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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디모데전서 공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디모데전서 2:1-8
 
오늘부터 우리는 디모데전서 2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으면 기도할 것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4:7-8절을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로 하여금 열심히 기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복음을 들으면 기도할 것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주권대로, 당신의 뜻대로 이루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당신께서 다 이루어 가시는데 우리의 기도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기도가 자기 자신의 정욕을 위하여 구한 것이었다는 반증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들어보니 지금까지 자신이 신앙생활이라고 해온 것이 순전히 자기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종교생활이었음이 들통이 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회개하고 제대로 구하여야 할 바를 구하여야 하는데 이래도 죄, 저래도 죄인데 기도하면 뭘 하나 하면서 기도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잘 못된 것입니다. 기도를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서 더욱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본 말씀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18-19절을 보면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날마다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이라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이라면 우리의 실력으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엡 6:12).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진리로 허리에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6:10-20절을 보면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영적인 싸움을 위하여 주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무장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진리와 의와 복음과 믿음과 구원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장은 세상을 사는 일에 있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무장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장 위에 무엇을 더하라는 것입니까? 에베소서 6:18-19절을 다시 보면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또한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자신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증거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성도에게서 당연히 나타나야 할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위한 기도만 하다가 기도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니 아예 기도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첫째로 권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만을 위한 기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간구, 기도, 도고, 감사가 모두 기도에 대한 말입니다. 간구는 특별한 제목이 있는 기도를 말하며,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를 말하고, 도고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말하며, 감사는 모든 간구를 감사함으로 아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를 구별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하나님께 감사가 교회의 기도생활에 으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6-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기도의 대상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특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로마 황제의 핍박이 심하여 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들을 핍박하는 그러한 자들을 위하여서도 기도하라고 합니다. 곧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을 위해 무엇을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그들도 회개하여 진리를 알고 구원에 이르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또한 성도들이 경건하고 단정하게 고요하고 평안하게 생활을 할 수 있음도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논란이 되는 말씀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바란다는 말씀이 보편 구원론인가 하는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곳에서는 보편 구원론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신 자들만이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3-6절 말씀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4:9-10절 말씀을 보면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에 기초해서 보면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바란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사람이 헬라어에서 관사가 없이 모든 이라는 뜻이기에 전체를 말하는 모든 이가 아니라 구원하기를 원하는 모든 자라는 뜻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9절 말씀을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아무도 멸망치 않고의 대상이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라는 말에 제한을 받는 것입니다.

 

둘째는, 유대인들의 배타주의를 배격하는 말로 보는 것입니다. 지금 에베소교회 안에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이 들어 온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관은 배타적입니다. 특정한 신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여야 하고,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는 등의 교리를 전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공부할 때도 봤습니다만 유대인들이 얼마나 배타적이었는지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서도 이방인에게 전도가 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특별한 구원관을 깨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죄인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인간의 신분과 자격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함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오직 주님께서 차별 없이 선택하여 주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말씀을 잘 알아들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귀머거리요, 소경이었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누구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볼 때에 가장 미운 사람, 가장 원수 같은 사람이라도 그를 위하여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를 하는 자는 자신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러한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자신의 무가치함을 아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은혜를 입었다면 저 사람이 은혜를 입을 경우 나는 그 사람의 발바닥도 따라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은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교만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수록 자신이 은혜로 부름 받았음을 더 절실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오직 한 분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만 증거 되고 자랑이 되어 질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교회에서는 중보기도가 마치 유행처럼 사용되어 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선교단체에서 주로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교회에서도 아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기도회 이름도 중보기도회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수준 낮은 기도이기에 이제 이웃을 위하여,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보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준이 자기 욕심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 보다 더 의롭고 높다는 은근한 과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중보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중보의 기도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 얼마든지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인간들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그렇게 하는 근거로 성경을 인용합니다. 아브라함이 조카를 위하여 기도한 것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남을 위한 기도라는 뜻이 있지만 그러나 세 번씩이나 간구, 기도, 도고라고 하는 것은 기도를 강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지만 그 기도함이 결국 어디로 가야하는 것입니까? 참된 중보자가 되시는 주님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지만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4:14-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온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도 다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대제사장의 직분을 영원토록 온전하게 행하실 수 있는 중보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 없으신 자기 몸을 속전으로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는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7절 말씀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7). 그러나 마귀는 이 중보자의 역할을 무효화시키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입니다. 가장 그럴듯한 하나님의 일인 양 꾸미면서 속이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기도를 하면서 중보자를 배척하게 만들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대로 중보자를 찾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대로 기도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할 때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고 그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아야만 살아갑니다’고 하는 것이 기도의 참된 자세 입니다(히 4:16). 그러므로 기도란 자신의 실력이 없기에 날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교만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 사도가 2년 동안이나 성경을 가르친 교회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 사도로부터 2년간이나 성경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상당한 성경적인 지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과 족보와 신화에 매달리게 하는 자들이 일어난 것입니다(1:3-4). 바울 사도는 이러한 자들을 잘 분별하여 물리치도록 디모데를 보내기는 했지만 나중에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교회를 보면 거짓 선지자를 잘 분별하여 내었지만 첫 사랑을 잃어 버렸다고 책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조사를 해보고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5절 말씀을 보면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은 잘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을 놓고서 기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 다툼과 변론을 그치고 기도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눈에 티를 보기보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날마다 주님의 더 깊은 은혜의 보좌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참된 교회로 날마다 세워져 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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