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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1일 설교


오병이어 표적


말씀:마태복음 14:1-21
요절:마태복음 14:20-21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오늘 본문은 왕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참으로 이 사건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모두 다 나오는 기적 사건입니다(막 6:30-44; 눅 9:10-17; 요 6:1-14). 이것은 그만큼 이 기적 사건이 중요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 기적 사건이 왜 중요할까요? 이 사건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이 사건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2절에 보면 오병이어 기적 사건 전에 저자는 먼저 세례 요한의 죽음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나사렛에서의 배척 사건 이후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마태복음에서는 배척 사건 바로 다음에 세례 요한의 죽음 사건이 나타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분봉 왕 헤롯의 귀에까지 들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고향에서의 배척 사건(6:1-6)과 세례 요한의 죽음(6:14-29) 사이에 열두 제자 파송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도 열두 제자 파송 사건을 기록한 후에 헤롯이 이 소식을 듣고 당황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9:7-9). 이로 보건대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요한의 죽음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져서 분봉 왕 헤롯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곧 마태복음 14장의 기록은 세례 요한의 생애의 일부분으로 기록되었다기보다는 예수님 사역의 진전 차원에서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주인공은 세례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14장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구조를 자세히 보면 사건 발생 순서상 1-2절 다음에 13절을 바로 붙여 읽는 것이 바른 연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신 것은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한 사건은 그 이전에 이미 발생했었습니다. 예수께서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로 가신 것은 분봉 왕 헤롯이 자신에 관하여 말한 것을 들으셨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1-2절 다음에 바로 13절로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13절로 바로 연결하지 않고 3-12절까지 장황하게 세례 요한의 죽음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자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이 사건을 통해서 헤롯의 성격이 어떠했으며, 그 당시 예수께 대한 그의 태도가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예수께서 헤롯이 자신에 대한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배를 타고 떠나 빈들로 가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헤롯은 어떤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예수께 대한 그의 태도가 어떠하였습니까? 여기서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로서 갈릴리를 관할하던 헤롯 안티파스 입니다. 그는 분봉 왕으로서 영토의 1/4를 통치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엄격히 말하면 왕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권력 밑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스스로 왕이라고 자처하였다는 것을 보면 그의 성격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야심이 많은 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부도덕한 생활에 탐닉해 있던 방탕한 자였습니다. 그는 그의 첫째 부인인 나비테아 왕 아레타스 4세의 딸과 이혼하고 자신의 이복형 아리스토불루스의 딸이자 그의 이복형 헤롯 보에투스(‘빌립’)의 아내 곧 자신의 조카이자 형수인 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이는 형제의 아내를 취하지 못하도록 한 율법을 어긴 행동임이 분명하였습니다(참조. 레 18:16; 20:21). 세례 요한은 이런 그의 행동이 적법하지 않음을 자주 지적하여 말하였습니다. 4절의 ‘말하였다’라는 동사 ‘엘리겐’(?λε?εν)은 미완료시제로서 요한의 지적이 반복적이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의 이런 반복된 지적에 헤롯은 화가 나서 요한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으로 심히 괴로워하기도 하였습니다(9). 그는 양심의 가책과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는 무리로 인해 그를 죽이지 못했습니다(5). 이런 그가 요한의 목을 벤 것은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취했을 때였습니다.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의 춤에 기분이 좋아진 헤롯은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다 주겠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맹세했습니다. 여기서 헤롯이 ‘맹세했다’는 말도 복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술에 취해서 사람들 앞에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맹세를 하며 허세를 부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여우같은 헤로디아는 딸에게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달라고 하게 하였습니다. 헤롯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요한을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왕의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헤롯은 정의와 진리를 버리고 자기의 헛된 명예를 찾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객기로 세례 요한을 죽였지만 그는 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1절에 보면 이런 헤롯에게 예수에 관한 소문 곧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놀라운 능력의 역사들이 보고가 되었습니다. 이 보고를 듣고 헤롯은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하며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 도다”(2). 그의 공포심은 예수님에 대한 적대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미 양심을 범하고 진리의 외침을 묵살했던 헤롯은 예수를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롯이 자신에 대한 소식을 듣고 공포에 사로잡혀 두려워했다는 소식을 듣고 헤롯의 힘이 미치지 않는 빈들로 떠나가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헤롯이 두려워서 물러가신 것이 아니라 아직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3:32-33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헤롯이 예수를 죽이고자 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예수께서는 헤롯에게 다음과 같이 전갈하라고 했습니다.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볼 때 예수께서 헤롯이 두려워서 물러 간 것이 아니라 그가 이루어야할 이틀 동안의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빈들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13절에 보면 예수께서 배를 타고 빈들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수많은 무리들이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예수님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고 했습니다(막 6:33).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가는 것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면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달려왔는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그들이 이토록 기를 쓰고 쫓아온 이유를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고 했습니다(요 6:2). 무리들은 예수께서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능력의 역사를 보고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의 현실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달려온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실리적인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표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보다는 병자들의 병이 나았다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무리들은 저마다 심각한 인생 문제를 앉고 예수께로 달려 나온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따라 “그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주셨습니다. 15절에 보면 예수님은 풍성한 자비를 베푸시느라 해가 지는 줄도 모르셨습니다.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제자들은 무리들의 저녁끼니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네로 보내어 사먹게 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내어 사먹게 하자고 제안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16절에 보면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제자들에게 무엇인가 다른 교훈을 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고자 했던 교훈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우리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제자들을 돕고자 함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해가 저물어 식사 때가 되었을 때 무리들을 보내어 먹을 것을 사먹게 하자고 제안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명하시며 도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대답을 보면 제자들에게는 어찌하든지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심정과 자신들의 가진 것으로는 먹일 수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목자의 심정과 믿음을 가르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어떻게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까? 주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오병이어를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 그리고 19절에 보면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자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후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습니다. 고기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자 다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이 때 배불리 먹은 사람의 수는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도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은 수는 족히 만 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고도 그 남은 조각을 거두니 열 두 바구니에 가득하였습니다.  

