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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디모데전서 공부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말씀:디모데전서 6:11-16

 

우리는 지난 시간에 6:3-10절 말씀을 통해서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교만하여져서 변론과 다툼을 내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할 때 마음이 부패하여져서 진리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 부패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까? 경건을 자신의 이익의 재료로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해야 합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6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1-12절 말씀에 보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위임받은 사람을 말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디모데와 같은 지도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느 누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말씀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대입시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 하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먼저 피할 것이 있고, 취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의 유익을 따라 피할 것을 피하고 취할 것을 취하면 됩니다.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내가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을 결정하여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은혜로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네가 알아서 천국까지 오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보내셔서 늘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신 자들을 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이것은 피할 것이다. 이것은 취하여야 한다’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마음과 뜻대로 살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의 마땅한 본분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피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11절 말씀에 보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것들’이란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 본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본 9-10절 말씀을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11절에서 말하는 ‘이것들’이라는 말은 돈을 사랑함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돈의 위력이 대단하였으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겠습니까? 그 정도로 돈의 위력이 대단하기에 사람들은 모두다 일만 악의 뿌리가 될지언정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말로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돈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얼마나 잘 아시기에 성경에 이런 말씀을 기록하여 놓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실상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바로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24절을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돈을 사랑하는 것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마음과 뜻대로 됩니까? 안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이제까지 귀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8-9). 이것은 바울의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될 때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취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입니다(11b). 이런 것들은 다 성령의 열매들입니다(갈 5:22-23). 그런데 우리가 이런 말씀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면 참으로 갑갑하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돈이 있어야 살아가는 세상에서 돈이 되는 일은 피하고 돈이 안 되는 것을 취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말씀 앞에 서지 않으면 자기가 돈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것을 정당하게 여기고 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피하라고 하는 것은 취하고 싶고, 취하라고 하는 것은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자녀들을 보십시오. 부모가 하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자녀들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오락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저 녀석이 누구를 닮아서 저런가?’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자녀를 판단만 하지 말고 우리 자신들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모습을 보며 판단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들이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하고 그냥 내버려 두십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지요. 매를 들어서라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요, 책임입니다. 때로는 상을 주면서까지 부모로서 그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할 것입니다. 물론 부모가 인도한다는 바른 길이란 것이 거의 다 자기 욕심입니다만 그래도 자기가 낳은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에 부모는 상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인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아란 그렇게 간섭하는 자가 없습니다. 잘못해도 나무라줄 부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나 행복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아는 부모가 있는 아이가 제일 부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 있는 아이는 고아가 부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간섭받고 사는 것을 불행한 것으로 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아무런 제제나 간섭이나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약 이런 것을 부러워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아버지의 은혜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피할 것을 피하고 취할 것을 취하라고 하시는데 늘 다른 길로 가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로 받으시는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대접하시는지를 히브리서를 통해서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2:1-13절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들을 징계하십니다. 징계해서라도 우리가 바른 길을 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믿음의 경주 곧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싸움을 하면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바라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믿음의 싸움, 즉 피할 것을 피하고 취할 것을 취하는 싸움을 싸우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더욱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의 경주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조치하시는 것입니다. 징계하시고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경주란 이미 영생이 주어 졌기에 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잘 하면 영생을 주마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고 믿음의 경주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 마음에 주로 계시게 하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3:14-19절을 보면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3:10-14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행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이렇게 잡으려고 좇아가는 것은 그가 아직 구원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을 찾아오시고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아주신 그 놀라우신 은혜의 세계, 그 부르심의 상이란 것이 얼마나 엄청나고 대단한지 바울처럼 열심히 좇아가더라도 결코 다 알 수 없는 넓이와 깊이와 길이와 높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3:18-19절에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런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들의 삶을 볼 때 이런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지 못한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안일과 메너리즘에 빠져 그저 하루하루를 육신의 안일을 좇아 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복음을 악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내가 잘하나 잘못하나 예수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신다’고 합니다. 옳습니다. 이런 것을 복음이라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서 결국은 자신의 안일과 게으름을 합리화하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정당화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 그런 거지 뭐! 죄인이 별 수 있는가!’ 그런 말로 마땅히 추구해야 할 믿음의 경주를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기에 더욱 주를 바라보게 되고 더욱 주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은혜의 세계가 너무 좋아서 예전에 좋아하고 자랑하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그 배설물들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말씀 앞에서 늘 비춰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곧 천국의 시민으로써 당연히 취하여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1-12절 말씀 다시 보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앞에서도 잠시 봤습니다만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이런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영생을 얻었기에 이러한 싸움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은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추구하라고 부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주님의 은사들을 구하며 살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경건의 모양만이 아니라 의가 겸비된 경건입니다. 참된 믿음이라면 당연히 나타날 사랑이 있는가를 점검 해 보라는 것입니다. 인내와 온유가 나오고 있습니까? 이것들을 위하여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위하여 우리가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해야만 이런 삶을 경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경쟁사회 속에서 이런 삶의 추구란 곧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길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씀하면서 세 가지로 엄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라도 앞에서 진리를 증거 하신 것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을 말씀하면서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13-16절 말씀을 보면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다 이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바울은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피할 것을 피하고 취할 것을 취하는 믿음의 경주가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의 목적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날마다 주님의 은혜의 깊이 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주셔서 부르심을 향해 달려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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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재호 2014.02.02 16:20
    담당자의 실수로 설교가 녹음이 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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