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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5일 설교


고향에서 배척당한 그리스도


말씀:마태복음 13:53-58
요절:마태복음 13: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13장에서 모든 천국 비유의 말씀을 마치신 후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의 사역은 가르침(5-7장)과 능력 행함(8-9장)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13:53-17장은 마태복음의 네 번째 이야기 단락입니다. 이 단락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13:53-16:20절과 16:21-17장입니다. 전반부는 메시아의 지속적 사역에 대한 반응들을 다루고 있고, 후반부는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반대는 점점 더 거세져 갔습니다. 그런 반면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이해하고,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이루어집니다(16:13-20).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힘을 다해 십자가에 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 후 마지막으로 군중들의 공식적인 반대를 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공부하기 전에 이와 같은 네 번째 이야기 단락에 대한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본문은 네 번째 이야기 단락 첫 번째 부분 가운데서 고향에서 배척당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13장 비유장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미래의 사역을 위하여 제자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을 준비시키신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셨는데, 이 일을 위해서 왕께서는 제일 먼저 자신의 고향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고향에서 배척 받으셨습니다. 왕께서는 그들의 믿지 않음을 인해 그곳에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고향에서 배척 받으셨을까요?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상고할 때에 주의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53-54절에 보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고향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왜 왕께서 가장 먼저 고향으로 가셨을까요? 나사렛은 왕께서 소년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낸 곳입니다. 지금도 육신의 부모와 형제들이 살고 있는 고향입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고향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이제까지 사역을 섬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하실 모든 일을 거의 끝내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 귀향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제까지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곧 십자가를 향해 떠나십니다. 십자가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 감당할 사역 중에 절정에 해당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결정적인 사역을 앞두고 주님께서 먼저 고향을 방문한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마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총장 직무를 위해 떠나기 전에 고향을 방문하는 것과 같이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귀향을 이처럼 단순히 인간적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생애를 끊임없이 비추었던 빛은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다는 의식이었습니다. 곧 우리 주님의 단 한 가지 기쁨과 즐거움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34절에 보면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향 방문은 큰일을 앞에 두고 단순히 인사차 둘러보는 그런 방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어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고향을 제일 먼저 방문하셨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왕께서 고향에서 하신 일을 통해서 우리는 간접적으로 그 뜻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54절에 보면, 왕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율법을 읽고 그것을 해석하시면서 그 심오한 의미를 그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모세의 글로부터 선지자들의 글에 이르는 모든 것을 주께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왕께서 그곳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신 것을 볼 때 고향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증거 하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들에게 자신이 바로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왕께서는 고향 사람들이 그리스도이신 자신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왕께서는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제일 먼저 고향 나사렛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저희가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심히 놀랐습니다. “이 사람의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그들이 왜 놀란 것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의 지혜와 능력에 놀란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그들이 이제까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그렇게 설명하고 해석하는 경우를 이전까지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수십 년 동안을 암송해 왔던 그 익숙한 말씀들을 주께서 그들에게 풀어 말씀하시자 그 말씀들이 빛과 영광으로 그들 가운데 타올랐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다시 말씀하신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들로서는 전혀 낯선 어떤 새로운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변변히 배운 것도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에는 학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혜가 있었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던 소문들이 사실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지혜와 능력을 보고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배척했을까요? 55-57a절에 보면, 인간적인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과 똑같은 한 인간으로 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갓난아기에서부터 소년 시절을 거쳐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다 지켜본 사람들입니다. 그의 부친과 모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도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어릴적 아버지와 함께 목수 일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으로 예수를 잘 안다고 하는 상식이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척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고향을 떠나 가버나움에 갔다 오더니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덧입고 온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어디서 그런 지혜와 능력을 덧입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라고 의아해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에게서 어떤 신적인 지혜와 능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를 인간적으로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를 배척했다”는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그들이 넘어진바 되었다’입니다. 곧 예수님은 그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지혜와 능력에 단순히 당황한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앞에 계시된 신비에 직면하여 주님께 잘 못된 태도를 취함으로써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놀라게 한 그 무엇이 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인간적인 시야와 이해력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것들이 실제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예수가 하나님이시요,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 그리스도이심이 증거 됐던 것 같습니다. 그들 가운데 실제적인 초자연적인 실체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예수가 하나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만한 놀라운 실체를 경험했지만 인간적인 생각으로 거절한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실체를 경험했을 때 우선 복종하고 조사는 그 다음에 해야 합니다. 전기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우리는 전기의 실체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받아드려 집을 비추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실체를 발견했을 때 일단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들은 실제 사실을 접하고 기이한 일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영원한 멸망의 위험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통해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고 놀라고만 있었지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그 이상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예수를 인간적으로 잘 안다고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이 인간적인 생각 때문에 그들은 진리를 발견하고도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문제는 일상적인 표준으로 예수를 설명해 보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그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에게 복종할 수 없다’고 고집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복종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적인 표준에 의하여 결코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불신앙입니다.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사건은 13장의 주제를 잘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거절하는 주제가 고향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향에서 배척당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예수님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습니까? 57b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이 말씀은 자기 고향 아나돗 사람들에게 배척 받은 예레미야의 경험을 반영한 것 같습니다(렘 1:1; 11:21). 예수님은 이런 고향 사람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고향에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셨습니다(58). 우리는 여기서 믿음과 능력 행하심의 관계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믿음과 능력 행하심에는 상관성이 명확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에 응답하십니다. 마태복음에는 기적에 있어서 믿음의 중요성이 자주 언급됩니다(마 8:10,13; 9:2, 22, 28-29 등). 만약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체험하고 그런 증거들에 기초해서 그분을 믿기만 했다면 주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많은 이적을 행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많은 일들을 행하시고 말씀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앙은 예수의 능력을 차단해 버렸습니다. 또한 주께서 그들에게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버렸습니다. 곧 그들의 불신앙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고 멸망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나사렛 사람들을 통해서 큰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인간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고 체험하게 되었을 때 믿음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적으로만 아니라 의식적으로 그 사실에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의 그 동일한 지혜가 더 많은 빛을 비추어 주며, 바로 그 동일한 능력이 더욱 힘 있게 역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나사렛 사람들과 같이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고도 거절한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우리에게 더 이상 이해시키지 못하실 것입니다. 더 이상 능력 있는 일들도 이루시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사렛 사람들을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나사렛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삶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사람의 삶 가운데 오셔서 그 지혜와 능력의 전율을 느끼게 해 주십니다. 그러면 그것을 느낀 그 사람은 기이히 여기고 의아해 하다가 많은 경우 그 빛을 거부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더 이상 자신을 그 사람에게 알리시지 아니하십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참으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경험했을 때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것을 거절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그것을 인간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교만한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히 주님의 지혜와 능력의 역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의탁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죄를 범하고 있지 않는지 늘 살펴봐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에 응답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 지혜와 능력을 경험했을 때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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