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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4일 설교


가라지 비유


말씀:마태복음 13:24-30, 36-43
요절:마태복음 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가라지 비유’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함께 예수께서 친히 그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보통 교회 내의 참 신자와 거짓 신자들이 함께 섞여 마지막 심판 때까지 공존할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38절을 보면 이 비유의 대상 영역은 교회 내의 진짜 신자와 가짜 신자 문제 이상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씨앗이 뿌려진 장소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와 알곡이 자라는 밭은 교회만을 의미하지 않고 세상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의인과 악인이 함께 존재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기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라지 비유는 이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이 세상에 가라지는 왜 생겼는지’, ‘왜 곡식과 가라지가 공존하는지’, ‘가라지의 결국은 어떠한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를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섬겨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를 바르게 섬겨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추수 때 추수할 것을 기대하며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24). 농부가 추수를 기대하며 좋은 씨를 뿌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사람들이 잘 때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25). 여기서 ‘가라지’는 팔레스틴 지방에 서식하는 ‘독보리’를 말합니다. 독보리는 밀과 아주 비슷해서 처음에는 서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보리와 밀은 완전히 다릅니다. 독보리는 자라면서 그 차이가 나타나게 됩니다. 원수는 바로 이러한 유사성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는 불법 침입자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 밭은 좋은 씨를 뿌린 자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는 그 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때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몰래왔던 것입니다. 그의 이런 행동에는 악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라지를 뿌린 것은 그 밭의 주인에게나 뿌린 자신에게나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원수가 가라지를 뿌린 것은 그 밭을 망가뜨려 놓고자하는 악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주인에 대한 증오심에서 유발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종들이 밭에 나가보니 곡식 중에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즉시 주인에게 달려가 가라지가 곡식과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을 알렸습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27). 아무리 온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밭을 망쳐 놓은 원수를 처벌하자고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주인의 대답이 어떠하였습니까? 28절에 보면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종들이 다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종들은 당장 밭으로 달려가 가라지를 뽑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30절에 보면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인이 가라지를 뽑아 버리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신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곡식을 위함인데,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밀과 가라지는 잘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가라지를 뽑는다고 하다가 밀을 함께 뽑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라지는 뿌리가 강하고 밀의 뿌리와 엉켜 있기 때문에 아무리 조심해도 원치 않게 밀이 함께 뽑힐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곡식이 뽑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둘째는, 가라지의 악한 진상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뿌려진 좋은 씨와 가라지를 추수할 때까지 가만히 두면 가라지가 명백히 드러나게 됩니다. 밀과 독보리의 열매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이와 같이 추수 때에는 좋은 씨와 가라지는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독보리가 명백하게 드러남으로 인해 가라지와 곡식의 운명도 분명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추수 때 종들은 가라지는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주인의 곳간에 넣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가라지 비유’를 듣고 어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리를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36).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가라지 비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시는 가라지 비유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군은 천사들”이라고 하셨습니다(37-39). 주님의 이 설명을 보면 먼저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씨를 뿌린 자는 ‘인자’이십니다. 밭은 세상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자는 ‘마귀’입니다. 원수 마귀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을 중상모략하고 모독하는 비방자입니다. 그는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자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인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단지 침입자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밭에 가라지를 뿌린 것은 원수 마귀의 짓이라고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 즉 ‘마귀의 아들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40-43절을 보면 예수님은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처럼 세상 끝에도 그러하다고 하셨습니다. 인자이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에 천사들을 보내어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풀무불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귀의 아들들은 풀무불 속에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 의인은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 43절에 보면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 될 때 의인은 그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됩니다. 곧 의인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라지와 곡식이 거두어질 날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둘은 영원토록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분리되는 날이 있습니다. 가라지는 영원한 심판에 처해지고, 곡식은 영원한 영광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의 ‘가라지 비유’를 통해 첫째,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는 마귀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원수 마귀가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렸다고 했습니다. 마귀가 쓰는 방법은 진짜에다가 가짜를 뒤섞는 것입니다. 얼른 보아서는 차이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좋아 보이는 것을 주인의 소유에 섞어 넣습니다. 세상에 임해 있는 천국에 대해 마귀가 쓰는 방법은 모방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가라지 비유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원수는 사도 시대 이미 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마술사 시몬과 그의 추종자들은 곡식 가운데 있는 가라지였습니다. 후에 사도들의 글 곧 갈라디아서 2:4에 나타난 대로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다른 교리를 가르치고 심지어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미명으로 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언제나 있는 모방의 방법입니다. 사도 시대가 끝나고 수세기를 지나는 동안에도 이러한 것은 여전히 나타났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모방의 방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이런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모방은 마귀의 가장 교묘한 역사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마귀의 역사를 잘 분별하고 악한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가라지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 세상에는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함께 있으며, 추수 때 곧 마지막 때에 의인과 악인이 확연히 구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 세상에는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에 왜 악인들이 함께 존재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그들을 압제하던 로마는 무너지고 다윗 왕국과 같은 메시아의 왕국이 건설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을 때 많은 유대 청중들은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즉각적이고 확연히 구별되어 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의인은 영광을 얻고 악인은 멸망 받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외견상 현실은 이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제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공의를 실현하실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은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득세했습니다. 천국 곧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임했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이 때문에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천국이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시작되었다면 가라지는 모두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악인이 멸망당하고 의의 나라가 즉각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추수 때가 되기까지는 가라지와 곡식이 공존합니다. 곧 의인과 악인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공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끝 날에는 의인과 악인이 확연히 구별됩니다. 세상 끝 날에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악인들”은 풀무 불에 던져 질 것입니다. 반면에 의인들은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라지와 곡식이 거두어질 날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둘은 영원토록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분리되는 날이 있습니다. 가라지는 영원한 심판에 처해지고, 곡식은 영원한 영광에 거할 것입니다. 가라지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장차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라지 비유가 가르쳐 주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악인으로 인해 어떤 고통과 희생이 따른다 할지라도 최종분리가 될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악인은 멸망을 당하고 의인은 하나님 나라에서 해와 같이 영광스럽게 된다는 이 말씀은 현재 악인과 함께 공존하는 세상에서 인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제자들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가라지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통치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제자들 마음에는 악인을 뽑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열심 당원도, 제자들도 이런 마음은 동일하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27절에 보면 “가라지를 뽑을까요?”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세상의 농사법과는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농사법은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가라지를 뽑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밀을 뽑을 수 있지만 많은 수확량을 위해서는 이를 감수합니다. 세상 농부의 관심은 많은 수확량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법과 다릅니다. 본 비유의 주인의 관심은 많은 수확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곡식이 상하지 않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를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리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가라지를 뽑다 곡식까지 다칠까봐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과 다른 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수확량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알곡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한 영혼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천국 복음을 증거하는 제자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목회자는 이런 목회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다보면 뽑아 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을 뽑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 방법입니다. 우리가 뽑아 버리고자 하는 유혹이 들 때마다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소유한 자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바로 섬겨 가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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