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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호세아서 공부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말씀:호세아 1:10-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상을 섬겨 음란하여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음란하여진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메시지를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을 하여 낳은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서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 첫째 이름이 ‘이스르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흩어버리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로루하마’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로암미’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내 백성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선지자가 고멜과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흩어버리심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자기 백성이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그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포는 단지 이스라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스라엘과 같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목적이 된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목적이 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되는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는 바로 오늘날 우리들에게 선포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해 내셔서 가나안 땅에 들려 놓으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순종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 받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온갖 우상을 숭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북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고, 남쪽 유다도 망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유효하셨습니다. 나라가 망하여도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본 1:7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그러나’라고 합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흩어지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내 백성이 아니라고 심판을 선언 했지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것입니다. 시편 89:20-37절을 보면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내 손이 저와 함께하여 견고히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 원수가 저에게서 강탈치 못하며 악한 자가 저를 곤고케 못하리로다. 내가 저의 앞에서 그 대적을 박멸하며 저를 한하는 자를 치려니와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저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을 인하여 그 뿔이 높아지리로다. 내가 또 그 손을 바다 위에 세우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세우리니.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또 그 후손을 영구케 하여 그 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치 아니하며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 그 후손이 장구하고 그 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하셨도다.(셀라)”라고 했습니다(참조. 삼하 7:1-7).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규례를 행치 아니하고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징계는 하지만 나의 인자함을 다 거두지는 아니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다윗에게 맹세한 언약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심판 가운데서도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인하여 그들에게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이 심판이 선포됨으로 그 빛을 더욱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도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 죄에서 해방 되었습니다’라고 해도 그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도리어 이들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무슨 소리하는 거냐. 내가 언제 죄인 되었느냐’고 화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죄에 대해 어떻게 심판하시는지를 먼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불순종 아래 갇혀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32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불순종 아래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올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만 나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실상을 먼저 고발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흩어 버리실 것이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호세아서가 끝이라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의 시작을 보면 ‘그러나’로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반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소망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앞에서 부정적이고, 심판의 내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인해서 반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소망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것입니까? 10-11절을 보면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의 선포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 측량할 수 없고 셀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전에 흩어버리시고, 긍휼을 베풀지 않고,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신 곳에서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그러시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노라고 그러시면 긍휼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약속이 심판에 이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선포하고서 심판 이후에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로서는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두목을 세우고 나오는 것입니다.


11절을 다시 보면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한 두목을 세우고 나온다’라는 말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스룹바벨이나 여호수아 제사장과 같은 자들을 머리로 하여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들까지 주님의 백성들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0절에서 보면 흩어버린 이스라엘이 다시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도록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1b절에서 “이 날에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절에 보면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대로 ‘이스르엘’이란 흩어버린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스르엘’이라는 말 속에는 또 다른 하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심는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곡식을 심을 때 주로 흩어서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에 보면 씨가 길가에도 떨어지고, 가시덤불에도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씨를 흩뿌리고 나서는 땅을 갈아엎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르엘’이 곧 흩어버리는 것이 때로는 심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심는 행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이스르엘은 흩어지는 심판을 의미하였지만, 그러나 이제 여기서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이라”는 것은 심어진 열매가 많이 나오리라는 그런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소망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요한복음 12:24절의 말씀에 비추어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자신의 죄가 아니라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임할 저주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하나님의 흩어버리심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흩어버리심을 당하신 주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 열매의 결과가 바로 오늘날 예수 믿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아니라 하던 그 자리에서 곧 저주를 받아 죽은 그 자리에서 내 백성이라는 부르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화평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본 에베소서 2:11-18절을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곧 하나님의 언약에서 외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10절 말씀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곳에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심을 받는 이 말씀, 그것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너희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으리라”는 이 말씀의 성취를 신약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로마서 9:19-29절을 보면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9:16절에 보면 사람이 구원을 얻고자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하나님의 긍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호세의 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심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심판하는 그 자리에서 다시 당신의 백성을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자기 백성을 창조하여 내시는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심판받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의 신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셔야 마땅하고, 긍휼을 입지 못하여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칭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 할 정도로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분으로만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의 자녀라 부르심을 입은 것이 얼마나 엄청난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 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라, 긍휼을 입은 자라는 부름을 입은 자들은 누구를 두목으로 모시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머리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저주 받으시고, 그 심판의 자리에서 자기 백성들을 자기 피로 창조하여 내신 한 두목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목은 말 그대로 머리입니다. 왕입니다. 주입니다. 목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두목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분명히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일 뿐입니다.


에스겔서 34:20-2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목자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찐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로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내 양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찌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찌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1:7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기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말씀을 따라 유다 지파의 후손, 곧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이 되셔서 화평의 언약을 세우심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로 부름을 받은 성도의 머리, 곧 우리의 두목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두목으로 삼고 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신 심판과 저주로 인하여 우리는 심판과 저주를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그의 백성이라 부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의 두목을, 우리의 왕을, 우리의 목자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이 목적이 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왕이 되어 세상의 보암직한 것들에 마음이 빼앗기지 말고 우리를 자기 백성 만드시기 위하여 오늘도 일하고 계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를 회복시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약속을 우리의 두목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 가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는데서 돌이켜 우리의 주요, 왕이요, 목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 그 분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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