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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특강

                                              위로하시는 하나님

말씀:고린도후서1:1-11
요절:고린도후서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 인생은 위로 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환난을 당할 때 우리에게는 위로 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은 인생 그 자체가 환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고해의 바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 할 수만 있으면 환난이 없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환난을 피해가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신자는 환난을 피해가는 사람이 아니라 환난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환난이 있습니까? 그 환난으로 인해 얼마나 힘들고 낙심이 됩니까? 이 시간 우리가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환난을 이기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가 찬송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4절을 보십시오.“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우리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요,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모든 환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자비’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보실 때 진토같이 연약한 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아비의 마음이 없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녀가 환난에 처할 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니까,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환난에 처할 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자식을 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의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돌보시는 자비의 아버지이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능력의 한계로 인해 돌봐주고 싶어도 돌봐주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비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돌봐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자비의 아버지로 모시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바울이 찬송하는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자비와 위로는 깊은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위로’란 말은 일반적으로 어루만져 괴로움을 잊게 한다는 뜻입니다. 원어의 어원을 살펴보면‘위로’란‘곁으로 부른다’,‘도움을 청하다’,‘격려하다’,‘권면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위로란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 곁에 서서 그 사람을 격려하고 권면함으로써 괴로움을 덜어줄 뿐 아니라 그 괴로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바로 이런 일을 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할 때 우리는 요한복음 16장에 나오는 성령 하나님의 이름이 떠오르게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성령 하나님의 이름은 보혜사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고후1:3절에 나오는 위로의 하나님과 같은 단어인 파라클레토스로 되어 있습니다. K.J.V.은 이것을‘the Comforter’, 곧 위로자로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 곧 위로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지만 위로의 하나님으로 우리와 늘 함께 계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으로 인생들에게 보내셨다는 것은 인생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많이 필요한가를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위로가 많이 필요합니다. 왜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것입니까? 인생들에게 환난이 많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는‘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난을 말했습니다. 고난이 많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부터가 고난입니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 병 없이 건강하게 살면 좋을 텐데 크고 작은 질병으로 고통당합니다. 어떤 분은 태어나면서부터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합니다. 질병은 피해 갔는데 불의의 사고를 만나 장애인으로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에만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질병도 피하고 사고도 피했지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먹고 살기 위해서 투쟁해야 하는 것 자체가 고달픈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래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취직을 못해, 실직을 당해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백수의 고통만큼 큰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신용불량자의 나라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카드 빚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사람을 유괴하고 강도짓을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기도 합니다. 그 고통과 환난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환난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서로 위로하고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며 살기도 시간이 없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움과 시기와 인간 갈등과 번민으로 고통스런 인생을 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그렇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평생을 수고와 슬픔 속에 살면서 그나마 그런 인생이라도 오래 살고 싶은데 그 세월이 얼마나 신속히 지나가는지 우리가 날아가는 것을 느낍니다. 결국 죽음이 산자와 죽은 자, 사랑하는 사람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환난이 많은 인생을 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 괴로움과 슬픔의 인생길을 피할 수 없다면 이 길을 가는 동안 누군가 우리를 위로하고 사랑해줄 이만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환난에 처한 사람에게 가장 큰 위로는 가족이나 친구가 기꺼이 함께 해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환난들이 사람의 위로로 위로가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에서 위로를 찾기도 하고, 게임에 몰두함으로 괴로움을 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마약과 쾌락에 탐닉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위로받고 의지할만한 어떤 대상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위로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나 부모 형제라도 실직이나 성적에 대한 비관으로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며 고통 받는 사람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어주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병들고, 사랑하는 가족이 죽는 환난을 당하여 낙심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친구가, 직장 동료가 진정 위로 자가 되어줄 수 있습니까? 빚더미에 올라있는 사람에게 그 누가 위로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갖가지 인생 문제를 앉고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그 누가 진정한 위로 자가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 친구도, 사랑하는 가족들도 진정한 위로 자가 되어 주지 못합니다. 