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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호세아서 공부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말씀:호세아 14:8

 

우리는 호세아서의 마지막 장인 14장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14:4-9절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5-7절 말씀을 통해서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의 간구를 들으시고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다’고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찌라.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고 했습니다(5-7). 이슬과 같은 하나님으로 인해 돌아온 이스라엘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굳게 박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가지가 넓게 퍼지며, 아름다운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으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되 완벽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그 그늘에 거하는 자들까지도 곧 오늘날 우리 교회들까지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의 간구를 들어주시고 완벽하게 축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8절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전제로 그에게 약속하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에브라임을 돌아보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다’고 하셨습니다. 푸른 잣나무 같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에브라임은 보호를 받으며, 쉼을 얻게 됩니다. 그들은 이 하나님으로 인해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에브라임을 넘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에브라임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에브라임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므로 풍성히 열매 맺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보면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찌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 원문에 보면 ‘에브라임의 말이’라는 문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에브라임의 말이’라는 문구가 첨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그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성경 번역자들이 일부러 첨가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에브라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결심을 했는지, 그리고 그 결심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에브라임이 하나님 앞에 결심한 것이 무엇입니까? 3절에 보면 에브라임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시니이다 할찌니라”(14:3). 먼저 에브라임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에브라임은 다시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결심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8a절에도 보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에서 에브라임이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를 철저히 증오했으며, 버렸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에브라임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8). 이 말은 수사학적인 질문으로써 우상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절대로 다시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에브라임은 곧 북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 이방 강대국 앗수르를 더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랑하기보다 말을 더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런 우상숭배와는 더 이상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분명히 잘라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브라임이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은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하였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 의지했던 앗수르로 인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앗수르가 그들의 구원이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앗수르가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들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그들의 노예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강대국 앗수르를 더 의지했던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창기와 같이 비참한 처지에 굴러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우상숭배의 결과는 비참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철저한 실패와 비참함에 처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요,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심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들에게 우상에 대한 적개심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상을 철저히 배척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죄에 대해서 분노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보좌에 좌정하신 하나님을 뵈었을 때에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이사야 6:5절을 보면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사람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욥기 42:5-6절을 보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5:8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내렸을 때에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 때에 죄에 대해서 분노하게 됩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 때에 우상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그 우상에 대해서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떠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죄를 혐오하는 수준에까지 나아가야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죄를 혐오하고 미워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그 죄로부터 떠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에 대해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악이든지 그것을 버리려고 할 때에는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이 바로 그것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심에는 반드시 죄에 대한 혐오가 뒤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죄에 대하여 혐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우리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만들고,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며, 하나님과의 감미로운 교제를 나눌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죄에 대해서 이런 증오심을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 때에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반대되는 모든 것에 대하여 혐오감을 품게 될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 좋은 예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눈 후 십계명을 받아들고 백성들에게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금송아지 우상 앞에서 춤을 추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그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이 자신들을 인도 한 신이라고 하며,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음란하게 춤을 추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사악한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게 된 모세는 심히 분노하며 들고 있던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금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로 만들어 그들로 마시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은 모세와 동일한 심정으로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 자체이시고,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순결함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모든 사람들은 모든 죄를 미워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에 대한 미움 또한 더욱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미움이 없다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또한 죄에 대한 분노가 없다는 것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도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에브라임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8a). 에브라임은 우상들을 혐오하였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우상숭배의 죄악을 회개하고 이제 그것에서 완전히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가지고 돌아와서 하나님께 모든 불의를 제해달라고, 선한 바를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찬미의 제사를 주께 드리겠다고 간구했습니다(14:2).

