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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호세아서 공부

 

너희 어미와 쟁론하라

 

말씀:호세아 2:1-7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한 두목을 세우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을 말씀하신 후 회복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에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10-11). 그런 후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보면 성도들이 이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이 말씀은 너희 형제에게 내 백성이라, 너희 자매에게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하며 서로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짜기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2a절을 보면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 어미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국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내로 부름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가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은 저의 남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4절 말씀에 보면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어미의 행음으로 낳은 자녀들이기에 그들은 음란한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선지자는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쟁론하라’는 말은 새 번역에 보면 ‘고발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어미와 쟁론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미인 이스라엘이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어미인 이스라엘을 고발하여 회개케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 얼굴에서 음란을,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2b절을 보면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제해야 할 음란이 무엇입니까?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한 남편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바알과 같은 온갖 우상을 좇아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발하여 회개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심판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3-4절에 보면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한 이스라엘이 회개치 아니할 때 행하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로 하여금 벌거벗겨서 그 태어나던 날과 같이 하겠다고 하십니다. 곧 벌거벗은 것과 같이 수치스럽게 하고 비참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광야 같게 하고,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그들로 목말라 죽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 더 풀어 보겠습니다. “너의 어미와 쟁론하라” 이 말씀은 자기 엄마를 고발하라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있어서 엄마란 어떤 존재입니까? 자기의 근원입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요, 의지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의 어미인 이스라엘 국가를 고발하라는 것입니다. 어찌 자기의 근원을 고발하고,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역사를 보면 모든 출발이 다 떠남에서 시작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창 12:1). 고대사회일수록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힘이 되고 배경이 되는 것을 스스로 박차고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마을에서 나쁜 짓을 하는 자를 벌할 때 제일 중한 벌이 무엇이었습니까? 마을에서 추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가장 무서운 벌이 출교였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러내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떠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러한 것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의지하고 있는 한 주님을 의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의 경우에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이집트에서 떠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의 비옥한 땅들을 버려두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리에서, 사람을 의지하는 자리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아내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온갖 우상숭배가 가득하게 되어 있을 때 거기에서 안주하고 있는 것은 그와 함께 그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그것을 고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 사회에서 반드시 핍박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선지자들을 핍박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쟁론하지 않는다면 자기도 망하고 이스라엘도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우리가 고발하고 제거해야 할 음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어린이가 부모를 의지하듯이 그렇게 기댈만한 것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돈과 권력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명예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한마디로 하면 결국 자기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상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곧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며, 우리가 고발하고 제거해야 할 음란인 것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만해도 정의, 민주화 이런 것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취직, 돈, 가정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돈을 의지하는지 모릅니다. 돈만 있으면 든든해 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또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가정을 귀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하나님도 자기 가정을 행복하게 하여 주면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도 ‘가정행복 세미나’를 가집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내 가정이 행복하여 진다는 것은 결국 내가 행복하여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 가정, 내 인생의 행복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뿐만 아니라 자기의 교회도 얼마든지 기댈만한 것이 됩니다. 지금 네 어미를 고발하라는 것이 이스라엘이 몸담고 있는 국가이듯이 오늘날 우리가 교회로 모이고 있는 이 교회가 단지 내가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진리와 상관없이 무조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를 보십시요. 교회 다니고 있는데도 자기 교회 자랑하고, 자기 목사 자랑하고, 자기교회로 오라고 하는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전도라고 생각하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기 교회로 빼가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이러한 생각이 없습니까? 다른 교회, 다른 집안, 다른 회사는 잘못되어도 내가 속한 교회, 내가 속한 사회, 내가 속한 직장, 내 자식은 무조건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주님께서 왜 죽으셨는지 자명하여 집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얼마나 미웠으면 가장 수치스럽고 저주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고함을 질러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되십니까? 결코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 자리에서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아끼고 좋아하는 것들을 고발하시면 우리의 안색이 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2:51-53을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14:25-27절에 보면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쌔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따라가고 싶습니까? 아니면 배척하고 싶습니까? 배척하고 싶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호세아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어떻게 심판하시는 것입니까? 3절을 다시 보면 벌거벗겨 그 나던 날처럼 하겠다는 것입니다. 광야같이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한 묘사가 에스겔서 16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물론 에스겔서 16장은 남유다에 대한 고발이지만 이스라엘 전체의 모습으로,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16:4-5절을 보면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처음 나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은 한마디로 들에 버려진 피투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을 보고 불쌍히 여겨 씻기고 먹이고 입혀 황후처럼 키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때부터 하는 일이라는게 창녀보다 더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창녀는 돈을 받고 몸을 팔지만 그들은 오히려 자기 돈을 주며 바람을 피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에스겔서 16장에 가득합니다.

 

에스겔서 16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다 볼 수는 없고 15-29절만 보겠습니다.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 후무하니라.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화 있을찐저! 화 있을찐저! 네가 모든 악을 행한 후에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 머리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하체가 큰 네 이웃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 일용 양식을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오히려 부족히 여겨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오히려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참으로 이스라엘은 온갖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창기가 된 모습을 적나라 하게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희의 어미가 행음한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 연애하는 자들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연애하는 자는 바로 바알과 아세라 신들입니다. 이방의 강대국들입니다. 자기들의 힘이 될 만한 모든 것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이 연애하는 것들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모두 남편 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되어졌는데, 그리고 지금 가나안 땅에 살면서 누리는 그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이 연애하는 우상들이 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떡과 물과 양털과 삼과 기름과 술을 자기들이 연애하는 자들이 준다고 하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땅을 차지하고 사는 것은 언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싸우셔서 그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이 준다고 하면서 그 우상을 연애하고 따라 간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또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오늘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우리를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나던 날처럼 만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벌거벗겨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의지하고 믿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6-7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이키지 아니하는 이스라엘에게 가시로 막고 담으로 막아 버려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따라 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처럼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다 탕진하여 버리고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여도 누가 주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탕자는 그제야 아버지 집을 기억합니다. 자기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기에 더 이상 아들로는 인정을 받지 못할지라도 품꾼의 하나로는 써주시지 않겠는가 하고서 돌아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그제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라.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고 하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호 2:7). 왜 이렇게 해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악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쟁론하고 고발하여도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를 친다고 하면서 얼굴색이 변하며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을 듣고 주님께 회개하며 돌아오는 자는 소수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자만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호세아서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이 말씀이 나와 상관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까?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좋아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연애하고 있습니까?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과 성품과 뜻과 힘이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세상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는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는 가시와 담에 막혀서야 비로소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시와 담으로 돌아오게 된 자들이 주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자기의 의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긍휼만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래 참으시고 돌아오도록 기다리시는 우리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에스겔 16:60-63절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너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만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자신을 사랑하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자랑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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