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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일 설교


올바른 물질관(2)-염려 버리기!


말씀:마태복음 6:25-34
요절:마태복음 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지난주에 주님께서는 잉여물이 있을 때 그 재물을 어디에 쌓아야 하는가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물질관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은 잉여물이 없는 상황 가운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의식주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의식주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신자나 불신자 할 것 없이 염려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의식주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25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하셨습니다. 의식주 문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부족하거나 없을 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염려가 바로 이 의식주 문제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25절과 31절, 34절에 걸쳐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주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의식주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분명하고 정확히 규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생각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의식주 문제를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제자들에게도 이 의식주 문제에 대한 생각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신 것입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의식주에 대한 생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한순간이라도 의식주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식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향해서, 그리고 오늘날 우리를 향해서 책망하시는 것은 바로 근심, 걱정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 번이나 반복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염려란 초조해 하고 걱정하며 안달하고 흥분하는 마음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땅의 생활에서는 반드시 물질이 필요합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위해서 반드시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식주를 위해 필요한 물질을 우리의 생각과 노력과 활동을 통해서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 그냥 주시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왕의 백성들은 이것들로 인하여 마음에 염려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왜 염려해서는 안 되느냐 하면 염려한다고 해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27). 곧 염려한다고 해서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5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그러므로…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낱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러므로”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지난 19-24절에서 다루었던 진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잉여물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를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참으로 가치 있는 것들에 관한 진리를 먼저 분명히 제시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사물을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식별하는 성한 눈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나쁜 눈으로는 사물을 뒤틀리게 보고 흐리게 볼 뿐 아무 것도 분명하고도 정확히 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초점이 정확히 맞는 성한 눈의 필요성을 강조하시면서 결국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성한 눈을 갖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삶을 참되이 본다는 것은 곧 사물을 영원한 것, 신적인 것,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는 성한 눈은 참 빛을 삶 속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섬김에 있어서 통일성이 있어야 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섬기던 그를 위해 우리 모든 것을 바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인정하셨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재물을 섬길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참된 가치를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들의 삶이 통일성 있게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주님께서는 “그러므로…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그들이 이미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으며, 참된 분별력과 통일성 있고 일관성 있는 바른 삶을 영위하는 참된 원리를 발견했으므로 그 사실 위에 굳게 서서 불안해하거나 초조하거나 흥분하거나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기초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돌보시는가에 관한 사실들을 상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26-30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들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새를 예로 들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요지는 우리가 심는 일이나 거두는 일이나 모아들이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미물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처럼 돌보시는데 하물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인간들에게 훨씬 더 자상한 배려와 관심을 쏟지 아니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는 이성적 예측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땀 흘림도 심음도 거둠도 모아들임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너희에게 이성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으니 훨씬 더 중요히 여겨 너희를 돌보아주실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내일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내일 일에 대해서 생각하되 다만 하나님이 새들을 돌보시듯이 우리를 완벽하게 돌보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또한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솔로몬뿐만 아니라 세상에 어떤 왕도 하나님께서 친히 입히시는 들의 백화보다 더 아름다운 옷을 입지 못할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되 하나님께서 친히 아름답게 입혀 주십니다. 30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백합화의 예를 말한 후 염려하는 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울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말은 ‘더 잘’입니다.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보존을 위하여 수고하고 일하는 이성적인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지 못한 그 꽃들도 하나님께서 그토록 섬세히 돌봐 주신다면 하물며 하나님께로부터 한량없이 넘치는 능력들을 부여 받은 우리들이야 훨씬 더 섬세히 돌봐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31-32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신 후 다시 한번 “그러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들보다 제자들을 더 잘 먹이시고 입히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식주를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구하는 것은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33절에 보면 주님은 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 사로잡혀 염려하지 말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음식과 의복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수품이지만 주님은 이런 것들로 인해 염려에 빠지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옷을 입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음식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삶의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주님은 삶의 참다운 원리가 되는 그 근본적인 열정으로 하여금 삶의 모든 부분에 침투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삶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너희가 염려해야 할 것은 그 삶의 모든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제자들이 삶의 모든 부분에서 실제적으로 구해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이 삶의 모든 부분에서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열심히 구한 다음 그 다음 문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심고 거두고 모아들였으면 그 다음 문제는 내 버려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거두고 모아들인 것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분량이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 일로 염려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다 알고 계시고,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의 모든 쓸 것을 무한정 공급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백지수표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넉넉히 공급해 주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해서는 안 됩니다.

염려는 언제나 미래에 대하여 관심을 갖습니다. 바로 내일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34절에 보면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요약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일에는 우리가 그날에 대해서 반드시 염려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일에 가서도 염려할 문제가 생길 것이니 그저 오늘 뜻한 바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내일의 문제를 오늘 염려한다고 해서 내일 염려해야 할 몫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매일 매일 우리로 하여금 염려케 하는 괴로운 일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괴로움은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부의 자녀들로서 오늘을 살아갈 뿐입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5:8절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결코 우리가 거두거나 심거나 모아들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고하고 계획하는 것 때문에 염려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것들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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