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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디모데전서 공부


선한 사업에 부하라


말씀:디모데전서 6:17-21

 

오늘 말씀은 디모데전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디모데전서 6:11절부터 계속되는 바울 사도의 디모데에 대한 개인적인 권면의 말씀입니다. 6:11-16절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영생을 취하기 위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디모데에게 부한 자들이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힘쓰도록 권면하라고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17-19). 그리고 끝으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다시금 이단 사상과 거짓 교훈을 경계함으로써 믿음을 굳게 지킬 것을 당부하면서 끝맺는 인사로 서신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20-21). 오늘 우리는 바울 사도가 디모데전서를 마무리 하면서 디모데로 하여금 부한 자들에게 권면하라고 하는 이 권면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를 마무리하면서 디모데로 하여금 부한 자들을 권면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디모데로 하여금 부한 자들을 어떻게 권면하라고 합니까? 17-19절 말씀을 보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하게 되려고 하는 자들을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한 자들에게 권면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아시아 주의 수도로서 상업이 매우 융성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에베소교회에도 부유한 신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와 같이 이미 부유한 성도들이 어떻게 그 재물을 선용해야 하는지를 디모데로 하여금 권면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9-10절 말씀을 보면 “부 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 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부 하려고 하는 자들은 결국 침륜과 멸망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곧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돈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서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다고 합니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일하심을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모든 삶과 장래를 자기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온갖 근심으로 살다가 결국에는 주님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부 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권면의 말씀이 아니라 이미 부한 자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다시 보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먼저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합니다. 부자가 마음이 높아지는 것 곧 교만하여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한 자가 자족함이 없이 계속하여 마음을 높이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물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결국은 부 하려 하는 자들이 빠지는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6:9).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부한 자들에게 먼저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8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최저 한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 외에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곧 필요 이상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 외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날 동안 믿음과 선한 양심 곧 경건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이 높아져 있으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자기는 늘 가난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끝없이 재물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믿음에서 파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디모데로 하여금 부자들에게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권면하게 한 후에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게 하라는 것입니다. 재물이라는 것은 정함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함이 없다’는 말은 헬라어로 ajdhlovth"(아델로테스)라는 단어인데 확실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물이라는 것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부자 삼대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재물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물이라는 것은 정함이 없는 것입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재물입니다. 잠언 23:5절 말씀을 보면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재물이라는 것은 허무한 것입니다. 하늘에 나는 독수리가 날아가듯이 언제 날아가 버릴지 모르는 것이 재물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잠언 27:24절 말씀에서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잠 27:24). 그렇습니다. 면류관이 대대에 있지 못하는 것처럼 재물은 영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재물은 정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이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한 자들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가 소망을 둘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 본 디모데전서 6:14-16절 말씀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밝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우리 하나님은 복되시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복들을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복의 근원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복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복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것 즉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을 복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의 복을 모르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 보면 세상에 있는 것이나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마귀적이고, 정욕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2:15-16절 말씀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다 하나님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좇아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마귀적인 것이요, 정욕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런데 이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때 성도가 누릴 복이란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홀로 한분이신 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같은 분이 없습니다. 이사야 44:6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한분이십니다. 그런데 홀로 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을 장차 온 우주에 나타내실 것입니다. 지금은 믿음으로만 보이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믿는 자든지, 믿지 아니하는 자든지 다 그를 볼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애매모호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게 자기의 영원한 이름으로 맹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이것을 성경 전체가 계시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메시아가 오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말씀하신 대로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말씀하신 대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다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습니까? 우리가 정말 이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면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로 오실 분, 곧 철장 권세를 가지시고 세상의 권세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부수어버리실 만왕의 왕으로 오실 분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주님만이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그 영생의 주님께서 허락하심으로 죽음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 우리가 그분을 믿는다면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어도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속성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자기의 사역으로 말씀하시고 보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일을 우리가 알고 믿는다면 우리에게서 당연히 어떤 삶이 나오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의지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17b절을 보면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6:17b).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탐욕 때문에 모든 것을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가 늘 결핍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이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늘 결핍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이 높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가 부 하려 하는 자들의 경고를 받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부한 자들에 대한 경고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아계시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 18절 말씀이 부담스러운 말씀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말씀일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들이 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한 자들이 해야 할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한 자들은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해야 합니다.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선한 일’이란 일반적인 선행을 가리키는 것으로 뒤이어서 나오는 말들에 대한 총괄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곧 부자들은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은 재물에 대하여 끝없는 욕심을 부리기보다 그 가진 재물로 선한 사업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부한 자들은 그 가진 재물로 가난한 자들에게 인색함으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나눠주어야 합니다. 또한 단순히 재물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18절 말씀은 이미 주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 곧 이미 생명을 받고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9절의 말씀 곧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는 이 말씀은 결코 율법적으로 행하고 지켜서 생명을 얻으라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면 내가 선행을 쌓으면 그 결과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자기선행으로 생명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18절에서 말씀하는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이 무엇을 하실지 알고 믿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열매인 것입니다. 이미 생명을 얻은 자가 주님의 살아계심과 일하심과 그분의 약속을 성취할 것을 믿는다면 이런 삶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정말 주님의 말씀을 믿는 자인가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곧 내가 이미 생명을 받고 믿음으로 사는 자인가를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자입니까? 나의 삶 가운데서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곧 생명을 얻은 자가 아닙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를 마치면서 디모데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합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디모데에게 자신이 부탁한 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바른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며,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자들은 이미 믿음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21a절을 보면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3-4절 말씀을 보면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디모데전서 4:1-2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6:9-10절 말씀을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처음부터 믿음에서 벗어난 자들에 대해서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의 말씀으로 서신을 마무리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경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 1:5절 말씀에 보면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이 경계하는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르게 알고 믿기 위한 것입니다. 바르게 알고 믿는다면 당연히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오는 사랑으로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요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원하며 바울은 서신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일에 더욱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더욱 힘써 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선한 일을 행하며, 선한 사업에 부하며,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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