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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1:39-56
강설날짜 2019-12-01

2019년 누가복음 공부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찬송

말씀:누가복음 1:39-56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 곧 예수님의 수태 고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수태 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문안 하는 말씀입니다.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예수님의 수태 고지를 받은 마리아는 곧바로 육 개월 전에 세례 요한을 잉태한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향해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하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에 마리아는 자신에게 임한 주의 은혜를 찬송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사람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한 분은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이요, 또 한 분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입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속역사에 택하심을 받고 가장 귀하게 쓰임을 받은 믿음의 여인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 두 여인들의 아름다운 믿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두 어머니 상은 모든 시대의 어머니 상에 영광의 빛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인류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행위 속에 하나님과 협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9-40절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수태 고지를 들은 마리아는 자신보다 육 개월 전에 세례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문안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엘리사벳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41-45절을 보면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문안 할 때에 엘리사벳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리아의 문안 소식을 들을 때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아이가 기뻐서 뛰노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쁨’(ajgallivasi", 아갈리아시스)이란 ‘환희’, ‘극도의 즐거움’을 뜻하는 말로 ‘기뻐 날뛴다’는 뜻입니다. 이 아이가 세례 요한인데 이미 메시아를 증거 할 자로 복중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리아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도 전에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마리아에 대하여 큰 소리로 말하기를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도다.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개 나아오니 이 어찐 된 일인고.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하며 마리아를 축복하였습니다. 배속의 태아도 성령이 충만하여 자신의 메시아를 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어떻게 사람으로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까?

 

우리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문안 할 때에 엘리사벳이 성령 충만하여 마리아를 축복하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가 문안 할 때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하여 먼저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라고 하였습니다(42-43).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여자 중에 복이 있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이도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오니 이 어찌된 일인고”라고 하며 황송해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가리켜 ‘내 주의 모친’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내 주가 누구입니까?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갓 잉태한 아이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갓 잉태한 아이를 향해서 ‘내 주’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42-45절 말씀이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받치는 송가이지만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축복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리아가 잉태한 주께 찬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설명을 해주지도 않았는데 성령이 충만하여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이가 주님이신 것을 알아 본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처녀가 잉태한 것을 보고 그 복중에 있는 아이를 향해서 내 주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온 때는 아직 마리아가 배가 많이 불러온 때도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임신한 사실 조차도 잘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말미암아 마리아가 잉태한 아이가 주님이신 것을 알아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처녀가 잉태한 복중에 있는 아이를 두고 내 주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에 보면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또한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하여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축복하였습니다(45). 세상의 상황으로 보자면 정혼한 마리아에게 임한 복은 복이 아니라 저주스러운 상황입니다. 정혼한 요셉도 모르는 임신을 하였으니 요셉으로부터 버림 받는 것은 당연하며, 율법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한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믿은 여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믿은 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 준 말씀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전하준 말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었습니다(31).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다는 것이었습니다(35). 마리아는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이 말에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38).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정혼한 처녀가 임신하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주의 모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복이란 세상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도구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엘리사벳이 성령 충만하여서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에게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축복한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축복을 받은 마리아는 성령이 충만하여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찬송이 터져나왔습니다. 46-55절을 보면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먼저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다”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내 영혼’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프쉬케(yuchv)’인데, 온전한 의미에서 ‘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내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내 마음’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가 ‘프뉴마(pneu'ma)’인데, 이 말은 내 인격의 본질 부분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한다는 의미입니다. 마리아는 먼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말하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넘어서 그 내면에 있는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영혼이 구주이신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마음이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내 구주’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주’를 ‘하나님 내 구주’로 반복하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주’가 하나님임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마리아는 그 영혼이 구주이신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루어진 그 모든 하나님의 역사의 의미를 깨닫고 그 마음이 그것을 표현하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순전한 찬양이었습니다. 이것은 최고 경지의 예배였습니다.

 

마리아는 계속해서 자신의 영혼이 기뻐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48절에 보면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고 노래 했습니다. 여기서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은 이사야 40:2절의 ‘그녀의 비참한 상태’ 곧 예루살렘의 포로된 상태를 연상시킵니다. 이사야 40:1-2절을 보면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8:33절에 인용된 이사야 53:8절의 ‘비참함 속에서’를 연상시킵니다. 이사야 53:8절을 보면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고 노래한 것은 단순히 자기 자신의 신분의 미천함을 연상시키는 ‘비천함’보다는 고난을 연상시키는 ‘비천함’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권을 잃은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태를 염두에 두고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비천한 자신을 돌아보신 하나님을 노래한 후에 계속해서 하나님을 기리고 있습니다. 49-55절을 다시 보면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의 찬송을 보면 네 가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 이름이 거룩하시다”고 찬양합니다. 49절에 보면 마리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다고 노래합니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49). 여기서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라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요? 시편 111: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거룩하다’라는 말은 ‘지존하다’라는 말과 평행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시편 99: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고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도다.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이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은 위대하시다’고 노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분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고 찬양합니다. 50절에 보면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자’(toi'" foboumevnoi" aujtovn)를 문자적으로 그대로 번역하면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른다”는 말은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서 이방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까지 이른다는 말입니다.

 

셋째는,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다”고 찬양합니다. 51-52절을 보면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그의 팔로’라는 표현에서 ‘하나님의 팔’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사도행전 13:17절에 보면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높이 든 팔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팔’은 출애굽과 관련되어 쓰인 용어입니다. 또한 ‘그의 팔로’라는 표현은 신명기 26:8절에서도 보면 출애굽과 관련하여 쓰였습니다. 신명기 26: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자신이 메시아를 잉태한 사건을 새 출애굽 사건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을 행하셨던 그 능력으로 교만한 자를 흩으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흩으셨고’라는 표현은 민수기 10:35절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라는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이스라엘은 불순종함으로 열방 가운데 흩어짐을 당했습니다. 느헤미야 1:8절을 보면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흩으셨고’라는 표현을 통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시고,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흩으시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노래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사야 2:12절에 보면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3:11절에서는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제2의 바벨론인 로마를 낮추실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교만하다’는 말은 그 생각이 뿌리부터 교만한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표현을 바꾸면서 비슷한 내용을 강조해서 표현합니다. 52절을 다시 보면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비천한 자’는 54절에 명시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와 대조를 이루는 ‘권세 있는 자’는 당시 이스라엘을 억누르고 있던 로마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내용이 계속 다른 표현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는,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다”고 찬양합니다. 53절을 보면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리는 자’는 54절에서 명시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에 대조되는 ‘부자’는 당시 부를 누리던 로마 제국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54-55절을 보면 마리아는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노래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라는 말은 시편 98:3절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라고 노래한 시편 기자의 노래에서 발견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종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신 결과가 무엇입니까? 55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하셨던 약속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는 자비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비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54절의 ‘자비를 기억하심’은 곧 55절의 ‘이 언약을 기억하심’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에 관한 말씀은 72절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 무엇입니까? 그 언약은 창세기 17장에 나옵니다. 창세기 17:7-8절을 보면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멸망한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레 26:40-42, 44-45). 마리아는 바로 이러한 약속을 염두에 두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께서 비천한 자기에게, 그리고 대대로 모든 세대에게 행하신 놀라운 큰 일로 인해서 감격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께서 자기에게 주의 아들을 잉태케 한 것에서 주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고 있습니다. 그 자비를 입게 하시는 주의 도우심이 모든 세대에 걸쳐 대대로 있게 하시는 것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는 주의 일 하심을 깨닫고 감격하여 주의 이름을 높여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셔서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그 큰 일을 우리로 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게 하여 주시시고, 마리아의 찬송이 우리의 찬송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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