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49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2007년 1월 21일 설교


왕의 진정한 가족!


말씀:마태복음 12:46-50
요절:마태복음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12장에서 우리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왕되신 예수님을 거절하고 대적하는 세 가지 사건을 공부했습니다. 첫번째 사건은 안식일 논쟁이었고, 두 번째 사건은 기적 논쟁 사건이었으며, 세 번째는 표적 논쟁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거절하고 대적하는 그들에게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내며, 요나의 표적을 통해 부활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본장의 마지막 단락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 짧은 단락은 언뜻 보기에는 유대 지도자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단락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미쳤다며 잡으러 온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철저하게 인간적인 애정이나 혈연이나 지연에 자신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이를 통해 교묘하며 강력하게 하나님 나라 왕국 건설을 방해하는 사단의 역사를 타파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진정한 가족관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 왕국 건설역사를 섬겨 가길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아온 의미와 주님께서 하신 말씀 곧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신 말씀이 지닌 의미입니다. 46절을 보면 마태는 단순하게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를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가복음 3:20-21절에 보면 그 이유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이 말씀에 보면 당시 예수님은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은 나사렛에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사역하고 계셨습니다(막 3:31). 그들은 나사렛에 있으면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소문을 다 듣고 있었습니다. 특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곧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벌이고 있는 논쟁들에 대한 소식들도 들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식사할 시간도 없이 무리들을 가르치신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소식들을 들으면서 놀라고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예수께서 미쳤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데려가고자 나사렛에서 가버나움까지 찾아왔던 것입니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 가버나움에까지 찾아온 것은 예수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그 어리석은 행동에서 구해내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예수님이 메시아로써 하시는 일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47절에 보면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무리들과 예기하고 있을 때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48절에 보면 예수님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49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리키며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50절에서 놀라운 선언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  

그러면 주님께서 자기를 찾아온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왜 이런 행동과 말씀을 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인간적인 관계를 기초로 해서 건설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의 방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대적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바알세불 곧 귀신의 왕을 힘입어 한 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은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미쳤다고 한 것을 보면 주님의 사역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들도 똑같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미쳤어 지금 정신 나간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그 사역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깨닫지 못할 때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건,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건 둘 다 비슷하게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마리아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즉 그것은 주님께서 하신 질문과 그의 선언을 통해서 주님께서 중심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나의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주님과의 관계의 척도로 삼으셨습니다. 주님 편에서는 인간 상호간의 친밀한 관계와 애정은 이차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혈연이나 인정이 어떤 식으로든 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최상의 일에 방해가 될 때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들을 철저히 부정하셨습니다. “누가 나의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부모나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순간 가장 고통스러운 그 상황 가운데서도 어머니를 염려하셨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의 마음으로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요 19:25-27). 뿐만 아니라 주님의 친 형제들도 나중에는 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들은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언행이 사역 중이신 예수님을 방해하는 줄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인간적인 애정으로써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사단은 교묘하고 강력하게 인간적인 정을 이용하여 하나님 나라 건설 역사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에 순응하기를 단호하게 거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36절에서 이미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10:34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과 비춰볼 때 오늘 본문 사건이 예수님의 사역을 반대했던 다른 어떤 사건들보다도 더 교묘하고 강력하게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있는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같은 면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을 때 하신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볼 때도 드러내 놓고 대적하고 반대하는 불신자들의 핍박을 물리치기란 어떤 점에서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교묘한 도전을 물리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삶을 살고자 할 때 불신자들이 대 놓고 대적하고 반대하는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교묘히 대적해 오는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의 반대에 부딪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그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삶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찾아온 어머니와 동생들을 향해 “누가 나의 모친이며 동생이냐?”고 하시며 냉정하게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진정한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진정한 가족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인간미가 없고 매정한 것 같습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가족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친밀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영적인 친밀함은 참된 결혼의 기초가 됩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좋아해도 하나님과의 영적인 친밀함이 없을 때 그 가정은 온전히 한 몸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서로 간에 부족함이 있고 자라온 환경과 케릭터가 달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분명한 믿음과 영적인 친밀함이 있을 때 서로의 허물을 감당하며 온전한 한 몸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음악과 학문과 모든 삶의 영역에서도 진정한 친밀함은 영적인 친밀함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친밀함이 없는 인간적인 친밀함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친밀감이 결여된 우정과 사랑은 쉽게 흔들립니다. 피를 나눈 가족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영적 친밀감이 있을 때는 사랑과 평화가 있지만 하나님과의 영적 친밀감이 결여되면 다툼과 상처만 주고받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영적인 친밀감이 없을 때 도리어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됩니다. ‘영적 친밀감’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서 생깁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말씀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가족들처럼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많이 안다고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혈육에 기초한 사랑이 많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인간적인 친밀함과 인간적인 사랑은 영적인 친밀함을 방해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말씀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자기 고집과 욕심을 내세울 때 그 친밀함은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어떤 인간적인 친밀함도 한계가 있을 뿐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신 이 말씀은 당시 아직 연약한 제자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고 있었지만 아직 연약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위기를 맞을 때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흔들렸습니다.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는 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나갔습니다. 수제자 베드로까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신 이 말씀은 그들의 삶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이후를 보면 제자들의 비전은 분명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혈연관계가 지닌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일체감 속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주님께 충성하는 일에 방해가 될 때에는 언제든지 인정이나 혈연이나 인간적인 모든 관계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 됩니다. 곧 우리가 가장 가까운 친척 곧 진정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는 이 말씀은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당시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오래 가지 않아 흔들릴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이들은 주님을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승리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이루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의 진정한 가족관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한 형제요 자매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혈연과 지연과 인간적인 정으로 교묘히 파고드는 사단의 역사를 파하고 주님과 한 가족이 되어 하나님 나라 건설 역사를 섬겨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4 [마태복음 12장] 안식일 논쟁! 손재호 2006.12.10 4527
503 [마태복음 1장] 임마누엘! 손재호 2006.12.17 2834
502 [마태복음 2장] 유대인의 왕! 손재호 2006.12.24 2807
501 [마태복음 12장] 왕의 기적 논쟁! 손재호 2007.01.07 3774
500 [마태복음 12장] 왕의 표적 논쟁! 손재호 2007.01.14 3332
» [마태복음 12장] 왕의 진정한 가족! 손재호 2007.01.21 3494
498 [마태복음 13장]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손재호 2007.01.28 6740
497 [마태복음 13장] 가라지 비유 손재호 2007.02.04 5071
496 [마태복음 13장] 겨자씨 비유 손재호 2007.02.11 4358
495 [마태복음 13장] 누룩 비유 손재호 2007.02.18 4979
494 [마태복음 13장] 감추인 보화 비유 손재호 2007.02.25 3910
493 [마태복음 13장] 값진 진주 비유 손재호 2007.03.04 3838
492 [마태복음 13장] 그물 비유 손재호 2007.03.11 4334
491 [마태복음 13장] 집주인 비유 손재호 2007.03.18 4684
490 [마태복음 13장] 고향에서 배척당한 그리스도 손재호 2007.03.25 3304
489 [마태복음 14장] 오병이어 표적! 손재호 2007.04.01 4158
488 [마태복음 27-28장] 부활하신 그리스도 손재호 2007.04.08 3248
487 [마태복음 14장] 바다 위로 걸어오신 왕 손재호 2007.04.15 3983
486 [마태복음 15장] 진정한 더러움 손재호 2007.04.22 4174
485 [마태복음 15장] 가나안 여인과 왕 손재호 2007.04.29 422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2 Next
/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