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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호세아서 공부


나의 진노를 물 같이 부으리라


말씀:호세아 5:8-15


우리는 지난 시간에 호세아 5:1-7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정조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선고되는 것을 봤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호세아 5장 말씀을 공부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너희가 기브아에서 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호각을 불며 벧아웬에서 깨우쳐 소리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찌어다. 견책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무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필연 있을 일을 보였노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에브라임, 즉 북 이스라엘은 황무하여 질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필연적으로 있을 일을 내가 보였다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견책 곧 징계를 받아 망할 것이 확실하기에 남 유다는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형이 잘못해서 매를 맞으면 동생은 분위기 파악해서 알아서 기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고집을 부리고 반항하면 동생이 더 맞을 수 있습니다. 형이 잘못해서 맞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너도 꼭 같이 잘못을 하는가 하면서 더 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망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니 남쪽 유다 너는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고하는 말씀이 8절 말씀입니다.


8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기브아에서 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호각을 불며 벧아웬에서 깨우쳐 소리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기브아라든지 라마와 벧아웬이라는 곳은 이스라엘 지역 중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안전지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브아와 라마와 벤아웬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경계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로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터지려면 북쪽이나 남쪽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중간에 위치해 있는 이곳들은 피해가 가장 적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팔을 불고, 호각을 불며, 깨우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우치라는 것입니까? 북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세력이 베냐민 네 뒤를 좇는다는 경고의 소리를 외치라는 것입니다. 곧 남 유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북 이스라엘이 망한 것같이 너희도 망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경고의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 경고의 말씀대로 남 유다가 회개하지 않고 북 이스라엘의 길을 감으로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B.C. 722년에 망한지 한 세기가 조금 지난 후인 B.C. 587년 바벨론에 의해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필요로 합니다. 돈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불러도 나에게 힘을 보태어 주는 하나님을 요구하는 것이지 나의 삶이 근본적으로 죄된 삶임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키기 위하여 주를 부르는 자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그러면 인간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관적인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절망적인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루어 온 문명이라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배척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벨탑 사건입니다. 하나님처럼 살고자하는 것이 인간이 공동으로 추구하고 있는 목표인 것입니다. 인간의 이러한 죄악된 모습을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이스라엘을 보면서 인간의 실상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지금도 입고 살고 있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기들의 욕심을 따라 살고 있는 겁니다. 곧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본문 10-11절에서 보게 됩니다.


10-11절을 보면 “유다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좇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당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유다의 죄가 무엇입니까? 지계표를 옮기는 것입니다. 10절을 다시 보면 “유다 백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계표란 자기 땅의 영역표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와서 땅을 하나님으로부터 무상으로 분배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싸우셔서 이스라엘에게 영토를 무상으로 분배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비를 뽑아 그 경계를 정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지계표를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방백들은 자기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영토의 표시인 지계표를 옮겨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자기 땅을 확보하기 위해 경계를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우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역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모두 다 몰아내고 파괴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적극적으로 가나안의 우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적인 지계표를 옮겨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 선지자 당시 유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유다에게 자신의 진노를 물 같이 부으리라고 하십니다.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10b). 진노를 물 같이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유다를 향한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홍수 피해로 수십, 수백 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봅니다. 우리나라도 여름에 몇 차례씩 홍수 피해를 입습니다. 장마 때 쏟아지는 물의 위력을 보면 대단합니다. 모든 것을 휩쓸어 가 버립니다. 차도, 집도, 사람도 다 쓸어 가 버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지계표를 옮긴 유다에게 무서운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북 이스라엘의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령보다 사람의 명령 좇기를 좋아한 것입니다. 11절을 다시 보면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좇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당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번역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명령’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 ‘명령’은 히브리어로 ‘wx' 또는 wx’ {tsav} 짜브 또는 {tsawv} 짜브’라는 말인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영어 성경들은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비슷한 ‘우상’으로 번역했습니다.즉 에브라임이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그런 영어 번역을 따르지 아니하고 원래대로 ‘명령’이라고 번역했는데, 그냥 ‘명령’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명령’과 혼동이 되니까 ‘사람’이라는 말을 넣어서 ‘사람의 명령’이라고 의역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의역은 본문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낸 번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명령을 따랐습니다.다시 말해서 그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데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뜻입니다.


