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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호세아서 공부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말씀:호세아 7:1-16

 

우리는 지난 시간에 호세아 6:4-11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6:6절에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인애입니다.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인애를 알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인애를 나타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인애를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인애를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해 주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1절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저희는 궤사를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지어 노략질하며”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면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료하시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료하기 위해서 먼저 무엇을 하십니까? 그들의 악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먼저 그들을 정확히 진단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악을 정확히 진단해야 그들을 바로 치료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병든 환자를 치료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환자의 병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진단이 없이는 바른 치료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할 때 곧 오진을 하게 될 때 그 환자를 치료하기는커녕 도리어 병을 더 악화시킬 수가 있고, 심하면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사는 환자의 병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병든 이스라엘을 치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병이 무엇인지,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병든 우리 인생이 치료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만이 우리 인생의 병든 상태에 대해서 정확하게 진단해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인간의 병든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94:9절에 보면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 하시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죄를 지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보지 못한다고 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는 자들에게 대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곧 어떻게 사람을 지으신 분이 그것을 모르겠느냐는 것입니다. 시편 103:14절에 보면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한방의학에서 체질에 따라 약을 처방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사가 사람의 체질을 안다고 하여도 친히 지으신 분이 얼마나 더 정확하게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시편 103편 말씀은 우리 인간을 정확히 아시고 그 죄악을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멀리 옮겨 주셨음을 인하여 찬양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스가랴 12:1b절에 보면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라고 말씀합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며, 사람의 심령을 지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인 우리의 창조자 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서 정확히 진단해 놓은 것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진단서 치고는 너무 분량이 많습니다만 인간의 죄가 얼마나 엄청나고 복잡한지 진단서도 복잡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단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전적타락입니다. 로마서 3: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러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로마서 6: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성경의 진단입니다. 이 진단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우리가 이 진단을 받아들이든지 안 받아들이든지 간에 성경은 분명히 인간에 대한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증거하는 인간의 철저한 죄인 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여기는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봤습니다만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을 때 바리새인들이 이를 보고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9:12절에 보면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하는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본 호세아 6:6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나 번제가 아니라 인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애가 없었기에 이스라엘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9장에서 인용하시면서 자신은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마 9:13). 그러므로 사람이 스스로 죄를 짓지 아니할 수 있다든지, 자신이 스스로 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끝까지 자기 의와 자기 행함의 능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나는 전적인 죄인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선을 행할 가능성을 남겨 놓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호세아서를 보아오면서 무엇을 보게 되었습니까? 얼마나 인간이 자기를 지으신 분에게 돌아오지 않는지를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죄로 똘똘 뭉쳐 있는지 보고자 합니다.

 

