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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호세아서 공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말씀:호세아 8:1-14

 

오늘 우리는 호세아 8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만 호세아 7: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발하기를 ‘뒤집지 않는 전병’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이스라엘 가운데 종교적인 의식만 남아 있는 것은 마치 전병을 뒤집지 않아서 한쪽은 새까맣게 타버리고, 한쪽은 생 밀가루 그대로인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의 사상과 혼잡이 되어버린 것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나팔을 불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a절에 보면 “나팔을 네 입에 댈찌어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팔을 내 입어 대라’라는 말은 전쟁에서 나팔을 불듯이 나팔을 불라는 말입니다. 곧 대적이 독수리처럼 달려들 것이니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진멸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28:45-51절만 보겠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네게 명하신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너를 따르고 네게 미쳐서 필경 너를 멸하리니.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적과 감계((tpe/m, 모페트, 징조.표적과 동일한 의미)가 되리라.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 곧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유치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서 필경은 너를 멸망시키며 또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소의 새끼나 양의 새끼를 너를 위하여 남기지 아니하고 필경은 너를 멸절시키리라”고 했습니다. 특히 49절 말씀에 보면 호세아서 본문에서 처럼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범죄 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심판을 받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나팔을 네 입에 댈찌어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저희가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싫어 버렸으니 대적이 저를 따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곧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심판을 받을 때에 우리가 ‘주를 아나이다’라고 하여도 이미 그들은 선을 싫어하여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때에 ‘우리가 주를 아나이다’라고 하여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적이 따를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선을 버리고 살면서 그날에 ‘우리가 주를 안다’고 부른다고 한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마태복음 7장에서 ‘주여 주여’하는 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7:22-23절을 보면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현재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선을 버리고 살면서 그날에 우리가 주를 안다고 부른다고 하여도 주여 주여 하는 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 한 그 범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4-6절을 보면 “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저희가 방백들을 세웠으나 나의 모르는 바며, 저희가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파멸을 이루리라.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리웠느니라. 내 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저희가 어느 때에야 능히 무죄하겠느냐.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공장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부숴뜨리우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범죄 사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왕과 방백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4a절을 다시 보면 “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저희가 방백들을 세웠으나 나의 모르는 바며”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왕과 방백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웠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세운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과 권력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우상을 만들어 정책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것이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곧 그들이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섬기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의 범죄 사실이나 오늘날 우리들의 사는 모습이나 별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여전히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보다도 눈에 보이는 정치와 종교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4b-6절을 다시 보면 “저희가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파멸을 이루리라.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리웠느니라. 내 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저희가 어느 때에야 능히 무죄하겠느냐.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공장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부숴뜨리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과 금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금송아지가 자기들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금송아지는 참 신이 아닙니다. 우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상숭배에 빠진 그들에게 노가 타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 34:14).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들을 부숴버리십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왜 우상을 섬기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우상이 자신들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과 늘 함께 동행하는 삶이 어려운 것이지 일주일에 한번 제사하는 일이란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한번씩 나와서 절하고 제물 바치고 돌아가면 그 다음부터는 내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의 편리성입니다. 이것을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 대체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상의 금송아지를 부수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는 부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을 어떻게 스스로 부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대적이 쳐들어 와서 부셔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죄악을 좀더 상세히 보자면 정치와 종교의 문제입니다. 정치적으로는 그들이 외세를 업고자 하는 것입니다. 8-9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이미 삼키웠은즉 이제 열국 가운데 있는 것이 기뻐하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저희가 홀로 처한 들 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를 의지한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간음이요, 우상숭배였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종교적으로는 제사를 더 잘 드리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선입니다.

