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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진기영
성경본문 눅 19:1-10
성경본문내용 (1)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3)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4)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5)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7)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10)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강설날짜 2015-03-15

2015년 3월 15일 한결교회 방문 메시지


유하는 교회, 찾는 교회


누가복음 19:1-10


우리는 세리장 삭개오를 찾아 구원하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영혼의 구원이라는 개인 구원의 차원에서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즉 예수님을 한 선교사로 또는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라는 시각에서 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의 본질적 과제와 관련하여 선교에 힘쓰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선교에 힘쓰는 교회는 죄인을 찾아가는 교회입니다. 본문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는 죄인이라 불리우는 그룹의 대표인 세리장 삭개오입니다. 그는 세리장으로서 받아야 할 세금보다 더 많이 받아 착복하거나 남의 것을 속여 빼앗는 범죄를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공인된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잃어버린 자’라는 말로도 불리웁니다. 그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신앙과 양심과 정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이 ‘순결, 정의’였는데 그는 이름과 달리 다른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죄인의 삶, 잃어버린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7절에 ‘뭇사람’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며 그와 함께 유하거나 상종하는 것을 꺼리는 이른바 의인의 무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앙인이자 기존의 낡은 교회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잃어버린 자를 찾는데 관심이 없는 교회, 죄인을 정죄하고 그들과 무관한 삶을 사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눈에 세상 사람들은 온통 죄인입니다. 동성연애자, 불신자, 우상숭배자, 이교도, 다원주의자, 세속주의자, 무신론자... 그들은 여러 가지 이름표를 붙여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데 성경과 신학의 모든 지식을 사용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뭇사람들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고 혐오합니다. 그들이 정말 무서운 지옥의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불쌍합니까? 사람이라면 측은지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아예 안 만나려고 합니다. 죄인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면 자신이 오염된다 생각하여 그들과 분리된 삶을 삽니다. 그들을 찾는다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마지막 부류의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뭇사람과 같은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행동이 그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로 오신 것은 물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이기는 하였지만, 여리고에 하룻밤 머물 여관을 찾아오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오신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일부러 사마리아를 찾아가셨던 예수님은 이번에는 여리고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자신이 받을 수치와 고통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 때문에 자기 문제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예수님은 여리고를 찾으사 뽕나무 위에 앉은 한 영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이름을 아셨는지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사람들은 아무도 삭개오의 본명을 부르지 않고 대신, 흡혈귀, 똥배, 삭혀죽일 놈, 삭 개아들 등 온갖 나쁜 말로 불렀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 존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부모가 그에게 걸었던 기대와 삭개오의 빗나간 삶, 그로 인한 자학과 고뇌와 갈등과 잃어버린 인생의 의미와 목적, 외로움, 슬픔과 같은 내면세계를 아셨기에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라면, 뭇사람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겠지요? 예수님처럼 죄인과 잃어버린 자를 찾는 공동체이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뭇사람은 잃어버린 자의 겉모습만 보고 정죄하지만 예수님의 공동체는 잃어버린자의 내면의 고통과 그 필요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기 위해서 잃어버린 자의 삶의 자리로 찾아가야 합니다.


인도에는 뭇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는 교회들이 참 많습니다. 인도에는 12억 8천 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들 중 81%가 힌두, 14%가 무슬림, 기독교인은 2.3%입니다. 그런데 다수의 인도 기독교인은 이 95%(10억)의 사람들에 대해 우상숭배자, 이교도라는 이름을 붙여 정죄하며 그들을 찾으려는 시도를 진지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같은 인도인이면서 인도 사람이 하는 거의 모든 축제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제가 있는 신학교는 크리스마스 방학은 1달간이지만 그 외 대표적인 인도의 명절과 축제는 안 지키고 정상수업을 합니다. 왜 명절을 안 지키느냐고 물어보면 힌두 명절, 남의 명절이 아니냐 하고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인도의 뭇사람 교회는 죄인을, 잃어버린 자식과 형제로 보신 예수님과는 달리, 남으로 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3년 반 동안 인도 학생들에게 힌두와 무슬림은 남이 아니라 잃어버린 형제자매로서 우리가 힘써 찾아야 할 사람들임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한 유가족이 지금도 오매불망 자식과 형제를 찾고 있듯이 그렇게 찾아야 할 대상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막상 찾는 일이 쉽지 않고 고달픈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냥 성경만 잘 알면 됐지, 힌두교는 뭐 알 필요가 있나 생각하지만, 지피지기를 해야 상대방의 이름을 알고 부를 수가 있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끔 기독교 복음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선교에 힘쓰는 교회는 죄인과 함께 유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불러 내려오게 한 후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뭇사람은 수군거리며 말했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뭇사람은, 죄인을 정죄하고 그들에 의해 거룩한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죄인의 집에 절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대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뭇사람 공동체와는 달리 예수님 공동체는 죄인과 함께 유하는 공동체입니다. 유하는 공동체란 죄인이 회개했을 때 용서하고 용납하는 공동체입니다. 죄인이 회개하기 전에라도 먼저 다다가 사랑으로 함께 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럴 때 삭개오가 예수님의 사랑에 녹아 회개한 것처럼 사람이 변하는 역사/구원이 일어납니다.


