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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디모데전서 공부


참 과부를 경대하라


말씀:디모데전서 5:1-16
 
오늘부터 우리는 디모데전서 5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5:1-6:2절 까지 말씀은 바울 사도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성도를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합니다(1-2). 그리고 특별히 참된 과부를 경대하라고 합니다(3).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고,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들을 더욱 존경하라고 합니다(17). 그리고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상전들을 범사에 공경하라고 합니다(6:1-2). 우리가 디모데전서 5:1-6:2절까지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우리가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란 단지 예배드리기 위해서 만나는 그런 집단이 아닙니다. 교회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가족입니다.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정은 우리의 혈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정입니다. 그러나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주님의 가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가족인 교회의 구성원들에 대하여서 우리가 어떠한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 5:1-6: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목사가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자세를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성도가 성도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의 의미를 하나하나 살펴보기 전에 우선 교회가 새로운 가족이라는 말씀의 의미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3:31-35절 말씀을 보면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모친인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인가”하면서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혈통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기준으로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성도들은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와 같은 새로운 가족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29-31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며 질문 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0:17절 말씀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하며 질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너의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네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나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부자인고로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면서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하며 반문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가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추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마가복음 10:27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고 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막 10:29-31).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형제나 자매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여 영생을 얻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베드로가 다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큰소리 쳤지만 그는 결국 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저주하면서까지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길이란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새 가정을 만들어 내심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3-47절 말씀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4:32-35절 말씀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고 했습니다.

 

이 두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만들어내신 새 가족인 교회가 현세에서 미리 천국을 맛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겸하여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서 가정에서 핍박을 받아 쫓겨나서 교회공동체에 들어오게 되니 형제자매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산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버린 것들을 백배나 현세에서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구제받을 사람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구약에서도 구제의 대상이었는데 특히 초대교회에는 과부가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이들을 구제하는 문제로 인해서 초대교회에서 집사를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교회공동체에서 과부를 구제하는 일이 상당한 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가 구제가 풍성하여 지다보니 아무나 과부의 명단에 올려서 구제를 받는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로인해 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주나 하는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처음에 구제를 받으면 감사함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당연한 듯이 여기고 심지어 안주면 왜 안주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도 과부의 문제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과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다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합니까? 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늙은이는 남자로서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에게는 자기 아비에게 하듯이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디모데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이 하라고 합니다. 늙은 여자는 어미에게 하듯이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젊은 여자에게는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말씀에 보면 젊은 여자에게는 한 가지가 더 붙습니다.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이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남녀의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젊은 목회자였던 디모데에게 특별히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이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바로 새로운 가족인 교회에서의 질서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늙은이와 젊은이,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권면한 후에 과부에 대해서 3-16절 말씀까지 아주 길게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기록한 것을 보면 당시 에베소교회 안에서 과부에 대한 구제 문제가 상당한 문제요, 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참 과부로서 구제 받아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아니한 사람을 구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과부의 명단에 올려야 할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참 과부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먼저 부양할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4절 말씀에 보면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가 있으면 그들로 부양하게 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마 당시에 가족들이 과부된 자를 돌보지 않고 교회에 떠넘기려고 하는 자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짓은 믿지 않는 자들도 하지 않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 말씀에 보면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8). 그렇습니다.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의 집안이나 친척 가운데 과부가 있는 자라면 자기들이 도와주고 교회에게 짐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6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은 참 과부를 도와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게 말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16).

 

당시 참 과부로 대접을 받는 나이가 60세 이상이여야 했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60세는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이지만 그 당시로는 상당한 고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이를 제한하는 것입니까? 11-12절 말씀을 보면 “젊은 과부를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젊은 과부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시집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곧 이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의 정욕을 따라 살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처음 믿음을 저버린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15절 말씀에 보면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이미 이 서신을 쓸 당시 에베소교회 가운데는 사단의 미혹을 받아서 처음 믿음을 저버리고 그리스도를 배반한 많은 젊은 과부들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실제로 젊은 과부가 과부의 명단에 올라서 구제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 힘으로 일하여 벌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개으름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젊은 과부들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13-14절 말씀을 보면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서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젊은 과부가 게으름이 몸에 배이게 되면 할 일 없이 이집 저집으로 돌아다니며 망령된 폄론을 하고, 일만 만들며,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 가운데 사단이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과부들은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잘 다스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꼭 과부에게만 해당되겠습니까? 시간이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한가하게 돌아다니며 폄론이나 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6).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것이 망령된 폄론을 하고,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고,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죽은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 과부의 조건은 한 남편의 아내였고 선한 행실이 있는 자라야 합니다. 9-10절 말씀을 보면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과부는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 선한 행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한 행실’이란 자녀를 양육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환난 당한 자를 구제하며,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으로 참 과부의 명단에 올려 구제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구제의 차원이 아니라 이들을 교회에서 구제함으로 영적인 유익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 과부로 선정이 된 사람은 단지 구제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단지 구제를 받는 늙은 과부가 아니라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는 자로서 참 과부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구제를 하건, 구제를 받건 간에 무엇에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하는 것입니까? 주님에 대한 소망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에 보면 “참 과부를 경대하라”고 했습니다. 5절 말씀에 보면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참 과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늙은이와 젊은이와 젊은 여자와 과부를 대하든가 간에 결국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를 경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이든지간에 우리는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를 존경하는 곳이 바로 주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교회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2:36-38절 말씀을 보면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안나는 참된 과부의 모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나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과부로 산지 팔십년이 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녀를 축복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참으로 안나는 참된 과부의 모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밝히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 한 형제요, 자매가 된 자로서 서로 존경하며, 귀히 여김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르게 잘 세워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히 우리가 안나와 같이 젊든지, 늙었든지, 남자이든지, 여자이든지 간에 오직 참된 과부된 심정으로 우리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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