1절을 다시 보면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저희는 궤사를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를 지어 노략질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료하시려고 청진기를 들고 이스라엘에게 가까이 오셔서 그들을 진단하시니 에브라임과 사마리아의 죄가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 드러나는 죄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궤사를 행하며, 안으로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를 지어 노략질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궤사란 사기와 거짓입니다. 이스라엘과 사마리아란 북 이스라엘의 대표 지파가 에브라임이고, 북 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면서 동시에 그 중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대표요, 이스라엘의 중심이 이러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온 나라가 사기와 거짓이 가득하고 안팎으로 도적질과 약탈이 성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서인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내가 그 여러 악을 기억하였음을 저희가 마음에 생각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 행위가 저희를 애워싸고 내 목전에 있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러한 악들을 다 기억하고 계시는데도 저희가 마음에 생각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풍성하시기에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용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인생의 체질을 아신다는 말씀을 하는 것은 인간의 연약한 체질을 주님께서 아시기에 주를 의지하고 주께 회개하면 용서하시는데 하나님께서 그 여러 가지 죄악을 보시고 아시고 기억하고 계시는데도 이러한 것에 대하여 그들은 그 마음에 생각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범하여도 하나님께서 즉각 보응을 하시지 않으시니까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냐?’고 하면서 점점더 대담하게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예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하는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죄악의 행위가 이들을 담처럼 에워싸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목전에 곧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3절 이하에서 계속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저희가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방백들을 기쁘게 하도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악으로 왕을 기쁘게 하고, 거짓으로 방백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반란의 음모를 품고서 왕과 장관들에게 아첨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북 이스라엘의 왕은 전부 19명이었는데 그중에 8명이 반란으로 인하여 교체되었습니다. 반란은 단지 왕조만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후환을 없애기 위하여 그들의 가족까지 전멸시켜 버리는 것이 반란인 것입니다. 이들의 이와 같은 죄악된 모습을 호세아 선지자는 빵 굽는 화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면 “저희는 다 간음하는 자라. 빵 만드는 자에게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저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교 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고 합니다. 빵을 굽는 화덕이란 흙이나 돌로서 화덕을 만들어 불을 피워 달아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죽한 밀가루가 부풀어 발효가 되면 그 화덕에 붙여서 빵을 굽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떡을 주로 쪄서 만듭니다만 이스라엘이나 건조한 지역에서는 주로 화덕에 빵을 구워먹는 것입니다. 그러니 늘 화덕에 불을 피워두는 것입니다. 단지 불을 피우지 않을 때는 빵이 발효가 덜 되었을 때에만 잠시 그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화덕이 뜨거운 것처럼 죄를 짓는 일에 늘 달구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화덕이 식어져 있다면 다시 불을 피워서 달구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늘 달구어져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빵을 굽을 수 있듯이 이스라엘은 언제든지 죄를 지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곧 그들은 죄짓기에 빠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화덕이 아니라 무엇이라는 말씀입니까?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늘 죄를 짓기에 빠르다는 것입니다. 늘 죄 지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 피를 흘리기에 빠르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9-18절을 보면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죄가 무엇입니까? 호세아 선지자는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 죄는, 간음입니다. 4절을 다시 보면 “저희는 다 간음하는 자라. 빵 만드는 자에게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저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교 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다 간음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것은 여기에 대해서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빵 만드는 자에게 달궈진 화덕과 같다고 합니다. 그들은 늘 성욕에 달아올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들으면 그래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희는 다 간음하는 자라’고 하는 이 성경 말씀에서 ‘다’라는 글자를 지워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간음을 보고서 우리는 뭐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나에게 닥치지 않았을 뿐이지 나도 그러한 환경과 여건이 주어졌다면 우리인들 별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 입니다. 우리도 다 간음하는 자입니다. 이미 마음으로 주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고 사는 것이 모두가 간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죄는, 배신과 반란입니다. 5-7절에 보면 “우리 왕의 날에 방백들이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나며 왕은 오만한 자들로 더불어 악수하는도다. 저희는 엎드리어 기다릴 때에 그 마음을 화덕 같이 예비하니 마치 빵 만드는 자가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의 일어나는 것 같도다. 저희가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저희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죽이기를 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배신과 반란들이 지도자들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반 백성들도 하나님의 인애와 신실하심은 사라지고, 공평과 의도 사라지고, 오직 사기와 거짓말과 강포만 가득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온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데도 어느 누구하나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진단하신 이스라엘의 실상인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뒤집지 않는 전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8). 여기서 ‘전병’이란 프라이팬 같은 곳에 얇게 밀가루 반죽을 펴서 굽는 떡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전(지짐)을 굽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지짐)을 뒤집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한쪽은 불에 타고 한쪽은 생 밀가루입니다. 그러면 도저히 먹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뒤집지 않는 전병같이 되어 버린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8-12절을 보면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찌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저희가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준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뒤집지 않는 전병같이 되어버린 그들의 죄악은 혼잡 됨과 이방의 세력을 의지함과 교만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혼잡 됨’이란 이방인과 결혼하여 혼혈아가 나오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이방인과의 결혼만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도 이방인과 혼잡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혼잡된 것을 받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뒤집지 않아서 먹을 수 없는 전병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쪽은 종교적 위선이고, 또 한쪽은 이방과 다름없이 세속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느 쪽도 쓸모없어진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만을 힘으로 삼고 의지하여야 하는데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고 앗수르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주변의 강대국들에 기대어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의 세력을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요, 영적인 간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새 그물로 새를 잡듯이 이들을 떨어뜨려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전에 선지자들이 공회에서 증거한대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곧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13-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선지자들을 보내고 돌아오라고, 고침을 받으라고 말하여도 끝끝내 돌아오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화를 선포합니다. “화 있을찐저! 저희가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찐저! 저희가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저희를 구속하려 하나 저희가 나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고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내가 저희 팔을 연습시켜 강건케 하였으나 저희는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 방백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인하여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고 했습니다(호 7:13-16).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남의 이야기 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치료를 받으려면 이러한 우리의 실상을 먼저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기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전적인 죄인임을 알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진단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이며, 또 치료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6:1-3절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속히 고쳐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이 주님 앞에 오늘도 빈손 들고 나아가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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