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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딤후 1:9-18
성경본문내용 (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10)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11)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12)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13)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14)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15)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16)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17)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18)(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강설날짜 2014-02-23

2014년 디모데후서 공부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말씀:디모데후서 1:9-18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자신을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하는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 말씀에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복음을 믿고,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을 싫어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이야말로 가장 복된 삶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디모데후서 1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디모데로 하여금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디모데에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마다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사람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증거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내용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한 그 내용을 한마디로 한다면 바울 사도의 모든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디모데가 지켜야할 아름다운 것이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바울 사도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바울 사도의 가르침이란 역시 바울 사도 자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가 지켜야할 아름다운 것이란 바로 우리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 계시의 말씀 곧 디모데가 지켜야할 그 아름다운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9-1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과 부르심은 같은 내용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 구원이요, 구원이 곧 부르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거룩한 부르심의 효력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르심은 결코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3-6절 말씀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다 자기 중심적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믿는다고 하든지, 무엇을 안다고 하든지 간에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입니다. 모든 세상의 해석을 자기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의미가 있어야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자기에게 의미가 없으면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답다고 하는 것도 다 자기 기준에 근거해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증거 하고 있는 아름다움이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고 난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악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바가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 이전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좋을 대로 취하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곧 자기의 취향대로, 자기의 아름다움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선하게 여기시고, 무엇을 기쁘게 여기실까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좋을 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들에게서 선하고 좋은 것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선과 악을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은 선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싫은 것은 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악의 기준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인간에게도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인 인간도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을 선이라고 하고, 보기 싫은 것을 악이라고 한 것입니다. 곧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인간이 자기 기준에 근거해서 선하다 악하다고 하고, 자기 보기에 아름답다 추하다고 하는 그 기준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이미 범죄 한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아무리 고상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할찌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전부 반역한 자들의 모습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원하는 아름다움과 좋다고 하는 것들이 다 하나님께는 악한 것이 되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하나님께는 선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홍수 심판 이후에 인간은 자기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행위였습니다. 곧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언어를 혼잡케 하여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바벨탑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떠하였겠습니까? 대단한 역사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만들어낸 거대한 탑이 보기에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악이었습니다.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은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내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들 뜻대로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벨탑을 쌓고 있는 그 현장이 바로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에서 모든 인생들이 하는 일들이란 결국 바벨탑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생들을 한번 보십시오. 그 행하는 모든 일들이 무엇을 위함입니까? 다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위대함을 나타내고, 자기 민족의 위대함을 나타내고, 자기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달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다 인간의 편리함과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흙으로 돌아갈 자신의 육신을 아름답게 보이려고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름답다, 고상하다, 선하다고 하는 것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두 타락하고 반역한 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 보기에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다 부수어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도 불법으로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부수어 버리고 철거해 버립니다. 왜냐하면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기에 아름다운 것은 다 불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다 부수고 철거해 버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철장권세를 가지고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곧 심판의 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 곧 주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모든 것들을 다 부수어 버리시고 멸하시고 마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서 아름답다고 하시는 것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누가 십자가를 아름답다고 하겠습니까? 흉하고 끔찍스럽고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십자가가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 십자가를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목걸이로 만들어 차고 다니고 차안에도 달고 다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십자가가 자기를 죽이는 줄을 모르고 자기를 살리고 지켜주는 부적쯤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십자가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아름다운 것이란 모두 주님께서 하신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구원도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면 결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우리 인생들에게는 구원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나 할 것 없이 영생에 대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들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진시 황제도 영생에 대한 소망 때문에 불로초를 구하려 이 먼 한국에까지 사신들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심성에서 나오는 구원욕구는 타락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본능이기에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하여 바울 사도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9-10절 말씀을 다시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미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붙들려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그 권세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 안에서 무엇을 한들 그것이 죄 아닌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개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께 부정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학개 2:10-14절 말씀을 보면 “다리오왕 이년 구월 이십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고기를 부정한 보자기에 샀기 때문에 그 고기가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체를 만진 자가 거룩한 예물을 만졌기 때문에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정하게 된 모습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의 모습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하게 된 자가 무엇을 한들 부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는 다른 차원에서 의가 공급되지 않고서는 소망이 없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르심은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신 것입니다(엡 1:3-14).

 

그러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택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모든 인간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과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행위가 들어 설 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주님 홀로 일하셔야 됨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계시를 밝히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시고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함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러한 복음의 내용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7-9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를 알고 난 후 바울 사도는 이제까지 귀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다 시시해졌습니다. 자기를 위해 유익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이전에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다 시시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쇠하고 부패하여 갑니다. 인생도, 예술도, 우리가 아름답다고 극찬하는 모든 것들도 결국은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23-25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아름다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도 이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름다운 복음을 지키지 못한 자와 지킨 자가 누구라고 합니까? 오늘 본문 15-18절 말씀에 보면 바울은 그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딤후 1:15-18).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아름다운 것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바울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을 지킨 사람들은 누구라고 합니까?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바울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입니다. 감옥에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바울을 자주 유쾌하게 하였고, 로마에 있을 때에 부지런히 찾아 만났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복음에 대하여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습니까? 모든 삶의 우선순위와 목표가 어디로 향하여 있습니까? 주님의 이 아름다운 일을 참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가장 고상한 것으로 받고 있습니까? 그것으로 인하여 기쁨이 있습니까? 이런 모든 것을 주님께서 허락하심을 믿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의 반포자요, 사도와 교사로 고난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 아니한다고 합니다. 이는 자신이 의뢰한 주님을 알기 때문이요, 자신에게 의탁한 것을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오직 우리 주님만을 의뢰하며, 우리 주님께서 부탁하신 아름다운 것을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 지키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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