 

그러면 우상을 혐오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온 에브라임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8b절을 보면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혐오하며, 돌아온 이스라엘을 먼저 돌아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저를 돌아보아.” 이 말씀은 옛날에도 돌아보셨지만 지금도 돌아보고 계시며, 또 앞으로도 돌아보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눈과 귀는 의인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34:15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그렇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온몸이 눈이 되어 의인을 열심히 주시하시고, 온몸이 귀가 되어 의인의 기도를 열심히 들으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라 할지라도 항상 우리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눈도 항상 아기를 향할 수만은 없습니다. 엄마도 잠을 자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키워보면 알지만 산모가 피곤하여 잠을 잘 때 아기가 울어도 금방 깨어 도와주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엄마가 깨지 못해 아이가 울다가 엎드러져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기만 하면, 곧 우리가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를 항상 주목하여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목하여 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에브라임을 돌아보실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푸른 잣나무와 같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8b절을 다시 보면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잣나무(v/rB 베로쉬, 칼빈은 전나무로 번역)는 상당히 큰 나무입니다. 그 잎사귀들이 빽빽합니다. 비가 내릴 때 빽빽한 잎사귀들은 마치 우산과 같아서 잣나무 그늘 아래 거하는 사람들에게 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또한 햇빛이 과다하게 비쳐서 해를 입히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잣나무는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로서는 안성맞춤입니다. 대개의 경우 열매를 많이 맺지 않는 나무들은 잎사귀를 키우는데 힘을 쏟기 때문에 사시사철 신록을 유지합니다. 잣나무가 바로 이런 류에 속하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푸른 잣나무를 비유로 삼아 말씀하시는 이유는 잣나무 같이 하나님도 모든 소나기와 태풍, 해로운 열기와 폭풍을 막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잣나무가 사시사철 푸른 것처럼 하나님도 에브라임을 보호하시되 사시사철 곧 영원히 그렇게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잣나무의 그늘이 즐거운 그늘이듯이 하나님도 에브라임에게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보호해 줄 어떤 은신처나 보호자를 가지고 싶어합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재산을 자신의 보호자와 은신처로 삼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 권력을 자신의 보호자와 은신처로 삼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자신의 보호자요, 은신처로 삼습니다. 이처럼 사람들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은신처와 보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유일하고도 진정한 피난처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모든 피난처는 단지 그림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것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들입니다. 요나의 박넝쿨과 같은 존재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물론 그것들도 일시적으로 은신처가 될 수 있지만 허무함이라는 벌레가 있어서 그 모든 것을 갉아 먹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진정한 피난처가 되시며, 영원한 거처가 되십니다. 시편 90:1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모든 자들은 푸른 잣나무 되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위로와 보호를 받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죄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우리 인생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브라임에게 푸른 잣나무가 되셔서 그들을 보호하시는 그늘이 되어 주실 뿐만 아니라,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가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리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8b). 잣나무는 원래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브라임이 푸른 잣나무 같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열매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푸른 잣나무일 뿐만 아니라 열매 맺는 나무입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의 보호자요, 위로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에브라임은 푸른 잣나무 같은 하나님으로 인해 풍성히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위로가 되는 선한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사람의 자아로부터는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선한 것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구원의 열매도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맺는 모든 열매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5:10절을 보면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은혜가 너무나 커서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합니다. 그 수고도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많이 맺도록 만들어 주는 여러 가지 방편이 있지만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 방편들이 효력을 발하는 것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방편들 가운데 은혜롭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한 생각을 하거나 입을 열어 선한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열매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경외심과 우러나오는 섬김은 내 모든 열매와 내 모든 은혜와 내 모든 축복과 내 모든 위로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아는데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하늘에 속한 이 진리, 즉 모든 열매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이 진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어떻게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흠모하고 존귀케 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어떻게 무슨 형편에 처하든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열매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브라임처럼 ‘내가 다시 이전의 사악한 길, 곧 여러 우상을 섬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라고 분명히 고백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온 것이든, 아니면 우리 자신의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든 죄악된 모든 길과 유혹을 향해 단호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내가 다시 너와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절대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에브라임처럼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피조물과 그 밖의 모든 우상을 버린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푸른 잣나무와 같이 되실 것입니다. 푸른 잔나무와 같으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의 간구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라고 고백하는 에브라임의 이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에브라임처럼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선한 열매들을 풍성히 맺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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