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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8일 설교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말씀:마태복음 9:35-38
요절:마태복음 9:37-38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왕의 세 번째 기적 이야기의 마무리 단락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과 촌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온갖 환경의 온갖 사람과 접촉하면서 그들이 목자 없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이들을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을 고쳐 주시는 사명을 계속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육신을 입고 계신 왕은 이 땅에서의 사역에 한계가 있으셨습니다. 홀로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 벅차셨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함께 일할 동역자들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왕께서는 자신을 도와 사명을 함께 감당할 일꾼을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는 왕의 마음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왕의 사역에 함께 동참하는 일꾼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5절에 보면 예수님은 모든 성과 촌을 두루 다니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세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 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 날도 그렇듯이 당시의 어느 마을이나 도시에도 문제들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무리지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언덕 위의 작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온통 포도밭과 밀밭뿐인 골짜기 마을의 사람들에게도 가셨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이런 곳을 두루 다니시면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치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자신의 사역을 그렇게 수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은 생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구약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말씀을 가르치셨는지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습관적으로 하시던 대로 가는 곳마다 먼저 회당에 들어가셔서 선지서를 찾아 이미 알려진 익숙한 말씀들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새로운 생명과 의미를 주셨으며, 그 말씀이 의도하는 바를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또한 왕이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왕이 하신 두 번째 사역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세 번째 왕의 마지막 사역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그런 능력을 통해서 바로 사탄의 통치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짐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처럼 왕이신 예수님은 온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입고 계신 왕의 이 같은 사역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예수께서는 홀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시기에 벅차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의 몸으로서는 그렇게 많은 곳을 빠짐없이 다 돌아다닐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역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누구에 의해서든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방황하는 뭇 백성을 보셨기 때문에 그 사역을 꼭 감당하셔야만 하셨습니다. 이제 왕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함께 일할 동역자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을 임명할 때가 이르렀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이 말씀은 왕께서 함께 사명을 감당할 일꾼을 임명해야 할 이유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왕의 하나님 나라 사역은 어디서 비롯되었습니까?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36절에 보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민망히 여기셨다”라는 말은 직역하면 ‘내장이 몸 안에서 꿈틀거렸다’는 뜻입니다. 즉 ‘민망한 심정’은 애간장이 끊어질 듯이 함께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상태로서 성경에서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예수님의 두드러진 성품입니다(14:14; 15:32; 20:34; 18:27). 예수님은 진리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그 대상, 일방적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있었던 그 대상,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들에 매여 있는 그 대상을 바라보시며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문둥이의 슬픔을 함께 느끼셨고, 혈루증 여인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친구가 되어 주셨으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인생의 고통을 바로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셨습니다. 우리는 ‘민망’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그저 불쌍히 여긴다는 뜻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사람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으며, 그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뿐입니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할 수 없으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동정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것들을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즉 그들의 고통을 바로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셨으며, 그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민망히 여기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인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주된 소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인도하기를 원하셨던 것은 그들을 민망히 여기시는 마음에 비롯되었습니다. 민망히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민망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서는 우리 인생은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거룩하심과 공의를 제재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과 ‘민망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호세아 1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고멜과 같이 반복해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을 당장 심판하셔야 마땅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에 비탄을 자아내게 하였고, 구원을 준비하게 하였으며,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무리를 민망히 여기셨다”는 이 말씀은 아주 간단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인간의 말로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짧은 말씀 속에 무리를 향한 왕의 마음과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무리들의 모습은 “저희가 목자 없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는 말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도저히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양은 맹수로부터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방어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임팔라 같이 발이 빠르지도 않고, 코뿔소 같이 적을 단번에 꺼꾸러뜨릴 수 있는 강력한 뿔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양은 숏 다리에 몸은 통통하여 잘 뛰지도 못하고 구덩이에 빠지면 잘 헤쳐 나오지도 못합니다. 방향감각도 없어서 목자가 인도해주지 않으면 꼴이나 물을 찾지 못합니다. 결국 목자 없는 양은 맹수에게 찢겨 죽거나 황량한 벌판을 헤매다가 탈진하여 죽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합니다. 겉으로 볼 때 강해 보여도 내면에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고스란히 안고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생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심은 단지 감정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실제적인 행동으로 연결됩니다. 문둥이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대어 치료해 주셨습니다. 혈루증 여인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그녀를 고쳐주시며 평안을 선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치고 또 고쳐도 민망히 여겨야 할 대상들은 너무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도와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으셨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무리들을 민망히 여기신 예수님은 가만히 계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역을 함께 감당할 일꾼들을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37-38절을 보십시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인생들을 추수할 곡식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추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비전이셨습니다. 자신의 비전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리를 돌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에 동참하며, 하나님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기도하기 위해서는 무리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곧 목자 없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백성들을 보고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들을 추수하고자 하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무리들을 돌보며 가치 있는 일을 하려 한다면 반드시 우리도 그 분의 시각으로 무리들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참 목자이신 주님께 당신께서 보시는 대로 우리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소서’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서 보시는 대로 볼 수 있다면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보시고 ‘민망히’ 여기신 예수님을 통해 이웃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늘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고, 많은 인생 문제를 앉고 고민하는 분도 있습니다. 제 앞가림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도 있고, 교만과 이기심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별 문제없는 것 같지만 우리 인생들은 저마다 다 자신의 인생 문제를 앉고 살아갑니다. 문제가 없는 인생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위 사람들을 보고 답답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에 무관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그 분의 백성이라면 ‘민망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겉으로는 아무리 경건의 모습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바리새인보다 더 나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찾아볼 수 없었던 마음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 특히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인생들에 대해 민망히 여기는 심정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추수할 주인이신 하나님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시도록 힘써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민망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온 동네로 나아가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고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역을 함께 감당할 일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동역자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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