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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15일 설교


바다 위를 걸어오신 왕


말씀:마태복음 14:22-36
요절:마태복음 14:32-33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풍랑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구원해 주시는 사건입니다. 본 기적 이야기는 마태복음에서 뿐 아니라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도 앞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바로 뒤이어 나타납니다. 이들 두 기적이 함께 연결되어 나타남으로써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효과는 대단합니다. 지금까지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대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은 물론이고(참조. 7:28-29; 11:3; 13:54-56; 14:2), 제자들마저도(8:27)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만 던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두 번째 기적 이후에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 제자들의 고백을 통해 주어지게 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33). 오늘 말씀을 통해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이 표적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표적 사건이후에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을까요? 제자들은 오병이어 기적 사건 이후 아마 몹시 들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궁금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무리들의 열화 같은 반응에 상기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이와 같은 조치는 매우 이래적인 일입니다. 특히 여기서 ‘재촉하다’(아낭카조, ?να?κ?ζω)라는 동사는 ‘억지로 시키다’, ‘강요하다’ 등의 의미로 번역할 수 있는 아주 강한 동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건너편으로 빨리 건너가도록 강요하신 것을 볼 때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재촉하여 건너편으로 떠나게 한 특별한 이유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6:14-15절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무리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 예수님께서 자기들이 기다리던 그 선지자이심을 확신하고 예수를 잡아 억지로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성경에서 말하는 그 선지자라고 생각한 것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죄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아가 아닌,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실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으로부터 구원하실 육신의 메시아를 갈망했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이라면 그들이 기대하던 바들이 모두 이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강제로라도 붙들어서 왕을 삼으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큰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님께 열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환호했습니다. 정말 신앙이 좋은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열광하는 그들로부터 제자들을 속히 떠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크게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것을 채워주는 왕이 아니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육신적인 것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이상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표적을 통해서 자신이 생명의 떡이 되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48-51절에 보면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영적인 왕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무리들의 이와 같은 그릇된 반응은 제자들에게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무리들처럼 예수님을 오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잘못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 서둘러 떠나도록 요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으로 보내신 후 무리들을 다 흩어 보내셨습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거기서 밤이 깊도록 홀로 계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홀로 남아 무엇을 위해 기도했을까요? 우리는 주님께서 왜 홀로 남아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지 기록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 오병이어 기적 사건 이후 무리들이 보이 반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의 열광이 바른 신앙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제자들도 무리들처럼 오해할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왜 이 땅에 오셨는지 바르게 알도록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직면하게 될 고난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재차 확인하시고(참조. 16:21; 17:22-23; 20:18-19), 그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참조. 26:36-46). 예수님은 이런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밤이 깊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떠난 제자들은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까? 24절에 보면 배가 육지에서 수리를 떠났을 때 광풍을 만나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바다 어부 출신들입니다. 그들은 그 바다의 속성과 그런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그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새벽이 되기까지 풍랑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자들 가운데 밤 사경(새벽 3-6시)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위기에 빠진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바다 위로 걸어오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착시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것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뒤의 일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육지에서 수리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24).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 오셨다’는 이 기적 사건은 제자들의 착시현상이 아니라 실제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임을 확고히 해 줍니다.

그러면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26절에 보면 제자들은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자들은 하루 종일 주님을 따라 다니느라 육신이 피곤하였습니다. 특히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섬기느라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광풍을 만나 밤이 맞도록 풍랑과 싸워야 했습니다. 많은 일과 풍랑으로 한숨도 자지 못한 제자들은 이미 춥고 젖은 상태에서 녹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제자들은 그것도 어두침침한 새벽녘에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시는 예수를 보고 ‘유령이다’라고 착각한 것은 있을 법한 일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바다는 악한 영들의 거처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제자들은 유령이 자기들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고 생각하여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27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며 그들을 도와 주셨습니다. 여기서 ‘안심하라’는 말은 ‘용기를 내라’(디르세이테, θαρσ?ιτε)는 명령으로 두려움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사람을 격려하는 표현입니다(참조. 막 10:49; 행 23:11). 제자들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하시는 주님을 통해 큰 위로와 평강을 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본 베드로는 어떤 부탁을 했습니까? 28절에 보면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명령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요청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순간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자 물 위로 잘 걸어가던 베드로가 갑자기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 구해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은 사건과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빠진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처음 가졌던 믿음을 끝까지 간직함으로 영광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올랐을 때 그렇게 사납던 바람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32-33절에 보면 그들은 “예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절하다’는 동사는 마태복음에서 자주 눈에 띄는데(2:2,8,11; 8:2; 9:18; 15:25; 28:9,17), 이것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대개 그러하듯이 단순한 사회적 경의의 표현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마가와 요한의 평행구들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마가의 평행구인 6:51-52에 보면 제자들의 고백은 언급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둔한 마음에 대해서만 언급되고 있습니다.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 졌음이러라.” 이렇게 볼 때 마태복음에서 제시된 제자들의 고백은 완전한 기독론적 깨달음을 담은 고백이라기보다는 아마도 그들이 목격한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께 대한 직감적인 반응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고백은 제자들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바다 위로 걸어오신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제자들은 이 두 사건을 경험하면서 예수님께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인가? 제자들은 예수님의 본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에 대해 온전하지는 않을지라도 비로소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순종의 사람이었으나, 여전히 적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폭풍과 역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무리들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신앙 고백이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고백은 장차 16:16절의 베드로의 신앙 고백 즉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하는 고백의 길을 닦아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으신 표적 사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신 초자연적인 행동을 통해 신적 능력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을 나타내시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27절에서 예수님은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특히 ‘내니’(에고 에이미, ??? ?ιμι)라는 말은 예수님 자신을 계시하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막 14:62; 눅 24:39; 요 8:58; 18:5-6). 이 표현은 출애굽기 3:14절에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고 하신 표현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신 초자연적인 행동을 통해 신적인 능력을 드러내 보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임을 시사하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바다 위로 걸어오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바람과 바다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은 성경에 약속된 그 선지자시요,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우리 인생들로부터 참된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바다 위로 걸어오시고 바람을 잔잔케 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제자들과 같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고백하고 최고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일행이 게네사렛 땅에 도착한 후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34-36절에 보면 그곳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고 근 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자는 나음을 입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고향에서 배척 받으셨을 때 아무런 능력을 행하지 않으신 사건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이 주님 앞에 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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