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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20:20-27
2004년 교회론 특강

                                            섬김과 교제의 공동체

말씀:마20:20-27, 행2:42-47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은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여온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첫째 방법은, 교회가 공동체로서 예배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지난주에 배웠습니다. 오늘은 마20:20-27절과 행전2:42-47절 말씀을 기초로 섬김과 교제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증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섬김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증시입니다. 마20:20-27절을 보면 세상 나라의 원리와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쳐 가시는 즈음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나아와 경배하며 한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주의 나라에서 자기의 두 아들에게 좌우편 자리를 달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주의 나라에서 좌우편 자리만 주신다면 예수님께서 마시는 잔을 마시겠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이들의 청탁 소식을 들은 나머지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두 제자들에게 분을 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든 제자들이 좌우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들이 예수님을 좇았지만 하나님의 원리를 좇아 사는 삶의 원리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 집권자들처럼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섬김을 받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세상 나라의 원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나님 나라에서는 첫째가 되고, 권세를 부리고, 대접을 받는 자가 큰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나라의 원리는 섬김을 받고, 남을 지배하는 자가 큰 자입니다. 첫째가 되고 대접을 받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이와는 다릅니다. 섬기고 종이 되는 자가 큰 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지배하는 원리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 남을 섬기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사람들에게 잘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 섬기는 삶을 살 때 “하나님 나라가 저런 나라구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는 나라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가 서로 섬기는 그런 나라구나” 하며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섬김의 공동체가 되지 않을 때 이 세상 앞에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를 잘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정치화 되었을 때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비난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섬김의 공동체가 되기보다 세상의 정치 집단과 같이 높아지고 군림하고 대접받고자 하는 정치판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총회장이 되기 위해 돈을 쓰고, 상대방을 비난합니다. 감투를 쓰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잘 증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 섬기는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애양원에 다녀왔습니다. 손양원목사님과 애양원 공동체의 섬김의 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증시되었음을 새롭게 배우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은 나환자들을 자기의 생명을 다해 섬기셨습니다. 입으로 피고름을 짜주었습니다. 육이오 동란 때는 배를 타고 피신을 권유했지만 애양원에 환자들을 놔두고 갈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아 섬겼습니다. 애양원 공동체는 하나님의 섬김의 원리를 순종하여 서로 섬기는 공동체였습니다. 이런 섬김과 섬김의 공동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섬긴다는 것은 어디서 나타나는 것입니까? 생각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섬기는 삶을 살고자 하는 분명한 생각이 없다면 섬기는 삶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삶을 살고자 하는 분명한 생각이 있을 때 그 섬김의 실체가 우리의 마음과 삶의 현장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서만 그치지 않고 그 마음 속 깊은 곳에 이것을 새겨야 합니다. 늘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섬김의 원리를 좇아 섬기며 살겠다”라고 하는 소원이 있을 때 남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섬기는 생각과 마음이 없이는 남들에게 우리의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가 먼저 상대방에게 다가 갈 수 있고, 이야기를 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섬김은 손으로 나타납니다. 교회 공동체는 서로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공동체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스스로 자원해서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원해서 열심히 섬기시는 분이 있을 때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그런 성도를 보면 마음속에서 감사하고 존경하며 저런 분들이 교회 공동체에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섬기는 일은 전도하고 예배를 섬기는 일 뿐 아니라 교회 환경을 예비하기도 하고, 청소를 하기도 하고, 식사를 섬기기도 하고, 우리가 손으로 섬겨야 할 일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섬김이 교회 안에서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섬김의 원리가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섬기는 사람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권세와 물질로 섬김을 받으며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삶 전체로 섬기는 삶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 발걸음으로도 나타납니다. 어디로 가느냐? 섬기려고 하는 일에 가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실현해 나가야만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증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아! 그 공동체에 가니까 사람들이 서로 섬기려고 하는 구나.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렇게 사람들이 성도들이 서로 섬기는 삶을 바라보면서 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 나라의 빛을 비추임 받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일이 다 잘 된다고 해도 섬기는 공동체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가다가 이런 딜레마에 빠집니다. “우리가 이 원리 곧 섬기는 삶의 원리에 충실할 것인가? 이 원리를 희생시키더라도 일이 되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딜레마 속에서 사람 중심으로 가기보다 일 중심으로 갈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다보면 일 중심이 되어서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일 때문에 도리어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날 전도와 세계 선교를 위해, 곧 사역의 성장을 위해 얼마나 일 중심으로 살아왔습니까? 사명 제일주의로 살아왔습니다. 사명을 위해서 사람이 희생되고, 우리의 삶이 희생되었습니다. 물론 사명이 귀한 것입니다. 사명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명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사명 자체를 위한 사명이 되어서 사람들이 사명을 위해 존재하는, 사명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하나님 나라의 증시를 도리어 방해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명 제일주의에 상처를 받고 우리의 공동체를 떠나갔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삽니까? 