   오병이어 기적 사건은 엘리사의 기적 사건(왕하 4:42-44) 곧 빵 스무 개와 자루에 담긴 채소로 백 명을 먹인 사건과 출애굽 당시 만나 사건(출 16장)을 회상케 합니다. 요한계시록 2:17절에 보면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만나가 다시 주어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은 그들의 그러한 기대의 성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배경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볼 때 예수님의 이 기적은 메시아적 잔치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에 기초해서 볼 때 이 기적 사건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 기적은 메시아의 잔치가 예수의 사역 가운데 이미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 잔치에 참여하여 메시아께서 제공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양식을 누리고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그리고 ‘열 두 바구니에 가득 남았다’고 했는데, 여기서 열 두 바구니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열두 바구니에 가득한 빵의 모습은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아의 잔치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요한복음 6:53-58절에 보면 요한은 이 기적을 성만찬과 연결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성만찬의 모체인 최후의 만찬이 마지막 완성된 메시아 잔치의 전조임을 시사하신 예수님의 말씀(26:29)에 비춰볼 때 이 기적은 완성될 메시아 잔치의 전조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기적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아이십니다. 택하신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표적을 통해 자신이 성경에 약속된 그 메시아시오, 생명의 떡이 되심을 증거하고자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생명의 떡!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는 왕에 대한 두 적대 세력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헤롯을 중심으로 한 적대 세력이고, 두 번째는 오병이어 기적 사건을 경험한 군중들입니다. 군중들은 적대세력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22절에 보면 제자들을 재촉하여 그곳을 속히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요한복음 6:14-15절을 참조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은 예수를 잡아다 억지로 왕을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요 6:14).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크게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빵문제를 해결해줄 왕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속히 그들을 떠나신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구약에 약속된 그 메시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의 빵문제를 해결해 주실 메시아가 아니십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문제 곧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을 주실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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