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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호세아서 공부

 

긍휼이 불붙듯 하도다

 

말씀:호세아 11:1-12

 

오늘은 호세아서 11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가 3장에서 살펴본 대로 음란한 여인 고멜은 호세아 선지자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서도 다시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이것은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다시 가서 값을 주고 고멜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호세아 선지자가 순종하여 가서 은 삼십을 주고 고멜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인간이 하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대비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악이 얼마나 고질적인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무궁하신 긍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의 고질병이 어떠하며, 이러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궁하신 긍휼이 어떠한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그 긍휼을 덧입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아들이라고 합니다. 내 아들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4장에 처음 나옵니다. 출애굽기 4:22-23절을 보면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1절에서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여 애굽에서 불러내실 그때는 아직 어리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1). 여기서 ‘어리다’라는 말은 아직 이스라엘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무엇을 이루어 낼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내신 것은 그들이 강하거나 잘난 것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7:7절에 보면 오히려 그들은 다른 많은 나라들보다 작은 나라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들로 삼아 불러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그들을 사랑하심과 그들의 조상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7:6-8절을 보면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신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거나 잘 났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상 만민 중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만민 중에서 가장 작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속량하신 것은 그들을 사랑하심을 인함이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열조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속량하신 것은 그들을 사랑하심과 그들의 열조에게 하신 언약을 인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애굽에서 속량하사 당신의 백성을 삼으신 것은 오직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형통하게 사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을 부지런히 보내셔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부르면 부를수록 그들은 더욱 멀리 떠나 간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2).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면 부를수록 더욱 멀리 떠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알들에게 제사하고 아로새긴 우상에게 분향하였습니다. 그들은 완악하여 하나님께서 부르면 부를수록 더 멀리 하나님에게서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말 안 듣는 자식들은 아버지가 부르면 부를수록 가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멀리 도망을 가죠.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부르면 부를수록 더 멀리 떠나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가 죽으라고 내버려 두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3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찌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면 부를수록 더 멀리 도망가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아비가 아들을 사랑하듯이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걸음을 가르치시고 팔로 안아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랑으로 안아 주시며 고쳐 주시는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신명기 1:31-32절을 보면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사 아들을 안음같이 안아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걸음을 가르치시고 안아서 인도하시는데도 그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내버려두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4절을 보면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고 합니다. 걸음을 가르치고 안아서 인도 하여도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제 아에 사랑의 줄을 묶어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짐승처럼 이끌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희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그들의 멍에를 벗겨주시고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소에게 있어서 멍에는 스스로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인이 벗겨 주어야 합니다. 그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마음 껏 먹을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더 멀리 도망가는 이스라엘을 포기치 아니하시고 그들을 사랑의 줄로 묶어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의 모든 멍에를 벗겨 주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면 부를수록 더 멀리 도망가는 이스라엘을 사랑의 줄로 묶어서 이끌어 주셨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지 아니 하시면 아무라도 주님께로 올 수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요셉의 아들로 알고 수군거리는 유대인들에게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무라도 예수님께로 나아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의 줄로 이끌어 주셔야만 주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멍에를 벗겨 주시고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정의 줄과 사랑의 끈으로 둘러업고서 가슴을 풀어헤쳐 젖을 먹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만큼 사랑하시고 이끌어 주셨다면 그들은 그 사랑의 품안에 거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5-7절을 보면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 하리니 이는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거하고자 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품안에서 떠날까 하면서 계책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들이 세운 계책이 무엇입니까? 애굽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앗수르가 그들의 임금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들의 계책을 믿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칼이 저희의 성읍을 치고 문빗장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는커녕 결심하고서 물러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완악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무리 돌아오라고 하여도 듣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소를 물가에 끌고 가더라도 물을 먹고 안 먹고는 소에게 달렸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최종 결정권을 사람에게 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결심하고 주님을 떠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시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버려두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놓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불붙듯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긍휼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8-11절을 보면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합니다. ‘에브라임이여!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드마와 스보임은 신명기 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함께 불살라진 근처의 성읍들 입니다(신 29:23). 이스라엘의 소행을 보자면 아드마와 스보임처럼 유황불에 불살라져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8b절을 다시 보면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속에서 돌아서 하나님의 긍휼이 불붙듯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불쌍하여 마음이 격하여지는 것을 말합니다. 요셉이 자기의 동생 베냐민을 만났을 때 마음이 타는 듯하여 물러가서 울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긍휼이 불붙듯 하기에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을 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소행대로 하자면 천번 만번 버림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의 무궁하심을 인하여 버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몇 번만 잘못하여도 아니 때로는 단 한번의 실수도 결코 용납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어떠한지를 우리가 이 시간 성경 몇 곳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예레미야 31:20절을 보면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에브라임을 향하여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기뻐하는 자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책망을 하여도 깊이 생각하시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측은한즉 하나님께서 반드시 긍휼히 여기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 예레미야애가 3:19-23절을 보면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오직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주의 성실이 크심으로 진멸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지 아니하고, 아드마와 스보임처럼 멸망을 받지 아니하는 것은 그들이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크신 긍휼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 보면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라고 했습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사자처럼 일어나셔서 모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시면 온 세상에 흩어졌을지라도 자기 백성은 여호와를 좇게 될 것입니다. 서편에서라는 말은 지중해 바다를 말합니다. 애굽은 남쪽이고, 앗수르는 북쪽입니다. 동쪽은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곳은 광야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모습으로 오는 것입니까? 10-11절을 보면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떨면서 새 같이 비둘기 같이 오리라는 것입니다. 떨면서 오지만 와서는 각 집에 머물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시편 84:1-4절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시편 기자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의 복을 노래하면서 참새와 제비도 자기 집과 보금자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결국 흩어져서 참새처럼 비둘기처럼 약하고 두렵고 떠는 자들이라도 주께서 불러 모으심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안전히 거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마태복음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13-15절을 보면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호세아 11: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헤롯을 피하여 애굽에 내려갔다가 오게 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루어 내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을 100%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 안에서 긍휼입니다. 이 아들의 십자가의 죽으심 안에서만 자기 백성들이 긍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이란 단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마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끝없이 반항하고 거역하고 결심하고 돌아서는 그들을 또다시 찾아내시고 안으시고 사랑의 줄로 묶어서 결국 주님께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긍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감사함으로 받는 자들은 자신의 무능과 죄악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오직 소망을 주의 긍휼에만 두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긍휼의 사랑을 덧입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로 불붙듯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 긍휼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그 긍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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