교회 공동체가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사람을 위해서 입니다. 이 말을 잘 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지난번에도 살펴보았듯이 하나님보다 인간이 앞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요,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교회 공동체를 이루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섬기면서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일 중심이 되어 버리면 섬기는 공동체로서 그 원리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일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과 손과 발을 주어야 합니다. 곧 우리의 마음과 손과 발로, 우리의 전 삶을 통해서 섬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이를 통해서 교회가 섬김의 공동체로서의 참 모습이 잘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증시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일도 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섬기는 삶을 살길 위해서는 많은 희생과 헌신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들은 섬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희생과 손해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섬기는 삶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것이 됩니다. 섬기는 삶을 사는 자들이야 말로 이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상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삶을 사는 자들을 통해 이 세상에 빛을 비추고, 하나님의 나라가 증시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시간에 우리가 이 원리를 마음 가운데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지배하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든 영역에서 이 원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세상 적인 원리가 들어와서 판을 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사람들로부터 “여기도 세상과 똑같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로의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 도리어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 곧 섬김의 원리에 따라 살고자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또 세월이 지나다보면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때 우리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문제들을 정말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고치고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실천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공동체가 교회 동동체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는 공동체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둘째, 교제의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증시입니다. 행2:42-47절에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그랬을 때 온 백성에게서 칭송을 듣고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교회는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교제는 “코이노니아”라는 말인데 신약성경에서는 특히 성령의 친교라는 개념입니다. 이 친교는 하나님 나라의 증시를 위해서 필수요건입니다. 그러면 친교(성령의 친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친교란 쉽게 말하면 교제 곧 신자들의 사귐입니다. 사귐에는 하나님과의 사귐인 수직적인 사귐과 성령을 통한 신자간의 사귐이라는 수평적인 사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개념이 하나가 되고 모두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수직적인 사귐과 수평적인 사귐 이 두 가지가 다 이해 되어야 진정한 친교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수직적인 사귐은 성령과의 교통하심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 속에 성령이 내주할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갖는 사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의 사귐, 또 그리스도와 성령과의 사귐은 신자들 상호간의 사귐, 곧 수평적 사귐의 창조적 바탕이며 기둥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진정한 친교(코이노니아)는 성령에 의해서 수여된 것인데, 우리 인간성의 기능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들의 교회에서 피상적이고도 사회적인 사귐을 갖는 교제(fellowship)라는 말은 성령의 친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교제를 단순히 주말 산악회나 친목회와 같은 수준에 머물러 버리기 쉽습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식사하고 대화하고 운동하는 것은 성령의 교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의 친목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교제는 본 훼퍼가 말한대로 “값싼 은총”과 평행을 이루는 “값싼 교제”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런 교제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교제도 필요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친교는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의 사귐과 같이 특별한 일체감, 목적의 단일성, 넓은 사랑과 상호간의 관심 곧 수직적인 사귐과 수평적인 사귐이 잘 조화를 이룬 사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코이노니아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회심의 즉각적인 기쁨이나 함께 경험한 믿음의 지식 이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말씀 공부에 힘썼습니다.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여 예배에 힘썼습니다. 성도들의 집에 모여 예찬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에서의 교제는 세상의 친목회와는 다른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교제와 같이 이런 성령의 교제가 충만히 이루어 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증시 됩니다. 이런 신령한 교제를 보고 사람들은 은혜를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람들은 초대 교회의 이런 친교를 보고 두려워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초대교회 공동체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하게 되었습니다.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질 때 사람은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마음 문을 열게 됩니다. 그 모임을 사모하여 모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이 아름다운 친교가 충만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곧 진정한 공동체가 회복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늘 고민하고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친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힘써야 합니다. 힘쓰지 않고는 안 됩니다. 저는 이를 위해서 할 수만 있으면 일주일에 한가정과 식사교제를 나누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심방에 힘쓰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말씀공부와 교제에 힘쓰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축복하사 아름다운 교제가 회복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아름다운 공동체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잘 증시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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