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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누가복음 7:11-17
2004년 부활절 특강
                                                         일어나라
말씀:누가복음 7:11-17
요절:누가복음 7:14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할렐루야!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신 부활의 주님을 찬양 합니다. 부활의 승리와 부활의 영광과 부활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소식만큼 감격스럽고 기쁘고 놀라운 소식이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고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죄와 어두움과 사망과 마귀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이 없는 인생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부활이 없는 인생은 오직 죽음뿐입니다. 죽음은 절망이요, 실패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운명이요, 숙명입니다. 우리 인생을 가장 무기력하게 만들고 슬프게 만드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은 모든 희망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부활은 소망이요, 승리입니다. 능력이요, 기쁨이요, 새 생명의 원천입니다. 절망을 아는 자만이 희망을 알고, 고난을 겪은 자만이 영광을 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그가 다시 살아난 기쁨에 비교 할 수 없습니다. 부활은 바로 이렇게 기쁘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확인하게 합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나고, 패배할 줄 알았는데 승리했다는 놀라운 감격이 부활의 감격입니다. 부활은 절망을 소망으로 바꿔 줍니다. 부활은 실패를 승리로 바꿔 줍니다. 부활은 모든 어두움과 무기력을 물리쳐 주시고 능력있는 새 인생을 살게 합니다. 부활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줍니다. 부활의 능력이, 부활의 새 생명이,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하사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절망과 실패를 물리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무기력과 어두움과 슬픔을 물리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새 소망과 새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관을 따라가며, 장례행렬을 따라가며,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 이 여인은 나인성 과부였습니다. 나인성은 가버나움에서 남쪽으로 하룻길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나인성 과부는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운명적인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나인성의 킹카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사고로 죽었는지, 아니면 몹쓸 병에 들어 죽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여튼 이 여인은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젊은 날 과부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과 절망을 맛봤습니다. 삶의 소망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녀의 슬픔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절망하며 생을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들은 그녀에게 하나밖에 없는 독자였습니다. 그 아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인생의 모든 소망을 두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과 돌봄으로 아들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 이제 늠늠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 아들은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좋은데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여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릴테니 조금만 참으세요.’ 이런 아들을 바라볼 때 그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고생이 눈녹듯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까? 어느 날, 그 사랑하는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자신의 모든 삶의 원동력이요, 희망이었던 아들, 그가 죽어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는 것을 보게 된 이 여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 여인의 아픔과 슬픔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는 그녀의 슬픔과 아픔과 절망과 낙심을 짐작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넋이 나간 사람 같았을 것입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보다 더 슬프고 애통하였을 것입니다. 그녀의 슬픔은 누구도 이해 할 수 없고, 누구도 그녀의 슬픔을 위로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눈물을 닦아 줄 분이 계셨습니다. 그녀의 슬픔과 절망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누구셨습니까?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를 이끄시고 나인성을 향해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마침 장례 행렬이 성문을 빠져 나오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관 뒤에 따라오면서 슬피 울고 있는 과부에게 주님이 눈을 고정시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가가 관에 손을 대시며 과부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울지말라.” 그리고는 죽어 관속에 누워있는 청년을 향해 명령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러자 청년이 일어나 앉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을 과부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과부의 눈물이 기쁨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녀의 절망이 소망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에게 “울지 말라” 명하시고, 그의 죽은 아들을 “일어나라” 말씀 한마디로 살리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분이 되십니까? 첫째로, 우리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독자를 잃고 울고 있는 과부를 눈 여겨 보시던 주님께서 오늘날도 우리가 울고 있을 때 우리를 주목하시는 분이십니다. 태어날 때 울고, 죽을 때까지 우는 것이 우리내 인생입니다. 주님은 우는 자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는 자를 주목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가운데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와 아픔을 앉고 남모르게 우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산 너머 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인생은 끝없이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문제없는 인생이 없습니다. 순풍에 돛단 듯이 항상 평탄한 인생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지만 이런 인생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인생 가운데는 항상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인생은 늘 고통하며 절망하며 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울며 왔다가 울며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에게 나인성 과부와 같이 절망하며 슬퍼하며 울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주목하시고 이런 나에게 다가오십니다. 