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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디모데전서 공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


말씀:디모데전서 6:3-10
 
우리는 지난주부터 디모데전서 6장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절, 그리고 3-21절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1-2절 말씀을 통해서 상전에 대한 종의 자세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두 번째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3-21절 말씀은 디모데전서의 종결부분으로서 성도 개개인과 목회자 자신의 신앙생활과 관련된 결론적인 교훈과 마지막 인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3-10절 말씀을 통해서 성도 개개인의 경건과 돈을 사랑함에 대한 권면의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두가지를 경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교훈에 대한 경고이고, 다른 하나는, 돈을 사랑함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사실 한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단이 나쁩니까? 돈을 사랑함이 나쁩니까? 둘 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것입니다. 모든 악의 출처는 한 곳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만이 일만 악의 뿌리가 아니라 모든 악의 뿌리가 한 근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의 출발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곧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으로 하여금 거기 두시고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명하시기를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2:16-1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소위 아담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단이 어떻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였습니까? 창세기 3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했습니다. 이 뱀이 먼저 여자를 유혹했습니다. 여기서 여자를 유혹한 뱀은 사단입니다. 그런데 그 뱀이 어떻게 여자를 유혹했습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했습니다(창 3:1). 이에 대한 여자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창 3:2-3). 그러자 사단이 여자에게 거짓 확신을 심고,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참으로 치명적인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자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와가 사단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바라봤을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따먹지 말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이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범죄가 바로 모든 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 것, 이것이 모든 악의 뿌리인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욕구를 따라서 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단 한가지의 요구를 거역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든 거역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교만하여졌습니다. 그 교만이란 자기가 자신을 책임지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곧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를 위해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선과 악을 아는 지식과 먹고 사는 모든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이 죄악된 인간의 본성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 3-5절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교훈 곧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인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13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바른 가르침에 착념하지 아니하면 결국은 교만하여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고 다른 교훈을 전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교만하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교역자나 평신도나 간에 아무 것도 알지도 못하면서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아도 주님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변론과 분쟁을 통해서 자기를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복음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알게 되면 사실 할 말이 별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곧 입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함께 복음을 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무능과 죄를 고백하고 복음이 주는 기쁨으로 인해서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고 교만하여진 상태는 경건을 자기의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곧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교만하여져서 모든 것을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건을 자기의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이 누구이겠습니까? 미가서 3:9-12절 말씀을 보면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찌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미가서 3: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입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면 전쟁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미 3:5).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뇌물을 주면 평강을 말하지만 뇌물을 주지 않으면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곧 이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선지자 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경건을 자기의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두령들과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을 하고, 제사장들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고, 선지자들은 돈을 위하여 점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교훈을 받고, 점을 치기 위하여 누가 오는 것입니까? 백성들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서로 한 통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돈을 내니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무엇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것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두령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백성들이나 간에 모두가 다 경건을 자기들의 이익의 재료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5:30-31절 말씀을 보면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권력으로 다스리는데 백성들이 그것을 좋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결국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을 자기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혼자만이 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곧 경건을 자기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목사 혼자서 될 일이 아니라 그런 목사를 좋아하는 교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이런 경고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시대나 사도들의 시대나 오늘날 이 시대나 간에 경건을 자기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를 보십시오. 목사나 교인들이나 다 한통속이 되어서 자기 유익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종교를 가질 때 먼저 무엇을 계산합니까? 이 종교를 내가 믿어서 무슨 이익을 얻을까를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보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을 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들이 가끔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개인이 돈을 사랑하면 탐심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교회에 바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국에 보물을 쌓고 더 많은 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천국 가고 복을 받기 위해서 돈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무엇을 바라는 것입니까? 자기들의 이익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헌금을 많이 거둬들이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고, 교인들은 자신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목회자나 교인들이나 간에 서로 서로 짜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한통속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계산을 해 보아야 합니까? 경건은 이익의 재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경건은 핍박이 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12절 말씀을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핍박을 받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바른 교훈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듣지 말아야 합니까? 지금이라도 계산을 해 보고 따르든지 말든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계산을 해 봐야 합니다. 계산하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온전히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자신을 따르려면 계산을 해 보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25-33절 말씀을 보면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쌔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찌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을 따를 때 계산을 하고 따라야 합니다. 마태복음 8:19-20절을 보면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이란 머리둘 곳 조차 없는 삶입니다. 그런데도 이 예수님을 따라 나서겠습니까?

 

오늘 본문 6-7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유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가 되면 족한 줄로 알겠습니까?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준에서 만족의 정도를 정하지 말고 성경에서 만족하다는 수준을 우리는 그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만족하다는 수준이 무엇입니까? 8절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는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8). 그러면 왜 이것이 기준이 됩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듯이 갈 때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들 가운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더 맛있는 것과 더 고급스러운 옷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먹고 입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치나, 자녀 학원비나, 품위 유지비 같은 것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성경의 기준보다 부자들 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만 더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탐심이라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나 물질에 끊임없이 집착하는 것이나 그 뿌리가 다 한가지인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에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소금물을 마시면 갈증이 더하듯이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한 인간의 탐심인 것입니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기에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면 땅이 소산물을 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어렵게 지어 놓아도 재앙이 와서 빼앗아 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언약 안에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시편 24:1-6절을 보면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돈을 구하며 사는 것이 죄인된 인간의 실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를 찾는 자들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다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6:33).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데도 자꾸만 부족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앞에서도 봤습니다만 그것은 모두 탐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보다 땅에 있는 것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있어야 자기 힘으로 살아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이들 학원가고 과외 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하지 않으면 저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니 무엇이 필요한 것입니까? 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돈의 위력을 절감하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돈을 섬길 수 없고, 돈을 섬기면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 부자가 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9-10절 말씀을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 것이나 오늘날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것이나 다 꼭 같은 죄악된 모습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복음을 버리고 다른 교훈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믿음을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모두 회개할 것뿐인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정말 구하여야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우리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오직 우리 주님만으로 만족하며, 우리 주님만을 구하며, 우리 주님만을 섬기며, 우리 주님의 교훈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교회 가운데 충만히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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