다시 인도의 뭇사람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면 인도교회는 힌두 및 이슬람과 같이 유할 마음과 계획이 전혀 없는 공동체입니다. 만일 잃어버린 힌두 형제자매를 찾고 그들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같이 유할 생각을 한다면 인도 교회는 먼저 술과 고기 먹는 것을 끊어야 합니다. 힌두는 술과 고기를 부정한 음식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힌두 가운데 상층과 하층으로 나눈 것은 직업상 동물을 해치는 직업이 천민, 해치는 것과 거리가 먼 직업이 상층입니다. 2주 전에는 제가 사는 마하라쉬트라 주에서 소를 도축하거나 소고기를 판매 및 소지만 해도 3년 징역형과 벌금을 내는 법이 대통령령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외국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가톨릭은 전통적으로 술을 마시고 모든 기독교인은 소고기, 돼지고기 염소고기 온갖 고기를 잘 먹습니다. 힌두가 기독교회에 못 오는 것은 이렇게 먹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힌두 형제를 찾고 그들과 함께 유하려면 술과 고기를 끊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인도 기독교인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술과 고기 뿐 아니라 기독교인은 신발을 신고 교회당에 들어가 의자에 앉는데 힌두들을 신발은 죽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므로 성전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습니다. 그러므로 신발을 신고 거룩한 신의 면전에서 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는 기독교인들을 힌두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 동북부쪽 기독교인 자매들은 한국 사람처럼 다리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는데, 이것은 힌두들에게 있어서 용납되기 어려운 외설적인 옷차림입니다. 이렇게 힌두들이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잃어버린 힌두 형제자매들과 함께 유하려면 이런 익숙한 습관들을 버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불편한 힌두의 문화적 관습을 수용해야 합니다. 이 점이 아주 어려운 점입니다. “왜 내가 남을 위해 그런 이방의 풍습을 받아들여야 하나? 왜 내가 힌두도 아닌데 그런 불편을 감수해야 하나?” 그래서 뭇사람 교회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가지도 않고 그들의 이름도 모를뿐더러, 그들과 함께 유하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아픔을 감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 구원을 위해 유대인이 되고, 이방인 구원을 위해 이방인 같이 되었다 하는데 인도 교회를 보면 이것은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고 교회에는 없습니다. 왜 성경에만 있고 교회에는 없을까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일이고 나의 일, 교회의 일은 아닌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이 진정 예수님의 일이라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일이며,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교회 이야기를 했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에는 언제나 기존 신자가 다수이고 초신자 또는 구도자가 교회 내에 들어오고 정착하려면 그들이 와서 머물 수 있는 환경, 또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초신자 또는 구도자는 편안하고 / 성숙한 신자는 좀 불편해야 합니다. 반대로 기존 신자가 편하면 편할수록 초신자는 아주 불편함을 느껴 교회에 계속 나오거나 정착하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 내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예배의 내용도 그러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학교와 직장과 사회에서의 생활과 행동입니다. 불신자 친구들과 동료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알고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데 관심을 갖고 그들과 함께 유하는 생활이 없이는 결코 그들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분리해 사는지, 찾아가서 유하는 삶을 사는지, 이것이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따라가는 선교에 힘쓰는 교회인지 아닌지에 대한 시금석이 됩니다. 우리 모두 잃어버린 자를 찾고 함께 유하는 불편한 삶을 기쁨으로 감수함으로써 잃은 자를 찾는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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