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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마가복음 공부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1:9-11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하신 두 가지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1:9-11)과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1:12-13)입니다. 마가복음 저자가 이 두 사건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첫 번째 사건 곧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사건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사함의 세례인 성령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이런 예수님께서 도리어 죄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인 물세례를 베푸는 요한에게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까?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 보는 가운데 그 의미를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참예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가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묘사했습니다. 마가복음 1:4절을 보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 마가는 아무런 설명이 없이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그러나 헤롯을 피해 애굽으로 갔다가 어린 시절 나사렛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셨습니다(마 2:22-23).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그 때에’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때를 말하는 것인데 요한이 활동하고 있었던 때를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3:21절에 의하면 그 때는 요한의 사역 초기가 아니라 각 처에서 나온 많은 백성이 요한에게 모여들고 세례를 받기 시작한 때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나이는 약 서른 살 쯤 되었습니다(눅 3:23).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심에 있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계셨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막 1:4).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 곧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죄악됨을 고백하고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를 인정할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요 8:46; 고후 5:21; 히 4:15; 요일 3:5).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나아오셔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까? 마태복음 3:14절에 보면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고자 하실 때에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자 요한이 황망하여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하지만 자신 뒤에 오시는 이는 상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심판자이시므로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나아와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베푸는 그의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요한이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요한은 어찌 자신이 예수님께 세례를 줄 수 있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3:15절에 보면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사양하여 만류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라는 대명사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요한과 예수님은 ‘모든 의’를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는 ‘모든 의를 이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의’가 무엇을 말하지 알아야 합니다. 죄인의 심판자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이 받는 세례를 받으시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죄인이 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스스로 죄인이 되시는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 받으심은 죄인들과의 연합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는 자기 백성의 왕으로서, 즉 언약백성의 중보자로서 담당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일을 통해서 자기 백성의 구원자로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9-34절을 보면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하던 세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파송 받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부터 ‘네가 누구냐?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선지자냐?’라는 질문을 받고서는 자신에 대해 증거 하기를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니라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고 하였습니다(요 1:20-23). 그리고 다시 ‘그러면 네가 무슨 권세로 세례를 주느냐?’라는 질문을 받고서는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하며 자기 뒤에 오실 분을 증거 하였습니다(요 1:19-28). 그리고 이튿날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요한은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요 1:29). 또한 요한복음 1:35-36절에도 보면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실 사역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오시는 것을 보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모든 장자와 첫 새끼를 심판하실 때에 어린 양의 희생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키게 하셨습니다(출 12:1-13). 요한은 바로 자기에게 나아오는 예수님을 봤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예언하게 하신 여호와의 종으로 어린 양을 삼아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음을 당하는 희생을 치르게 하여서 사람들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지심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스스로 죄인이 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 10-11절을 보면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면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고 하늘에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여기서 하늘이 갈라지고 하늘로서 소리가 났다고 하는 것을 볼 때 이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이 짧은 말 속에 예수님의 정체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시편 2:7절을 보면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편 2:8-9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시 2:8-9). 하나님의 아들은 이방 나라를 정복하여 땅 끝까지 이르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이 왕은 여호와께서 직접 세우시는 왕이십니다. 시편 2:6절에 보면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라 불리워집니다. 시편 2:2절을 보면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기름 받은 자 곧 메시아를 대적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4:61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4:61절에 보면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찬송 받을 자’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찬송 받을 자의 아들이란 곧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1세기 문헌들에 보면 ‘나의 아들 메시아’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에스라 4서 7:28절). 우리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메시아의 칭호로 널리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서 이전에 기록된 쿰란 문헌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용어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나의 아들’이라고 부르신 것은 당시 언어 세계 속에서 이해할 때 예수는 메시아라는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수님의 정체를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면 예수가 바로 메시아입니다. 즉 시편 2편에 나오는 하나님의 메시아로서 온 세계를 정복하는 왕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계십니다.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독생자 이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이어서 예수님의 정체에 대하여 부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b절을 보면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42:1절 말씀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2:1절을 보면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는 ‘하나님의 종’을 가리킵니다. 이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어떤 존재인지는 이사야 42:2-4절 말씀에서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42:2-4절을 보면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세상에 정의를 세우시는 분이신데 섬들 곧 이방나라들이 그 교훈을 소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온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시는데 파괴적인 군사력이 아니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자비로 정의를 시행할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실 때에 하나님은 군사적 메시아가 아니라 정의와 자비의 메시아이시며, 유대인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들도 위하는 메시아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53장을 통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 53:1-6절을 보면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지시고 고난을 당하시는 메시아라는 것은 교회가 만든 신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로써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 계시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시고 당시 사람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길로 가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며, 예수님은 그 새로운 길을 순종하며 걸어가시는 메시아가 되십니다.

 

오늘 본문 11절의 하늘로서 난 소리는 구약성경의 두 구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편 2:7절이고, 하나는 이사야 42:1절입니다. 시편 2편은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의 대관식을 묘사하는 메시아의 시편입니다. 이사야 42장은 하나님을 섬기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고난 당하시고 죽으실 종이신 메시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두 구절을 말하고 있는 것은 하늘의 보좌에서 난 소리는 고난을 당하고 죽으실 종이요, 영원히 다스리실 왕이신 예수님의 두 가지 지위를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삼위 하나님께서 당신의 복음 역사를 위한 신비의 역사입니다. 구속역사는 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신비의 역사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시며,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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