14)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15)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6)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강설날짜 2013-12-29

2013년 디모데전서 공부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말씀:디모데전서 4:11-16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야 한다는 권면의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형제들을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연습을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미쁘신 말씀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디모데전서 4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디모데가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일군으로써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디모데가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1절 말씀을 보면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것들’이란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준 교훈을 가리키는 것인데, 작게는 구원의 도리와 경건생활에 관해 언급한 4:1-8절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크게는 1-4장의 모든 교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명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paraggevllw’(파랑겔로)라는 단어인데 원래 군대에서의 명령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신적 권위에 입각해서 당신의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명하신 것을 가리킬 때도 자주 사용되었습니다(마 10:5-6; 눅 8:29). 마태복음 10:5-6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했는데, 여기서 ‘명하여’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명하다’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8:29절 말씀에도 보면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명하사’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명하다’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11절 말씀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는 말씀은 확실한 진리에 근거하여 명할 자를 명하고 가르칠 자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즉 목회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권위에 입각해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양육하고 지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이 일을 감당하고자 할 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2-13절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당시 디모데는 상당히 젊은 목회자였습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바울 사도로부터 직접 배움을 받은 소위 개척 조상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입장에서 볼 때 디모데는 어린 양과 같았을 것입니다. 또한 바울 사도와 비교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여튼 나이 많은 원로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새파란 젊은 목사가 와서 목회를 한다고 자신들을 가르치니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그래서 업신여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디모데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명하고 가르치는 일에 많은 심적 부담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나이 많은 원로들의 업신여김으로 인해 심적 부담을 가지고 있던 디모데를 위로하며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써 그 직분에 충성을 다 하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동양권의 문화란 체면문화입니다. 그래서 장유유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젊은 목회자가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을 가르쳐 갈 때 실제로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 많은 원로들이 젊은 목사를 업신여기게 되면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진리를 증거하여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성상 외모를 중요시 여깁니다. 그 사람의 신체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나이, 직업, 출신, 학력, 이력 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큰 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으려면 스카이(SKY) 대학을 나와서 박사 학위를 소지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평가하는 그런 기준을 배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모든 일 곧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모범을 보임으로써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결국 목사의 권위를 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말씀을 위하여 업신여김을 받지 말아야 하고, 말씀을 위하여 모든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모든 목사들에게 해당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관심사도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야 합니다. 목사와 성도들의 관계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여야 하는 것이고, 또한 성도들은 목사로부터 말씀으로 권함을 받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착념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착념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prosevcw’(프로세코)라는 단어인데 ‘주력하라’, 혹은 ‘열중하라’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로 하여금 나이 많은 자들의 업신여김으로 인해서 주눅이 들지 말고 담대히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온 몸과 마음과 시간을 다 쏟아 부으라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고, 성도들이 그 권함과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교회가 든든히 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답게 바르게 세워져 가기 위해서는 목사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힘쓰고, 성도들은 그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받아나가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목사와의 이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그 목사가 전하는 모든 말씀을 ‘너나 잘해!’ 하면서 흘려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누가 손해입니까? 성도들이 손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정말 말씀 듣기를 원하여 목사를 세웠다면 목사가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은 환경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말씀을 받기 위하여 힘쓰고 애쓰는 것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디모데와 에베소교회 성도들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목사들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힘써 가르쳐 가게 하여 주시고, 온 교회 성도들은 더욱 그 가르침을 잘 받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진리 가운데 든든히 서 가게 하여 주시고, 말씀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것은 교회에서 가장 우선적 일일 뿐만 아니라 최종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기록된 말씀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두고 다른 일에 관심이 있다면 벌써 그 교회는 방향과 목표가 흐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것을 통해 목사 자신이나 성도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을 읽는 것은 회중 앞에서 낭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특히 느헤미야 8장에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느헤미야 8:1-8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그 우편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 좌편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서 부흥회를 하는 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새벽부터 오정까지 무려 여섯 시간을 무릇 알아들을만한 자들에게 율법책을 낭독하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섭니다. 그렇게 낭독하고 나서는 그 뜻을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해석하여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권하는 것입니다. 낭독과 설교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르칩니다. 느헤미야 8:13절 말씀에 보면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율법책을 본 것입니다. 그러자 그 때가 초막절이어서 일주일간 초막절을 지키면서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성을 다시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이었던 것입니다. 당시는 제사장과 레위인들 조차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우리교회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 입니까? 이스라엘의 이스라엘됨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오늘날 교회의 교회됨의 가장 중요한 표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선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심의 결과로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생명력이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3:15절에서는 하나님의 집 곧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되면 교회도 잘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인 저나 성도인 여러분의 관심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보면 그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날마다 모여 애찬을 나누고 말씀을 공부하였습니다(행 2:43-47). 초대교회는 말씀의 교제가 풍성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마지막날이 가까이 옴을 볼수록 모이기를 더욱 힘쓰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3-25절 말씀을 보면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모이라고 하셨겠습니까? 말씀의 교제를 통하여 성도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서로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어서 주님 오심을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14-15절 말씀을 보면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가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기 위해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된 그 은사를 조심 없이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은사란 바로 영생에 이르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가 착념해야 하는 것은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 자신은 이미 완벽하였기에 남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끊임없이 그 영생과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진보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에게도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먼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함께 배워가는 것이요, 함께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스승이란 이미 어느 과정을 마스터 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스승이란 예수님 한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다 예수님의 제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나 간에 모두가 주님 앞에서 배우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한 걸음 먼저 말씀을 깨달은 대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함께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변질 되어 있습니다. 제자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성경공부 교제가 얼마나 많이 나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제자훈련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제자로 만든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교회 성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자훈련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고, 권하고, 가르쳐도 결국은 우리교회 잘되기, 우리 집안 잘되기, 우리나라 잘되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나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다시 디모데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네가 네 자신과 네 가르침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삼간다’라는 말은 자신의 언행을 조심하고 살피고 경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증거 하는 본인이 자신을 먼저 살피고 조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의 가르침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도 역시 조심하여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이 과연 무엇을 위하여 가르치는 것인가를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인가? 정말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인가? 늘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마음의 욕심을 따라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가르치기 시작하면 이것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도 천국에 가지 못하면서 남도 천국에 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1-13절 말씀을 보면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왜 화가 임한다는 것입니까? 그들의 외식 때문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성경을 읽고, 권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16절 말씀을 다시 보면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했습니다. 디모데가 자신과 자신의 가르침을 삼가면서 계속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하여 디모데 자신도, 또한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자들도 함께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주님께서 하십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일을 제대로 알고 믿도록 말씀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라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 종에게 은혜를 주셔서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읽고, 권함을 받으며, 가르침을 받는 일에 더욱 힘써 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 가운데 구원함을 받으며, 말씀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은혜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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