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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7일 설교


왕의 기적 논쟁!


말씀:마태복음 12:22-37
요절:마태복음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2장은 11장과 함께 왕에 대한 반응에 관한 말씀입니다. 12장에는 세 가지 논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논쟁(1-21)과 기적 논쟁(22-37)과 표적 논쟁(38-45)입니다. 지난번에 우리는 ‘안식일 논쟁’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시고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로부터 제자들을 변호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논쟁으로 ‘왕의 기적 논쟁’에 대해 공부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반박하시고 성령을 힘입어 쫓아내셨음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이미 임한 것임을 증거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을 힘입어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고 그 분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번 첫 번째 논쟁인 안식일 논쟁에서 주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들은 호시탐탐 예수님을 죽일 꼬투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22절에 보면 그 때에 사람들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되었다는 것을 볼 때 이 사람이 처음부터 눈이 멀고 벙어리 된 자로 살아왔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은 어느 날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 특별한 방법을 쓰거나 무슨 주문을 외우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말씀 한 마디로 그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고쳐 주시자 말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던 그가 말을 하고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를 고쳐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는 예수님께서 평소에 흔히 행하시던 기적 중에 하나였습니다. 무리들은 그 동안 예수님을 계속 지켜 보아왔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어 왔습니다. 그가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목격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이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말씀 한 마디로 고쳐 주시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보고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은 무리들은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고자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들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바리새인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24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알세불이라는 말은 당시 유대인들이 귀신들의 우두머리인 사단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사단의 힘을 덧입고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예수님을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악의적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력의 역사를 곧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신 일을 사단을 힘입어 하신 일로 매도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로 매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로부터 자신들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들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자신들의 권위가 완전히 사라질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이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웅성대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의 역사를 사단의 힘을 빌어서 일어난 것이라고 비난함으로써 백성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도록 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욕심에 눈이 멀어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로 매도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왕의 대답은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주장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반박하셨습니다. 25,26절을 보면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만일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예수께서 사단의 힘을 빌어서 사단을 쫓아낸다면 사단의 나라는 서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사단은 자신의 파괴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27절에 보면 그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삶과 모순이 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행 19:13-14).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아들들처럼 귀하게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사단의 힘을 빌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되는 태도입니다. 자기들이 아들처럼 생각하는 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결국 사단의 힘을 빌어 쫓아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논리적으로 그들의 비난을 반박하신 후 28절에서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이면 이미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임한 것입니다. 귀신이 쫓겨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그들 가운데 능력으로 임한 것임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능력으로 임한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고의적으로 부인했습니다. 자신들의 교권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도리어 사단의 역사로 매도하였습니다. 그리함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거절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거부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는 그들의 주장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소극적으로 변호하던 데서 벗어나서 적극적으로 반박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이 사실임을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29절에 보면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늑탈할 수 있습니까?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려면 그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해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었다는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을 정복하여 넘어뜨렸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곧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 사단을 결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바알세불을 힘입어 일하신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큰 능력으로 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바알세불보다 훨씬 더 강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바알세불보다 더 강하신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바알세불을 결박하고 귀신에 사로잡혀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구출해 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를 더 논증하여 말씀하셨습니다. 30절에 보면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함께 아니하는 자’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사단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에는 두 인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곧 하나는 모으는 자요, 하나는 헤치는 자입니다. 이들은 영원히 서로를 대적합니다. 그러므로 왕이신 예수님께서 사단과 연루되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십니다. 주님은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래서 귀신 들린 자가 보고 말하는 정상적인 삶을 사는 자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는 사단의 종된 자를 주님의 가족으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다시 모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헤치는 자이며, 파괴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사단의 힘을 빌어 일했다는 그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임을 지적하신 것처럼 사단과 예수님 사이에는 절대적으로 조화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심으로써 그들의 비난을 논박하셨습니다. 모으는 자와 헤치는 자가 서로 일치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으는 자와 헤치는 자가 서로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서 자신이 행하신 모든 것과 사단이 하는 모든 것을 구분하는 것을 분명히 그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또한 모으는 삶을 사는 자와 헤치는 삶을 사는 자들을 구분하는 선이기도 합니다. 이 선은 심판의 척도가 됩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편에 있든지, 아니면 그를 대적하는 편에 있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나는 모으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헤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지 아니하고 예수님 편에 서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분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주님의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31-37절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는 실로 가공할만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서 이것 보다 더 두려운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먼저 31,32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성령을 훼방하는 죄’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하시는 성령의 증거를 믿지 않고 끝까지 거부하는 죄를 말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께서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일한 것을 부인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로 매도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역사를 부인함으로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거절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고 있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고 있는 그곳에서 그 나라를 거절했습니다. 만일 이같은 거절이 근본적인 것이고 또한 끝까지 고집된다면 이것은 바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로서 결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34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성령의 증거를 믿지 않겠다고 말할 때 그는 이미 그 마음속에 예수님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이미 주님을 거절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용서 받지 못할 죄입니다. 세상에서의 어떤 죄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용서 받을 수 있지만 단 한 가지의 죄 즉 끝까지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왕의 권위에 굴복하기를 거절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죄에 근접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모욕하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복종하기를 거부한다면, 곧 그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용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경고하신 후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고 하셨습니다(33). 그리고 34절에 보면 주님은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일하시는 것을 보고도 사단을 힘입어 일한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사처럼 그 입에서 독한 말이 나왔던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냅니다(35). 하나님은 심판날에 그 사람의 말로 심판을 하십니다. 36,37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에 있는 것이 말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며 그 분의 통치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지 않고 심판날에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며 영광스러운 주님께 경배를 드리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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