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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3일 설교



참과 거짓(1)-좁은 문! 넓은 문!



말씀: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13-29절 말씀은 산상수훈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을 네 가지 은유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 네 가지 은유는 진짜와 가짜가 한 쌍의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곧 좁은 문과 넓은 문(13-14),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15-20), 주여 주여 하는 자와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21-23),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24-27)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네 가지 은유는 모두 종말론적 심판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어떤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와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준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에 좌우됩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고,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결론적인 말씀에는 위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네 가지 은유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은 네 가지 은유 중에서 첫 번째 가르침인 두 문(길), 곧 좁은 문(길)과 넓은 문(길)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 인생길은 여러 가지 길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두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곧 영생의 길과 멸망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 두 길 중에 한 길을 가야 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어보면 이 사실을 우리가 잘 볼 수 있습니다. 기독자는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영생의 길을 갔습니다. 여러 분들은 어느 길로 가고 있습니까? 어느 길이 우리가 가야 할 진짜 길일까요? 오늘 본문인 13-14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십니다. 주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시는 것입니까?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 두 가지 문이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고,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좁은 문은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고, 넓은 문은 그 길이 넓어 찾는 이가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좁은 문과 넓은 문을 대조시켜서 우리가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가를 분명하고 단호하게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초점은 많은 사람들이 문으로 들어가는데 진정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생명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3:24절에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는 두 개의 문이 있고, 두 개의 길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과 길이 함께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문’과 ‘길’을 항상 함께 연결시켜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각자 분리시켜서 따로 따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좁은 문과 넓은 문이 있고,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다고 분리해서 따로 따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훈을 놓쳐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과 길을 함께 연결시켜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문과 길을 함께 연결시켜서 이해할 때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좁은 문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계속해서 좁은 길을 가게 되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넓은 문을 통해서 들어가 계속해서 넓은 길로 가게 되면 그 길이 넓어서 가기가 아주 쉽지만 멸망에 이르고 말 것이다.’ 여기서 ‘좁은 문’은 명백히 제한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금하신 넓은 길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반면에 ‘넓은 문’은 훨씬 매혹적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은 좁은 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그런데 여기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인생의 여정에서 점차로 제한해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좁은 길로 가면 그 끝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처음부터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은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삶은 처음부터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좁은 길을 따라 꾸준히 나아가면 종국에는 보상을 받게 될 것을 격려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많은 자기 부인과 박해로 특징 지워지며, 그러나 종국의 보상이 필히 내포되어 있는 길로 제자들이 들어가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하에서 작은 문을 통과하여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박해와 자기 부인의 좁은 길로 나아감으로써 시작되는 것입니다. 반면 넓은 문은 찾는 이가 많고 그 길이 넓어 가기가 쉽고 편하지만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제자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우리는 마태복음 7:13-29절 말씀을 산상수훈의 결론적인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은 단순한 핍박과 고난의 길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2절에서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4:22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당하는 많은 핍박과 고난과 여러 가지 손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주님께서 명하시는 직접적인 것은 산상수훈의 모든 주님의 가르침과 관련이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으로 주시는 집짓는 자의 비유에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고…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을 행하지 않는 자는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마 7:24-27). 우리는 이 말씀을 볼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산상수훈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좇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삶’을 살기로 선택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의 가르치는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삶의 과정이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넓은 문’과 ‘널찍한 길’과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선호하는 편안하고 인기 있는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이 아닌, 세상을 거스르는 불편하고 손해 보는 자기부정적인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팔복으로 특징 지워지는 제자들의 필연적인 삶의 방식이요, 세상과 구분 되는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 곧 제자의 도를 좇아 사는 삶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쉽고 평안함을 좇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인생을 사는 삶은 인가가 없습니다. 애통하며, 온유한 인생을 사는 자는 나약하게 보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어리석어 보입니다. 오른 뺨을 때릴 때 왼편 뺨을 돌려 대며, 속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 겉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를 같이 가 주는 것은 바보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찾는 이가 적습니다. 그러나 이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주님의 이 산상수훈의 가르침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삶에 관심이 없습니다. 애써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하지 않습니다. 자기만족과 자기 뜻에 만 관심이 있습니다. 육신의 안일과 평안함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자기 계획과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서 자기 뜻을 이루어 달라고, 자기 계획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요구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비추어서 자기의 삶을 점검하지 않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해 놓고 ‘이만하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버립니다. 산상수훈을 단지 하나의 이상적인 가르침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귀한 이 생명의 말씀을 액자 속에만 넣어 둡니다. 주님의 산상수훈 말씀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어떤 삶인지, 더 나은 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몸부림치는 투쟁을 하지 않습니다. 무늬만 예수님의 제자지 세상의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갑니다. 이런 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아닙니다. 이런 자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요,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좁은 문, 넓은 문’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십니다.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종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들어가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현재형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지금은 넓은 문, 넓은 길, 쉽고 평안한 길을 가다가 종말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계속해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현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적지만 이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현재 어느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바랍니다. 그 길이 비록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어 외롭고 힘든 길이지만 생명의 길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행함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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