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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3일 설교


참과 거짓(4)-두 건축 자!


말씀:마태복음 7:24-27
요절:마태복음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장마철마다 우리나라는 폭우로 인해 많은 집이 무너지고 도로와 농경지가 유실됩니다.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거세어서 어느 해보다 더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마치면서 우리에게 이러한 익숙한 광경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두 종류의 집이 있습니다. 바위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입니다.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강한 바람이 불어 올 때 바위 위에 세운 집은 끄떡없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부수어지거나 무너져 버립니다. 폭우와 홍수와 태풍은 마지막 날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비유어입니다. 사람들은 그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날의 심판장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날 사람들을 두 종류로 분류할 것입니다. 바위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바위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들은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 속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책망과 함께 쫓겨나 영원한 멸망의 세계로 들어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면서 결론으로 이 비유를 주시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24)라고 하신 반면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26)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한 단어 차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않는 자”입니다. 곧 ‘행하는 것’과 ‘행하지 않는 것’ 거기에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나의 이 말은” 산상설교의 말씀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이제까지 말씀해 오신 산상설교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설교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단순히 윤리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 하는 종말론적인 심판과 관련된 말입니다. 곧 주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설교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혜롭고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평소에는 그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 그 차이가 들어나게 됩니까?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태풍이 불어오면 알게 됩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비가오고 창수가 나도 끄떡없습니다. 태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비가오고 창수가 나면 쓸려 가버립니다. 태풍에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두려운 것은 내가 지혜로운 자인지, 어리석은 자인지 확인하는 순간이 오면 그 때는 이미 늦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칭찬과 꾸중은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즉각 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비와 창수와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종말론적인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내가 반석 위에 집은 지었는지, 모래 위에 집을 지었는지 확연히 들어나게 됩니다. 그 때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음을 깨닫고 후회하고 뉘우쳐 봐도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연습이 없습니다. 비와 홍수와 태풍에 비유된 하나님의 심판도 반복이 없습니다. 한번 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지혜롭게 바위 위에 집을 짓도록 충고하신 것입니다. 짧은 생애 동안 어리석게 모래 위에 집을 짓지 말라는 경고로 주신 것입니다. 나는 어디에 집을 지은 자입니까?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입니까?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입니까?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을 잘 못 이해합니다. 잘못 이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이 비유의 말씀을 행위 구원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구원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반석 위에 집을 잘 지으면 그 공로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을 잘 짓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은 이런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행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행함’과 ‘행하지 않음’만을 따지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말을 듣고 행하는 것”과 “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이란 주제가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그러나 이 말씀 이면에는 믿음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한다”는 말 속에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을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삼아 생각과 행동을 고치고 바른 삶을 꾸려가는 것은 적어도 이 말씀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이것을 말씀하신 예수님 자신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가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의 진가를 알고 지킨다는 것은 그 말씀을 하신 분에 대한 태도 곧 그 말씀을 하신 분을 믿는 믿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위선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하는 것이 됩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거부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불순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을 믿음이 제외된 행위만을 강조하는 행위 구원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따라서 이 비유의 말씀은 앞 단락의 말씀과 분리하여 따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 본문을 따로 분리해서 읽기 때문에 많은 잘못된 이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므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앞 단락 21절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라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이어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의 말씀에 대한 자연스러운 귀결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부터 말씀하신 주제인 “나의 이 말”은 앞의 “하나님의 뜻”과 연결됩니다. 21절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오늘 본문의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것”은 동격입니다. 이 두 말이 동격이라는 것을 연결해 주는 것이 바로 “그러므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행함”이란 바로 예수님의 “이 말을 지켜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가르쳐주셨으며,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신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 곧 예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으로 말씀하신 산상설교의 말씀을 삶 전체로 실현하는 사람들이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잘 모르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아버지의 뜻을 알려주신 분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고 따르면서 그 분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것은 말로만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실제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지 않는 자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면 그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과 감정보다 더 귀중히 여기며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값을 치루더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시작되는 초창기에 제자로 부르신 자들을 향해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고…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다”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의 정체를 간접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된다면 이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자세를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자세가 정확하게 고정된 다음에야 이 말씀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산상설교를 말씀하실 당시 예수님의 정체는 아직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이른 시기에 자신의 말씀을 듣고 지킬 것을 강요하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에 이어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하심으로 자신의 설교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의 이 같은 요구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를 하나님의 것과 같은 것으로 믿지 않는다면 “내 말”과 “하나님의 뜻”을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설교를 왜 지켜야만 하는가 하고 반문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자신의 산상설교를 하나님의 뜻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산상설교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자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산상설교를 듣고 행하도록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산상설교 말씀을 듣고 놀라고 좋아하기만 하는 것은 주님이 뜻하신 바가 아닙니다. 그 말씀이 너무 좋고 귀한 말씀이기 때문에 외우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거나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우리의 삶을 통해 구현해내야 합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지혜로운 자가 되시겠습니까? 어리석은 자가 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이 산상설교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최소한 늘 지키려고 애쓰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폭우와 홍수와 태풍에 대비해서 집을 반석 위에 세우는 자와 같습니다. 이런 자가 지혜로운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산상설교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런 자는 폭우가 몰려오는데도 불구하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집을 쉽고 빨리 지을 수 있을지라도 금방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런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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