에브라임 곧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을 좋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명령 좇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명령 좇기를 좋아한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가르침이 더 매력이 있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가르침이 더 합리적이고 자기들을 좋게 하여 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독선적이고 비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루도 못살 것 같았습니다. 비전도 없어 보이고, 하루살이처럼 살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삶 같았습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데 그러한 꿈을 하나님의 말씀은 허무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삶이 마치 갑갑한 감옥살이를 하는 삶 같이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보다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서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왕들에 대하여 ‘악한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더라’는 말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6:2절 한 곳만 보겠습니다.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저희 죄로 나의 노를 격동하였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이 역사서에 보면 곳곳에 나타납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이 여로보암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 방식으로 잘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백성들이 안전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그들이 만든 수 만가지 방법들이 그들을 돕지 못합니다. 가장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그곳이 바로 사자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에브라임과 유다를 어떻게 하시는 것입니까?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썩히는 것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좀처럼, 썩히는 것처럼 에브라임과 유다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좀이나 썩는 것은 요란스럽지 않습니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망하게 하는 길입니다. 옷에 좀이 썰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겉모양은 멀쩡한데 입으려고 하면 불에 탄 재처럼 부수어지는 것입니다. 썩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속에서 썩어진 것은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하지만 그것을 갈라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좀이 쓸고 썩어서 완전히 패허가 되게 하듯이 완전히 멸망시켜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경고의 말씀대로 그들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나 간에 이들이 이렇게 되었을 때에 ‘우리가 병이 들었구나!’ 하고 깨달았다면 그들은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까? 13절을 보면 앗수르 왕 야렙에게 가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이 자기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저가 능히 저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13). 여기서 ‘에브라임이 자기 병을 깨닫고 유다가 자기 상처를 깨달았다’라는 말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들의 병과 상처의 원인을 알았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에 대하여 깨닫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조공을 내야 하는데 낼만한 돈이 없거나 흉년이 들었는데 곡식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별 문제가 없는 줄 알았는데 비로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불거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무력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앗수르라는 눈에 보이는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죄를 깨달았다면 앗수르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으로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로인해 그들은 눈에 보이는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한 것입니다. 여기서 야렙 왕이란 싸움의 왕이란 말로서 앗수르 왕의 별명으로 봅니다. 자신들이 병이 들고 상처가 났다면 치료자인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이방의 왕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병이들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로 돌아가야 사는 길인데 힘만 있으면 살겠다고 앗수르 왕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북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도 같은 모습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정조를 잃어버린 모습이요, 멸망을 당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 있는 이스라엘 나라는 국제정세를 따라 이리 저리 도움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랐던 구원은커녕 그들은 앗수르에게 점령당하고 만 것입니다. 남 유다는 나중에 바벨론에 의해 망하지만 앗수르에 의하여 괴롭힘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도움을 받고자 은과 금을 보내어 도움을 청하였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오히려 괴로움만 더하여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렙 왕이 그들을 고치지 못하고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도움을 요청하자 그들은 와서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백성들을 괴롭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후로도 세계의 열강들이 이 땅을 집어 삼키려고 얼마나 각축전을 벌렸습니까? 그 결과 지금의 남북으로 나라가 두동강이 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열방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그들의 힘을 빌려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다면 이스라엘 나라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나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으로 계시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왕 됨을 싫어하여 이방 왕의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마음이 빼앗긴 것이요, 정조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에브라임과 유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신다고 합니까? 14절을 보면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나 곧 내가 움켜갈찌라. 내가 탈취하여 갈찌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이, 유다에게는 젊은 사자 같이 움켜 갈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탈취하여 갈찌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자의 움켜감의 위력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유다에게는 젊은 사자 같이 움켜 갈 것이라고 합니다. 에브라임보다 더 심판이 강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렇게 하시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내가, 즉 여호와 자신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건져낼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역사적으로 보면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왕하 17:1-6),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왕하 25:1-21). 그때 아무도 그들을 구원해 줄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이르기를”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자가 삼키듯이 사로잡혀 가고난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가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됨은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얼굴을 돌이켜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의지하였던 세상의 힘들이 오히려 그들을 삼켰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다시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마치 음란한 고멜이 자기 남편을 버리고 떠났다가 나중에 죽을 고생을 하고서는 그래도 옛 남편이 나았다고 하면서 돌이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의지하던 앗수르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 그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여호와를 간절히 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이미 신명기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4:25-31절을 보면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격발하면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열국 중에 흩으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쫓아 보내실 그 열국 중에 너희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이며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결국 북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나 간에 모두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좋아하던 것들을 좇아갔다가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올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좋아하고 의지하던 것들에 의하여 수많은 고난을 당한 후에 그제서야 주께로 돌아가자고 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교훈을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명령을 따라 살 때 그 길이 망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명령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의 지혜를 따라 살고 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 길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세상 지혜를 따라 사는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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