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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17일 설교


임마누엘!



말씀: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 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 성탄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길 바랍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이름은 여러 가지입니다. 마태복음 1장과 2장에는 세 가지 이름이 나타납니다. 예수, 임마누엘, 유대인의 왕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속에 이런 이름이 나타난다는 것은 성탄의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임마누엘, 유대인의 왕 이 세 가지 이름을 통해서 성탄의 의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의 이름 ‘임마누엘’을 통해서 성탄의 의미를 배우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역사하사 임마누엘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성탄의 은혜와 기쁨이 충만케 하시길 바랍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여기서 임마누엘이란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탄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이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하나님과 교제하던 자였습니다. 이런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다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불행한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성탄이 기쁘고 즐거운 것은 바로 이 임마누엘 때문입니다.

오늘 분문은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전 700여 년 전에 선포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사야 7:14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예언할 때 남쪽 유다는 아하스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다는 북쪽 이스라엘이 아람 나라와 동맹하여 유다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유다는 에브라임이 아람과 동맹하여 쳐 들어올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이 아람과 동맹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들은 두려워 사시나무처럼 떨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아하스 왕에게 보내어 유다 왕국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7: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북쪽 이스라엘과 아람나라가 동맹을 맺어 난리를 친다 하더라도 그들은 불에 타 연기 나는 두개의 부지깽이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과 백성들은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증표로 오늘 말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어 세상의 구주로 오실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하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의아해 하고 머뭇거리는 요셉에게 약속의 말씀으로 임한 것입니다.

그러면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는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지금 적들은 벌떼처럼 몰려오고 있으며 그들은 막을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기도의 응답을 주신다면 내가 너희에게 강한 군대를 보내 주겠다던가, 아니면 하늘의 유황불로 재앙을 내려 적군을 몰살시키겠다던가 하는 구체적인 응답을 좀 보여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뜬금없이 처녀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열악한 군대와 무기를 가지고 강한 적군을 이기는 일이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아니면 처녀가 아기를 낳는 일이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가 아기를 낳는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열악한 군대와 무기를 가지고 강한 적을 이기는 것이 처녀가 아들을 낳는 것보다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처녀가 아기 낳는 불가능한 일을 너희에게 증표로 보임으로 나는 천지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이며 전능자임을 보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이 너희에게는 턱없이 불리한 전쟁이지만 창조자 하나님 내가 너희와 함께 하면 너희를 구원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겠느냐? 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예언들 가운데는 당대에 이루어질 일에 대한 예언과 동시에 후대에 이루어질 일에 대한 이중적인 성취의 예언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아하스에게 주신 임마누엘의 약속이 바로 그러한 예언입니다. 전쟁의 위협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두려워 말라는 약속으로 주신 임마누엘의 예언은 그 후로 700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 고난과 슬픔 가운데 메시아가 오시기만을 고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제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죄와 죽음의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는 모든 인류 가운데 임하여 오심으로 구원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진정한 복이라 생각하십니까? 최고의 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실 때 하신 말씀은 언제나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아마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복을 생각할 때 단순히 자손과 땅을 생각합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은 많으리라는 자손의 축복, 그리고 동서남북을 너에게 주리라는 땅의 약속, 이것들은 분명 아브라함이 받은 큰 복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받은 최고의 복은 눈에 보이는 이러한 것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너의 방패요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의 가장 큰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았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그의 방패와 상급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니 그 밖의 다른 복은 자동적으로 따라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향을 떠나 외삼촌 집을 향해 여행하다가 들판에서 홀로 잠을 자던 야곱의 꿈에 나타나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하신 명령에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모세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그리고 모세의 뒤를 이어 백성을 인도하는 여호수아에게도 동일한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이 얼마나 든든한 약속입니까? 참으로 저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승리하였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영광을 얻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구보다도 깊이 경험하고 체험한 사람이 세리 마태였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뚜렷하게 이 임마누엘의 사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절과 28:20절 말씀을 보면 마태복음 전체가 임마누엘로 감싸기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전체가 이 임마누엘의 사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전체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창기와 같이 가장 더러운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마태는 동족들로부터도 무시를 받고 배척을 받았습니다. 돈과 정욕을 좇아 살았습니다. 아무도 그와 함께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의 구렁텅이에서 어둡고 비참한 인생을 살던 자였습니다. 소망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리 마태와 함께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세리 마태와 함께 하시기 위해 하늘나라 영광을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창기 외에는 아무도 그와 상종해 주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를 친구 삼아 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먹고 마시셨습니다. 그를 제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그를 사도로 삼으사 당신이 하실 일을 대신 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임마누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태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도가 되어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의 은혜는 마태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의 인생을 가장 복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주님의 탄생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이것은 마태의 마음을 울렁이게 이름이었습니다. 임마누엘! 이것은 마태로 하여금 눈물 흘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이름이었습니다. 임마누엘! 이것은 마태의 인생을 새롭게 하고 새 힘이 쏟아나게 하는 거룩한 이름이었습니다.            

마태에게 임한 임마누엘의 은혜가 우리들 가운데도 충만히 임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마음이 기쁘고 행복합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최대의 문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얼마나 확실한가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은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졌다는 소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소원이 이루어졌느냐 아니냐에 따른 것도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성공했고 얼마나 출세했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살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나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동행하심을 느끼고 믿고 산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이 우리를 참으로 복된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이번 성탄절은 바로 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내 생활 가운데서 더욱 절실히 체험하며 믿고 고백하는 감사의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로 오신 주님의 낮아지심을 본받아 낮은 자들과 더불어 고난의 삶을 나누며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들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죄로 고통 받는 인간 세계에 하나님 자신이 친히 내려와 우리 대신 스스로 벌을 받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분은 이사야의 말씀처럼 우리의 질고를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사람들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병든 자의 치료자가 되어 주시며 슬픔을 당한 자의 위로가 되어주십니다. 약한 자들의 고난을 지식적으로 아실뿐만 아니라 친히 체험적으로 알고 느끼고 함께 아파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런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도 질병 가운데 고통당하는 분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의 임마누엘의 은혜가 모든 질병 가운데 고통하는 영혼들에게 충만히 임하길 바랍니다. 경제적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임마누엘의 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 임마누엘 우리 주님은 우리의 고난과 기쁨의 자리에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이 임마누엘의 사랑과 은혜를 늘 기억하고 주님과 함께 하며 감사드리는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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