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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디모데전서 공부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말씀:디모데전서 3:1-7
 
오늘부터 우리는 디모데전서 3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는 교회의 직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감독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감독이란 장로와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말입니다. 같은 의미로 목자 또는 목사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독 그러면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장로)로 보면 되겠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교회에서 감독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목사와 장로를 구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감독직이 교회에서 잘못 사용되어져서 마치 신분상의 계급처럼 행사되어 왔기 때문에 종교개혁을 하면서 성직자가 아닌 회중 가운데서 대표를 선출하여 장로를 세운 것입니다. 장로에는 가르치는 장로(목사)와 치리장로(장로)가 있습니다. 이들로 교회의 당회를 구성하고 교회를 치리하는 기능을 행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목사, 장로, 감독, 목자 등의 이름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과 성도를 다스리는 일을 같이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은 목사(장로)의 자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미쁘다. 이 말이여!”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음의 말이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엇인가 하면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한다면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에서 감독의 직분만이 아니라 모든 직분들이 다 그러합니다. 교회에는 항존직으로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있습니다. 이 모든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직분이라는 것이 자기의 야망이나 자존심이나 위신을 세우는 직분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의 직분이 얼마든지 사람의 체면 때문에 주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흔히 불리우는 서리집사, 권사라는 직분은 사실 성경에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들이 이런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체면 세워주기를 위한 것인지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지 않음을 인식하고 성경대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선한 일을 사모하여 감독이 되기를 원하였다면 그 사람의 자격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점검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감독의 자격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감독의 자격으로 무려 15가지가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감독이 갖추어야 할 자격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감독은 먼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사회에서나 교회 안에서나 간에 책망할만한 범죄 한 사실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이 말은 15가지 자격을 총괄하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디도서 1:5-9절 말씀에도 보면 감독의 자격으로 가장 먼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찌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독은 가장 먼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감독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감독은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비행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또한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습니다. 다처주의를 금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불륜한 행동을 금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재혼을 금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당시 초대교회의 엄격한 신앙 분위기 속에 비춰 볼 때 불륜적인 행동을 금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처주의가 허용된다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결혼의 원리는 일부일처입니다.

 

또한 감독은 절제해야 합니다. “절제하며.” 여기서 절제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는 ‘네팔리오스’( nhfavleo")라는 단어인데 신약 성경에는 목회서신에만 특별히 나타나는 단어입니다(딛 2:2). 이 말은 좁은 의미로는 술과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좀더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세상적인 욕망을 제어하는 중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진지한 삶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감독은 세상적인 욕망을 제어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라야 합니다.

 

또한 감독은 근신해야 합니다. “근신하며.” 여기서 근신한다는 말은 절제와 유사한 의미로 모든 일에 조심하며 깊이 생각하는 심적 자세를 가리킵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요, 하나님의 양무리를 맡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조심하며 사려 깊은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감독은 아담해야 합니다. 근신이 내적 자세인데 비해서 아담은 외적 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의복을 입는 것이나 행동이 단정한 것을 의미합니다. 감독은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행동에 있어서 아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목사의 아담하지 못함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많이 있어 왔습니다. 몇년 전에는 목사의 지나친 사례비와 수억 짜리 외제차와 호화 아파트로 인해 떠들썩한 적이 있습니다. 감독은 세상적인 욕망을 따라 행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삶에 있어서 그 행동이 아담해야 합니다.

 

또한 감독은 나그네를 대접하기를 잘 해야 합니다. 감독은 영혼을 맡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하나님을 대접한 것처럼 감독은 나그네를 대접하기를 잘 해야 합니다. 곧 영혼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감독은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능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는 도리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분변하여 그 말씀의 본의를 바르게 가르치는 일을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의 직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의 본의를 바르게 드러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15절에 보면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목사는 말씀을 맡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바르게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감독은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않아야 합니다.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아니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감독은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또한 감독은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합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것은 교회의 다스림에 대한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감독이 스스로 본을 보이지 아니할 때 그 자녀들이 아비께 순종할리 만무하며, 그러한 감독이 교인들 앞에서 경건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에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합니다.

 

또한 감독은 새로 입교한 자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교만하여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독은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합니다. 감독은 성도들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 비춰 볼 때 감독이 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저의 목사로서의 점수가 몇 점이나 나올까요? 한점도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스스로 그만둬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만두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그만두지 않고 아직 미련을 떨고 있는 것입니까? 디모데전서 1:12-17절을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본 말씀입니다만 바울은 자신이 직분을 받은 것은 결코 자기의 의로움이나 선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과 자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고,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셨다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감독의 자격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조건에 얼마나 부족한 자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더 좋겠지만 그러나 이러한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하고 단 한걸음도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아니면 안 되는 자로 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자는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께서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가를 증거 하는 자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간에 모든 직분은 주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고,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독은 교회에서 무엇을 감독해야 하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는 교회 안에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디도서 1:9-14절을 보면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감독은 바른 교훈으로 거스리는 자들을 책망하고, 할례당의 입을 막고, 악한 자들을 꾸짖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는 온갖 거짓된 가르침을 거부하고 바른 진리가 증거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8-30절을 보면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감독자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저들 가운데 감독을 세우신 것은 주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교회가 주님의 피의 능력 안에 머물러 있게 하는 일을 하려 함인 것입니다. 이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들이 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너희 중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는 자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도전들을 막아내고 책망하고 감독하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감독자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예수님의 피 외에 다른 것으로 가려지면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독의 제일 중요한 기능이 복음이 제대로 증거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과 능력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감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들의 행위나 공로로 복을 받고 사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모든 복들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대신 죽으심이란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끄집어 내셔서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독이 해야 할 일은 이러한 감독을 친히 하고 계시는 우리 주님을 증거 하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교회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18-25절 말씀을 보면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교회에 목사나 감독이나 장로나 목자로 불리우는 자들을 세우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신 피를 흘리신 분이 따로 계심을 증거 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만이 우리 영혼의 진정한 목자와 감독이 되심을 증거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감독의 기능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직분에 대한 바른 의미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자들이 주님 앞에서 그 직분을 바르게 잘 감당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목사(장로)들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목사(장로)의 직분의 의미를 분명히 알게 하시고, 그 직분을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잘 감당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어 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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