 

그러면 이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면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요, 설혹 맺힐찌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허사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애를 쓰고 노력하여 심었는데 그것이 바람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 보면 전도서 기자는 “헛되고 헛되니”라는 말을 하면서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전도서 1:2절을 보면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전도서 1:14절에 보면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 손에 붙잡을 수 있는 것들을 가졌다고 큰 소리를 치더라도 그것이 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강대국 앗수르가 자신들을 지켜 줄 것 같아서 그들에게 의지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이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들로 인하여 망하게 되고 비참한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노력과 애씀이 모두가 허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두어야 하는 것입니까? 호세아 10:12-13절을 보면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완악한 자신들의 마음 밭을 기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을 밭 갈아서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것을 심고 있습니까?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입니다. 갈라디아서 6:6-10절을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둔다고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거두지 못하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도 거두고 육체의 것들도 다 거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심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미 썩어진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썩어진 것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이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두는지 너무나도 분명하게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학생이 내일 시험을 치는데 같은 지능을 가진 아이라고 할 때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시험 점수를 잘 받겠습니까? 아니면 예배당에 와서 철야금식하며 기도하는 학생이 시험 점수를 잘 받겠습니까?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열심히 공부한 아이가 시험 점수를 잘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가 돈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헌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적금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큰 사고가 나서 한꺼번에 다 날려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염려 때문에 헌금을 한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잃어버릴까봐 미리 보험을 들듯이 헌금하는 것이 무슨 하나님께 헌금이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틀리는 것입니다. 돈을 모으려면 헌금하지 않고 저금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여 그것을 의지하면 한번에 불어 버리시는 것이 은혜입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의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은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눈으로 보면 썩어진 것이지만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위하여 심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관심사가 어디로 가는가를 보면 아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저희가 열방 사람에게 값을 주었을찌라도 이제 내가 저희를 모으리니. 저희가 모든 방백의 임금의 지워준 짐을 인하여 쇠하기 시작하리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열방 사람에게 값을 준다는 것은 강대국에 조공을 바쳐서 자기들이 처한 어려움을 타개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의 힘들을 의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주고 동맹국이라고 약속을 하였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짐만 가중 되었습니다. 그로인하여 더욱 괴로움을 당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동맹관계라고 하지만 미군이 사용하는 군사시설의 땅을 제공하고 비용도 상당부분 부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곧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이런 것을 의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도다”라고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먼저 종교적인 문제를 말합니다. 에브라임이 제단을 많이 만듭니다. 그러나 제단이 많아질수록 범죄 하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제단이 많아지는데 왜 죄를 더 많이 짓는 것입니까? 그들은 제단을 많이 만들면 하나님이 좋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제단을 많이 만들어 하나님께 제사를 열심히 지내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이 정성을 보시고 복을 주시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 자체가 우상을 섬기는 방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애를 원하십니다(6:6). 그런데도 이들은 제단만 많이 만들어서 제사를 열심히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교회별로 교세 경쟁을 하는 것이나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저희가 제물을 바치고서는 그것으로 자기들이 먹고 잔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호와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벌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열국에 포로로 잡혀가고 애굽까지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그들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과 견고한 성읍들을 만든 것입니다. 왕궁과 견고한 성읍을 의지하고 그들의 지으신 자를 기억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율법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12절에 다시 보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있어도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수십만 가지로 듣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의 모습은 왜 이 모양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당이나 천국 가는 데나 써먹고 세상을 살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관계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말씀은 말씀이고 나는 나입니까? ‘나는 그래도 이 땅이 좋아!’ 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정치, 종교, 모든 분야가 모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위엣 것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을 위한다고 말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결국은 바람을 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7절을 다시 보면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요, 설혹 맺힐찌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고 합니다. 그들이 바람을 심은 결과 광풍을 거둘 것이라고 합니다. 광풍은 미친바람입니다. 그들은 미친바람을 거두는 것입니다. 참으로 모든 것이 허사인 것입니다. 멸망을 거둘 뿐입니다. 그때서야 ‘아! 내가 바람을 심었구나’라고 후회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바람을 심지 않고 의를 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긍휼을 거두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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