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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9일 설교


가나안 여인과 왕


말씀:마태복음 15:21-28
요절: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5장에서 주님께서 행하시는 역사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신 사건’(21-28)과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32-38)은 지금까지 주님께서 행해오신 사역과는 지리적으로나 그 대상 면에 전혀 다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은 유대 땅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셨습니다. 그러나 15장에서의 사역은 이방 땅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행하신 사역이었습니다. 저자 마태는 이와 같은 주님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면을 염두에 두고 15장을 읽어야 합니다. 그럴 때 본 장을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과 다음 주에 걸쳐서 살펴볼 15:21-39절을 이해하는 열쇠는 21절입니다. “예수께서 거기를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13장과 14장에 보면 “주님께서 물러나 다른 곳으로 가셨다”라는 기록이 여러 번 나타납니다(13:53; 14:13, 22). 예를 들어, 14:13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앞에 있는 이런 유사한 진술들과는 좀 다른 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 보면 주님이 물러나시기 전에 있었던 사건과 물러나신 후에 뒤따라 일어났던 사건들 속에 명백하게 대조가 되는 사항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버려두고 언약 밖에 사는 이방인들을 향해 나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이제까지 택한 그의 백성들 가운데서 자신의 사역을 진행해 오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믿음이 성장했으며, 무리들이 주님께 모여 들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반면에 주님께 대한 반대 세력도 뚜렷하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반대 세력의 핵심은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장로들의 유전 문제로 예수께 이의를 제기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님께 대한 반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상황 가운데서 그의 택한 백성들과 관계를 끊고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 땅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인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 주신 사건’이나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는 택한 백성이 아닌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도 사역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유대 국경을 넘음으로써 지리적 한계를 넘으셨습니다. 주님은 거기서 이방 여인과 상대하시고, 언약 밖에 있는 이방 백성들 가운데서 자신의 권능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방인들은 ‘믿음’이라는 단 한 가지 원리에 근거하여 주님과 생명의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로와 시돈 땅 곧 이방 땅으로 물러가신 후 주님께서 처음으로 행하신 사역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이방 땅으로 물러가신 후 제일 먼저 상대한 사람은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왕 되신 예수님께서는 그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그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그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이 어떠한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단락은 마가복음의 평행 단락인 마가복음 7:24-30절과 비교해 볼 때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적 상황에 대한 묘사가 마가복음에 비해 매우 간략하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대화의 내용이 마가복음보다 확장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23-24절을 보면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평행구에서는 이런 내용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마태가 본 기적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기적 그 자체보다는 대화에 주된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럴 때 본문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진정한 더러움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신 예수님께서는 거기를 떠나서 이방 땅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11:20-22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두로와 시돈에 관하여 이미 언급하셨습니다. 주님은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않음을 인해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두로와 시돈의 예를 드셨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이처럼 두로와 시돈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던 이방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이신 후 유대를 떠나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던 이방 땅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땅으로 들어가신 것은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 백성이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분명히 깨닫고 있으셨습니다. 15:14절에 보면 주님은 자신에게 나아와 논쟁을 벌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소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유대를 떠나 이방 땅으로 들어가신 것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떠나신 여행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경에 이르렀을 때 누가 나왔으며, 그의 간구가 무엇입니까? 22절에 보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녀가 그 지경에서 나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들렸나이다”고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귀신들려 고통하는 자신의 딸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 치유를 요청하는 여인을 마가의 평행구인 마가복음 7:26절에서 수로보니게 족속에 속한 헬라인이라고 언급한 것과는 달리 ‘가나안 여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을 대적한 이방 민족에 속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죄로 인해 가나안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왔던 가나안 여자는 바로 이러한 족속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가의 평행 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이 호칭은 그 여인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는 고백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방 여인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22절과 25절, 27절에 보면 이 여인은 예수님을 부를 때 세 차례 모두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간구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23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부르며 자신의 딸을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흉악한 귀신들려 고통하는 딸을 둔 이 여인의 간절함이 어떠했겠습니까? 여인의 간구는 끈질겼고 간절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여자가 우리 뒤에서 계속 소리를 지르니 여자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고 돌려 보냅시다고 한 것을 볼 때 여인이 얼마나 간절하게 계속해서 간구하였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무시해 버리신 것입니다. 이를 보다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고 돌려보내자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4절에 보면 무시보다 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주님께서 여인의 간구에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신 것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선교의 대상을 이스라엘로 한정한 원칙은 이미 10:5-6절에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도 밝히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적용했던 그 원칙을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나안 여인의 간구를 들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거절에 대한 여인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25절에 보면 여자가 예수께 와서 절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여인은 낙심하여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굴하지 않고 예수님께 절하며 간구하며 매달렸습니다. 그 때 주님은 여인에게 어떤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까? 26절에 보면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겉으로 볼 때 침묵보다 더 모욕적인 말씀처럼 보입니다. 여인을 개라고 무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개’라는 단어를 우리는 유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헬라어에는 ‘개’를 가리키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퀴온’(마 7:6; 빌 3:2; 벧후 2:22)과 ‘퀴나리온’(마 15:26-27; 막 7:27-28)입니다. ‘퀴온’은 팔레스틴 지방을 떠돌아다니던 천하고, 약탈을 잘하며, 난폭하고, 썩은 고기를 좋아하며, 늑대를 닮은 개로서 유대인들이 증오하는 개였습니다. 반면 ‘퀴나리온’은 유대인의 가정에서 기르던 개들로서, 어린아이들이 잘 데리고 놀던 몸집 작은 개를 말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애완견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여기서 사용하신 단어는 작은 개를 뜻하는 ‘퀴나리온’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신 말씀은 정말 주님께서 여인을 경멸하는 투로 말씀하신 것이라기보다는 여인의 믿음을 떠보기 위한 말로서 동정심과 인정이 넘치는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여튼 애완견이건 무슨 개건 자신을 보고 개라고 했을 때 기분이 좋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몰인정하고 경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여인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7절에 보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주님의 말씀에 이 여인은 더 놀라운 지혜로운 말로 대답했습니다. 여인은 겸손히 자신을 개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여인은 겸손히 자신을 개로 인정한 후 자신의 요청을 왜 받아들이셔야 하는지 놀라운 논리로 대답했습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와! 참으로 놀랍고 지혜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인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은 큰 감동을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그녀에게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28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신 것은 이 경우가 유일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백부장의 경우에도 그의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8:10). 그런데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유일하게 가나안 여인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고 하신 것을 볼 때 참으로 주님께서 이 여인의 믿음에 감동을 받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주님께서도 감동하실 만큼 놀라운 큰 믿음이었습니다. 여인은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예수가 이스라엘의 메시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이방인을 위한 메시아이시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큰 믿음에 감동을 받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의 큰 믿음을 인정하시고 네 믿음대로 되라고 축복하시자 그 시로부터 그 여인의 딸이 나음을 받았습니다(28b). 예수님은 믿음에 반응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잃어버린 양이 아닌 이방 여인의 믿음에도 반응하시고 그녀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인의 메시아도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 사건과 이 여인의 사건을 통해서 장차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민족적 기준을 뛰어 넘어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로 구성될 것을 내다보셨습니다(참조. 21:28-22:14).

오늘 우리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메시아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의 메시아가 되십니다. 이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나안 여인과 같은 놀라운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가나안 여인과 같은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가나안 여인과 같이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나안 여인이 누렸던 그 축복을 우리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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