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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호세아서 공부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말씀:호세아 12:1-6

 

우리는 지난 시간에 호세아 11장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긍휼이 불붙듯 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스라엘이 창녀 고멜과 같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함으로 멸망을 받아 마땅하였습니다. 그러나 불붙듯 하는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의 허리에서 나와서 고멜과 같이 늘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망 길로 행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된 것은 이와 같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불붙듯 하는 긍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 긍휼의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호세아서 12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먼저 호세아 11:12절을 보면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궤휼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호세아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은 궤휼로 하나님을 에워쌌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다는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정함이 없다고 합니다.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의 대표지파입니다. 그러므로 에브라임이라는 말은 북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거짓과 궤휼로 하나님을 에워쌌다고 합니다. 여기서 궤휼(hm;r]m 미르마)이라는 말은 속임에서 유래된 말로 교묘하게 간사스럽게 속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 이스라엘은 거짓과 궤휼 곧 교묘하고 간사스럽게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은 자신의 백성들의 마음이 남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빼앗길까봐 두려워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너희를 구원한 하나님이라”고 하며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습니다(왕상 12:25-30). 그들은 우상을 통해 백성들에게 거짓과 궤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한편 남 유다는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정함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정함(dWr 루드)이 없다는 말은 ‘쉼없이 배회하다’, ‘방랑하다’라는 말로 부평초처럼 왔다 갔다 한다는 말입니다. 곧 오직 하나님에 대한 일편단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었다는 말입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날마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남 유다가 북 이스라엘 보다 조금 나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늘 하나님에 대해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남과 북 곧 전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치 음란한 고멜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예수님을 가로 막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까지 막아서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내가 있음으로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을 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삶이 얼마나 거짓과 궤휼로 가득합니까? 우리는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 봐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방향과 가치를 늘 세상의 기준에 두고 있다면 우리는 거짓과 궤휼로 주님을 에워싸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정함이 없는 자 입니다.

 

우리와 만나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와 대화를 하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요? ‘정말 당신은 이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군요! 정말 다른 소망을 가졌군요!’ 이렇게 느낄까요? 아니면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느낄까요? 정말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현실적인 사람처럼, 꿈꾸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거짓과 궤휼로 우리 주님을 에워싸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서 어린아이가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듯이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주님이 증거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로 인하여 주님이 가리워진다면 이것이 바로 거짓과 궤휼입니다.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보면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드러나야 하는데 하나님은 간곳없고 금송아지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교회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기업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까지는 아니라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로 늘 고정되고 있습니까? 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까?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랬다 저랬다 정함이 없이 살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들을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정함이 없는 자들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자주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행한다고 오늘 본문 12: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2:1절을 보면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더하며,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라고 합니다. 에브라임이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간다고 합니다. 그로인해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더한다고 합니다.

 

이미 우리는 8:7절에서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바람이란 헛된 것입니다. 헛된 것을 심고 헛된 것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먹어야 할 생명의 말씀은 먹지 아니하고 헛된 정욕을 위하여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 동풍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동풍이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인데 곡식을 마르게 하고 집을 날아가게 하고 배를 깨뜨리는 그런 바람이라고 합니다. 곧 광풍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는 것은 거짓과 포학을 더하는 삶을 날마다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에 기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살리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모르고 앗수르와 애굽에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들은 날마다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 있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생명처럼 여기는 돈을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말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관심사와 바라는 것이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라면 우리가 지금 바람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곧 헛것을 좇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면 계속하여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고,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라가는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막으실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하시고 야곱의 소행대로 벌 주시며 그 소위대로 보응하시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유다와 야곱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며 헛된 바람을 쫓아가고 있으니 그들의 소행대로 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벌을 주신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은혜요, 사랑인 것입니다. 만약에 날마다 거짓과 궤휼로 살아가는데도 그대로 방치하여 두신다면 그것은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쟁변하시고 벌 주시고 보응하시는 것은 아직 그들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라가는 이스라엘과 쟁변하시고 그 소행을 벌 주시고 보응을 하시는 것은 결국 그들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야곱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봅시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9:13절에 보면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야곱이 태어나면서부터 착하고 바르게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의 삶은 그의 이름대로 교활하고 거짓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는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3a절을 보면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태에서부터 그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야곱입니다. ‘발꿈치를 잡았다’는 것은 ‘속이다’, ‘불의에 남의 뒤를 치다’, ‘발뒤꿈치를 들었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엄마 배 속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형을 속여서 아람으로 도망가고 그곳에서 아내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겼다고 합니다(창세기 28-30장).

 

또한 3b-4절에 보면 장년에는 하나님과 힘을 겨루어 이겼다고 합니다.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사건으로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사건을 말합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는 것이 두려워 먼저 일행들을 보내고 난 후에 그는 얍복강 가에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야곱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힘을 가지고 덤벼든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에서의 첩자인줄 알고 덤벼들었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천사인줄 알고서 울면서 간구하였다고 합니다.

 

창세기에서는 울면서 간구하였다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오늘 본문 4절에서는 울면서 간구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태에서부터 싸우는 자, 겨루어 이겨야 되는 자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성이요, 본능입니다. 이러한 야곱이 70세에 고향을 떠나 죽을 고생을 하면서 20년을 지내고서 벧엘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듣고 벧엘로 올라가다가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야곱이 꺾여지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날들을 자기 힘을 의지하고 성공하고자 애를 쓴 야곱의 환도뼈를 하나님께서 치신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려고 하여도 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제 야곱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야곱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호세아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야곱처럼 우리도 날마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자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도 형제도 아내도 심지어 하나님도 나를 도와주어야 좋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삶의 자세가 우리에게서 날마다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무슨 수로 막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야곱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는 것인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신 것입니다. 야곱 같은 자를 결국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약의 백성으로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솜씨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벧엘에서 언제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신 것입니까? 그리고 언제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창세기 28:10-19절을 보면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직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형을 속이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쟁취한 후 도망가다가 들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나타나셔서 그에게 약속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3-15). 이미 태에서 부르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마침내 이루셔서 20년이 지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건데 야곱의 어떠한 선행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그 약속하신 바를 이루어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벧엘에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 시대에 말씀하시고, 오늘날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야곱을 약속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만들어 내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자기의 언약을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어내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5).

 

그러면 호세아 시대에 야곱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에 보면 “돌아오라. 인애와 공의를 지키라.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찌니라”고 합니다. 먼저 돌아오라고 합니다. 인애와 공의를 지키라고 합니다.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자기의 힘으로 살려고 하는 야곱을 꺾어 이스라엘로 만드는 하나님의 솜씨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고집부리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고 하나님만 항상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망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남겨진 자들은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남겨진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이렇게 하나님의 택하시고 남겨진 자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1:25-32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에서는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1:29절에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불순종이 주특기인 자들입니다. 불순종은 우리의 본능입니다. 이미 불순종 아래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날마다 거짓된 것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아래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라고 로마서 11:3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반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사에는 후회하심이 없음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은혜로 나온 자들은 결코 자기의 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주의 인애와 주님의 의가 드러나는 것이며, 날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절을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세상을 좇는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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