이런 나에게 다가오셔서 상한 마음으로 나의 아픔과 슬픔과 절망하는 마음에 터치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아픔과 절망과 슬픔에 동참하시고 그것을 치료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나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절망이 치유되길 원하십니다. 나인성 과부에게 “울지 말라”하신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셨습니다. 소망의 주님이셨습니다. 이 주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울고 있는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상한 심령에 손을 대십니다. 나의 아픔과 슬픔과 절망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지금도 “울지 말라” 하시며 위로하십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이십니다’(마12:20). 상한 갈대와 같은 우리를 사랑으로 보둠어 주십니다. 사랑의 주님은 ‘울지 말라, 내가 네 눈물을 씻어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나인성 과부에게 다가와 그 관에 손을 대시며 “울지 말라”하시는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측은히 여기며 울지 말라 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가운데 어떤 아픔과 상처와 슬픔과 절망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주님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 눈의 모든 눈물이 사라지게 됩니다. 모든 아픔과 슬픔과 상처가 싸매어집니다. 절망이 변하여 기쁨과 소망이 됩니다. 나인성 과부에게 울지 말라하신 주님은 나의 아픔과 슬픔과 절망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저는 저의 부족함과 허물 때문에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망하며 낙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나에게 우리 주님은 주목하시고 찾아와 울지 말라 하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시며 다가와 나의 상한 심령을 터치 하셨습니다. 아픔 상처를 싸매어 주셨습니다. 저의 눈의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저는 이 주님을 인해 인내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주님을 인해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상한 가슴에 손을 대시며 울지 말라 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둘째로, 죽음에서 부활 하사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주님이 되십니다. 죽은 아들을 인해 슬퍼하는 여인에게 울지 말라하실 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주님 밖에 없습니다. 죽어 관에 누워 있는 청년을 향해 일어나라 하실 수 있는 분은 생명의 주관자 되시고 부활의 능력이 되시는 부활의 주님밖에 없습니다. “내가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라.” 부활의 주님만이 우리 인생을 향해 이렇게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만이 죽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실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만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만이 죽음의 권세에 사로 잡혀 무기력한 인생을 사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실 수 있습니다. 죽은 청년을 말씀 한마디로 살리신 부활의 주님께서 이 시간에도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라.” 죽은 청년을 살리신 부활의 주님은 우리가 일어나길 원하십니다. 죽은 청년을 말씀 한마디로 살리신 부활의 주님은 우리가 일어나 청년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일어나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일어나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인생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육신적으로는 멀쩡하게 살아 있지만 영적으로 볼 때 죽어 관속에 누워있는 청년과 같이 무기력한 인생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죽음이 우리 인생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사망권세가 우리에게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 두려움의 종노릇합니다. 죽음이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가려고 다들 노력합니다. 그러나 부모나 형제나 사랑하는 사람의 급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절망하고 슬퍼하며 공포에 전율합니다. 어떤 책에서 주인공인 노교수가 죽을병에 걸려 누워 있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죽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네. 만일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진실로 믿는다면 사람들은 금방 딴 사람이 될 걸세" 사람들은 죽음을 회피하려고 술과 쾌락과 일로 도피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불안과 공포와 허무의 병을 앓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김자경 오페라단장과 이태영 가정법률 상담연구소장, 윤보선 대통령의 미망인이었던 공덕귀 여사도 있었고, 그 외에 사회 각계각층의 저명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있습니다. 이런 모임을 만들게 된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을 때 그 불안과 공포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함께 이야기하고 친숙해지자'는 취지에서 이모임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진홍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말했습니다. '죽음은 어떤 가능성도 폐쇄되는 마지막 문 닫힘 같은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한없이 답답해지고 불안해진다.' 이렇게 죽음의 권세 앞에 우리 인생은 절망하며 슬퍼합니다. 또한 우리는 죄의 권세에 사로 잡혀 죽은 자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원망과 불신에 사로 잡혀 죽은 청년같이 관속에 누워 있습니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죽은 자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바라보고 절망하며 누워 있습니다. 죽은 청년을 살리신 부활의 주님께서 이런 우리를 향해 명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라." 부활의 주님의 음성이 우리들의 영혼에, 우리들의 마음 속에 능력으로 임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죽은 영혼이 살아나며, 우리의 죽은 심령이 살아나며, 모든 절망과 불평과 원망과 상처에서 일어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새 인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능력있는 인생을 살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인성 과부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눈물을 닦아주신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죽어 관속에 누워있는 청년에게 "일어나라" 명하시고 살려주신 주님은 부활의 주님이 되십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어떤 슬픔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절망과 죽음의 관이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모든 상처가 치유되고 기쁨의 찬양이 넘쳐 나길 바랍니다. 부활의 새 생명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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