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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딤후 4:1-5
성경본문내용 (1)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5)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강설날짜 2014-04-06

2014년 디모데후서 공부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라


말씀:디모데후서 4:1-5

 

오늘부터 우리는 디모데후서 4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말씀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8절, 9-18절, 19-22절입니다. 1-8절에서는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전도인의 직무를 다할 것을 엄히 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9-18절 말씀은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9-22절 말씀은 끝맺는 인사입니다.

 

오늘은 1-5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엄청난 권위를 앞세워서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할 것을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6절 말씀에 보면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이 왔도다”고 합니다. 여기서 ‘관제’란 제물을 바칠 때 그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을 말하는데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제물위에 부어지는 관제와 같이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곧 이 말씀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2절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엄히 명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유언적으로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어느 정도로 엄히 명령을 하고 있습니까? 1절 말씀을 다시 보면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중요한 일을 명할 때 그 일이 중요하면 할수록 중대한 권위를 내세우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 유언적으로 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성도라면 마땅히 인정할 최고의 권위로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이 디모데에게 명하는 이 명령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언급하는 권위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명한다고 합니다. 곧 자신의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의 최종 결정권은 하나님 앞에서 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를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평가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최종적인 평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권세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자신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확정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보다 더 큰 권위를 동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최고의 권위를 동원해서 디모데에게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엄청난 권위를 동원해서 부탁하고 명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2절 말씀을 다시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엄청난 권위를 동원해서 디모데에게 명령하는 것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바울 사도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권위를 다 동원해서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만이 참된 성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된 세계를 말씀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모든 우주와 만물이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것들이 다 주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입니다(골 1:16).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유지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히 1:3). 이것이 다 말씀을 통하여 계시가 되고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섭리와 경륜이 다 말씀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1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 자체의 능력으로 인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 서야만 우리의 모습이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위장하고 위선하고 있는 모든 모습들이 다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입니다.

 

성도란 말씀에 죽고 말씀에 사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립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선포함에 있어서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사람의 눈치를 볼 때가 훨씬 많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증거 하는 자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을 의식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말씀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6-10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자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의식하며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자는 결코 사람을 기쁘시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종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엄히 명령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전도에 대한 사명을 단순히 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은 단지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말씀전파는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경책하며’라는 말은 헬라어로 ‘ejlevgcw’(엘렝코)라는 말인데 ‘논박하다’, ‘훈계하다’, ‘죄를 깨닫게 하다’, ‘잘못을 말하다’, ‘책망하다’, ‘꾸짖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허물을 분명히 알게 하고 그것을 바로 잡아 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경계하며’라는 말은 헬라어로 ‘ejpitimavw’(에피티마오)라는 말인데 ‘비난하다’, 즉 ‘책망하다’, 또는 ‘훈계하다’, 함축적으로 ‘금하다’, 엄격하게 ‘따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죄인을 책망하며 엄히 꾸짖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권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parakalevw’(파라칼레오)라는 말인데 ‘가까이서 부르다’, ‘위로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죄인을 책망하되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곧 위로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자신을 경책하고 경계하며 권하는 말을 듣고 기분 좋아하겠습니까? 요즘 교회가 말하는 전도는 어떻게든 사람의 마음을 끌어서 교회로 데려오는 방식입니다. 교회만 데려다 놓으면 구원이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교회가 사람을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3장에서 말세의 특징에 대해서 우리가 자세히 배웠습니다만 말세의 특징 중에 하나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실 말세의 모든 특징은 다 자기 사랑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의 만족과 기쁨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바른 교훈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를 기쁘게 해줄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4절 말씀에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세의 특징은 노골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모든 권위가 무시당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모든 가치관은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다고 하여도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충족시켜주는 그런 스승을 많이 두는 것입니다.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말씀을 증거 하기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고, 범사에 오래 참고,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모든 일에 근신하며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디모데가 전도인의 직무를 다 하고자 할 때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말씀을 전파하면 고난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필히 고난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전하는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고자 할 때 왜 고난이 있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고자 하기보다 자기의 사욕을 채워줄 허탄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고난은 단순히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으로부터 그러한 배척과 고난을 받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말하는 교회가 바른 교훈으로부터 귀가 멀어져 있는 것이 당시의 실상이었고, 또한 오늘날 우리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말씀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고, 말씀 앞에 책망을 받고, 말씀을 사모하는 시대에는 항상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곧 교회 가운데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관심과 초점을 맞추면 언제나 타락의 길로 달려갔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책망을 받고 경책을 받아서 돌이키기를 좋아합니까? 아니면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귀를 즐겁게 하고 나의 욕심을 채워주는 것을 좋아합니까? 오늘날 이 시대는 오직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사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자들조차도 점점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자기 사욕을 채워줄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에스겔 33:30-33절 말씀을 보면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는 상황입니다. 포로로 잡혀 왔으면 정신을 차릴만 하건만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었던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향하여 인자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에스겔 선지자를 말하면서 그에게서 무슨 여호와의 말씀이 나오는가 하면서 들어보러 가자고 합니다. 모이는 모습은 꼭 하나님의 백성처럼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니 그들의 입술은 사랑을 나타내어도 그 마음은 이욕을 좇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은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좋다는 것은 입술뿐이었습니다. 속으로는 자기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합니까?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습니까? 아니면 나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를 먼저 생각합니까? 우리는 복음으로 자유하게 하는 말씀은 잘 받아들이지만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종노릇하라고 하는 것은 좋아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은 좋지 않게 들리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말씀 앞에서 자기 이욕이 먼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을 증거 하니 사람들이 에스겔을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사랑의 노래는 우리를 기쁘게 해 주는 좋은 오락거리이지만 예언자의 말씀에는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이러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는 것입니까? 그들에게 아예 말씀을 증거 하지 아니하면 말씀이 조롱을 받지 않을 것인데 왜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내는 것입니까? 물론 그 가운데서 자기 백성이 있어서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보이시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에 즉 심판이 임할 때에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신들 가운데 있었던 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33:29절 말씀에 보면 “심판을 행하심으로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의 성취는 오늘날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바른 말씀에 귀를 기우리는 자가 별로 없습니다. 목회자들도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증거 하기보다는 교회를 어떻게 하면 크게 키울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 유행하는 것이 교회성장 세미나입니다. 온갖 교회 성장 프로그램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세미나를 좇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러자 또 한편에서는 바른 말씀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른 말씀을 배우면 교회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수적 성장에만 관심이 있는 이 시대 우리가 엄청난 권위로 디모데에게 명하는 바울 사도의 명령을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으로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전도인의 직무를 다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일을 감당해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기도하고 말씀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의 본의를 드러내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 가운데 깨어 있을 때 이 세상의 죄악의 관영함과 자신의 죄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우리 주님을 소망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7-8절 말씀에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마쳤기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만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의의 면류관을 소망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며,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일에 힘쓰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복된 자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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