술도, 마약도 근본적으로 우리 인생의 진정한 위로 자가 되어 주지 못합니다. 술은 마실 때는 위로가 되어주는 듯하지만 술 깨고 나면 문제는 그대로 원점에 있을 뿐입니다. 게임과 마약도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게 해 줄 뿐 오히려 이런 것에 중독 됨으로써 새로운 환난을 야기시킬 뿐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위로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진정한 위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만 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비의 마음을 가지사 우리를 위로해 주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어떻게 위로해 주십니까? 먼저 하나님은 죄와 죽음의 환난으로 고통하는 인생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고 영생의 소망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죄와 죽음의 환난으로 슬퍼하며 고통하는 인생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승천 후에는 위로자로서 성령을 보내사 늘 우리와 동거동락하며, 우리 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과 격려를 주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내가 반복하여 범죄하고 그 죄책감으로 고통하며 자학할 때마다 로마서8:33절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성령님께서는 죄의 무거운 짐으로 곤고할 때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곤고한 마음만 위로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51:3절은 말합니다.“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하나님의 위로는 황폐한 이스라엘을 에덴 같이 회복시키시며, 사막과 같은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동산같이 풍요롭게 변화시킵니다. 슬픔과 낙담과 원망함과 눈물 흘리는 소리를,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와 창화하는 노래 소리로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결핍으로 고난 받는 자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며, 참 만족을 줍니다. 지혜가 필요한 자에게는 지혜를 주시고, 용기가 필요한 자에게는 용기를 주십니다. 무엇보다 절망을 이기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랑과 참다운 소망을 주십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지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그리하여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으며,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아니라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자는 위로가 넘쳐서 심지어 다른 사람을 위로할 힘까지 얻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면 그 위로가 우리 중에 역사하여 현재 당하는 고난을 능히 견디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그 위로를 나눔으로써 그 사람도 고난을 능히 견디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나 물질의 위로보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 슬픔과 문제를 가져가 맡기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어떤 고난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슬픔과 좌절을 딛고 일어나 역경에서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줍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 나의 슬픔과 문제를 가져다가 맡김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의 은혜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8-10절은 바울의 자기 간증입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심한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힘에 지나도록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습니다. 그는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 정도였습니다. 그가 아시아에서 무슨 환난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기 못함과 먹지 못함과 돌에 맞음을 당했습니다. 한번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기 때문에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쓰는데 왜 이런 환난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뜻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9절을 보십시오.“---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신뢰가 강한 자였습니다. 바울은 의지와 성실, 그리고 집념과 끈기의 사나이였습니다. 그는 웬만한 환난을 만나도 흔들림 없이 자기 성실과 의지로 장애물을 뚫고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종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심한 고난을 통해 그는 자기가 의뢰하던 모든 것들이 소용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을 것은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한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을 여러 번 겪는 가운데 바울은 이제 자기 능력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주님,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종종 힘에 지나도록 심한 환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불치병을 앓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졸지에 비명횡사하기도 합니다.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기도 합니다. 건강이 나빠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무심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몹쓸 죄를 지어 벌 받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정금과 같이 순수한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나의 강한 자기가 깨어져야 합니다. 자기가 강한 사람은 성실하고 강한 인간성으로 모세나 바울과 같이 귀하게 쓰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단 없는 모세는 혈기 많은 애굽의 왕자이지 모세가 되지 못하며, 연단 없는 바울은 사울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간기초를 가진 사람이라도 이 모든 것이 깨어져 영적인 사람으로 영적인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자기가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능성은 많으나 성장이 없습니다. 자기가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자기 능력의 한계 내에서는 잘하지만 한계를 넘어서는 일에는 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언제나 한계를 넘어서는 생활입니다. 할 수 없는 것에 도전하는 생활입니다. 불가능을 놓고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목적은 자기를 신뢰하는 것이 무너지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인 것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는 두려움을 모릅니다. 한계를 모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습니다. 불가능에 도전합니다. 이를 통해 사망에서 우리를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은 사망과 같은 불가능한 일에서도 우리를 건지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환난의 날에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주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의뢰하는 자는 어떤 환난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우리 인생의 진정한 위로 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크고 작은 환난으로 고통하는 자들을 위로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슬픔과 좌절에서 일어나게 하시길 원합니다. 더나아가 하나님의 위로로 다른 모든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위로의 사람들이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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