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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호세아서 공부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말씀:호세아 2:14-23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의 모습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의 상태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모든 것을 바알이 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따라, 곧 그 긍휼과 자비의 크심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심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배불러지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이 지금 누리는 그 모든 것들을 자신들이 연애하는 바알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알에게 은과 금을 바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숭배의 죄악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누리고 있던 모든 것들을 빼앗아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먹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모든 것까지 빼앗아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나던 날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만들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수치를 그들이 연애하는 자들 앞에 다 드러내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벌하심에서 건져낼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온 천하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땅이 황폐하여지고, 모든 기쁨의 절기들이 폐하여지고, 농토와 과수원이 수풀이 되어 들짐승들이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누리던 그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심으로 그들로 연애하는 자들에게서도 미움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비로소 전 남편이 나았다고 하면서 돌이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그러면 음란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알리시는 것입니까? 먼저 지난 시간에 본 2:6-7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이 연애하는 자를 따라갈 때 가시로 그 길을 막고 담을 쌓아 저들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저가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찌라도 만나지 못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셔서 그들이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본 남편에게로 돌아 올 때 그제야 비로소 그들을 말로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라고 합니다. 여기서 가장 강조되는 단어가 ‘내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 이스라엘을 개유하시는 것입니다. ‘개유’란 우호적인 말로 설득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 빼앗긴 이스라엘을 다시 설득하여 어디로 데리고 가는 것입니까? 거친 들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친 들’이란 빈들이요, 광야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광야란 늘 기억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의 세월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친 들로 데리고 간다는 것은 그들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나왔던 그 장소입니다. 그곳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만이 있어야 하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어디에서 외쳤습니까?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마태복음 3:1-2절에 보면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친 것입니다. 당시에 이미 화려한 성전이 있었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러한 도시가 아니라 빈들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을 금식기도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새롭게 자기 백성을 창조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14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설득하여 광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말로 위로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로 위로 한다’는 말은 원문 그대로 보면 “저의 마음에 말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생명의 근원입니다. 이곳에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으로 기록하시는 것입니다. 새 언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 자신의 법을 새겨 주심으로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1:31-33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새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런데 이 언약은 과거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서 약속의 땅에 세우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살만해 지자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또다시 우상숭배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으시면서 자신의 법을 아에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 새겨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새 언약을 맺으시고 그 법을 마음에 새겨 주시는 것처럼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말씀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고치시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지금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그들의 마음에 하시고서 비로소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골’이란 ‘환난’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에 아간이 그의 가족과 함께 매장당한 골짜기입니다. 여호수아서 7장에 보면 아간이 여리고 성 전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몰래 전리품을 취합니다. 아간은 노략한 물건 중에서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 오십 세겔을 보고 탐이나서 그것들을 몰래 취하여 자기 장막에 감추었습니다. 옛날 전쟁에서 물건을 약탈하여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은 가나안의 첫 성으로써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안의 물건을 하나도 취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간은 탐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싸우심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이렇게 수고하였는데 이정도 쯤이야 내가 가져도 되겠지!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였습니다. 아간의 이와 같은 범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를 한 것입니다. 그 때 백성들이 그 패배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백성들 가운데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뽑힌 것입니다. 결국 아간과 그 가족과 그의 모든 재물이 다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고 불에 태워져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모두가 아골 골짜기에서 처형당하여야 마땅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포도원을 주시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으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위로입니다.


1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 날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주시는 날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되는 날입니다. 이 날에 이스라엘은 다시는 하나님을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내 남편’이라고 부르리라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을 내 바알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여기서 바알이란 ‘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우상 바알을 내 주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제는 아예 그 우상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을 내 남편이라고 부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신약시대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면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 19:6-8).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위로를 하시고, 말씀을 마음에 기록하시고, 남편이 되어 주셔서 그 입에서 다시는 바알이라 하지 않고 내 남편이라고 부르게 되는 그 일을 누가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면 ‘내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위로 하시고, 말씀을 마음에 기록하시고, 남편이 되어 주시고, 그 입에서 다시는 바알이라 하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로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버리시고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입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누가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온갖 바알의 이름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연애하고, 내가 좋아하고, 나의 관심사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의 일, 빼앗으시고, 설득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말씀을 주시고, 그래서 바알을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고 부르게 하신 것 외에 또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 것입니까? 18-20절을 보면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들로 헤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해로운 짐승과 새와 곤충들로부터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적의 활과 칼을 꺾어버림으로 전쟁을 없애고 평안히 눕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재해와 인간세계의 전쟁까지 다 제거하여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장가드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19-20절 말씀을 다시 보면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여호와를 단지 지식으로만 알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반역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그들에게 찾아오시고 그들에게 장가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스라엘로 부부가 서로 한몸이 되어서 알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장가든다’는 말은 처녀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곧 이혼한 아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말하기를 전혀 새로운 결혼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패역한 아내입니다. 남편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고 바알을 좇아갔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것은 영원히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에게 다시 스스로 장가를 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여호와를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로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참으로 이것은 패역한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음란하고 더러운 여인을 거두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영원토록 감사해도 부족할 터인데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참금을 가지고 장가드시는 것입니다. 그 지참금이 무엇입니까? 19절을 다시 보면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드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장가 드셔서 영원히 함께 사신다고 하십니다. 장가드시되 그 지참금으로 의와 공변됨(정직)과 은총과 긍휼을 가지고 장가드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공변됨, 그리고 은총과 긍휼히 여기심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이러한 것을 선물로 주셔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자기의 아내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 사랑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23절에서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내가 나를 위하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저를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란 사실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하신 일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뀌어 버리면 구원파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구원을 확인하는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하나님의 속성이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호세아 11:8절을 보면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불붙듯 하심으로 그렇게 타락하고 음란한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은 죽어 마땅한 죄인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통하여 받아들여짐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19-20절을 다시 보며 마치겠습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그렇습니다. 그렇게 음란하고 패역한 자를 광야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셔서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과 진실함으로 장가드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대접하고 있습니까? 무언가 잘 보여서 내가 소원하는 바를 받아내려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알아감으로 23절 말씀처럼 “주는 내 하나님이라”는 복된 고백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기 백성 아닌 자를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시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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