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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마가복음 공부


한 문둥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1:40-45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한 문둥병자를 고쳐 주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온 지역을 돌아다니시면서 전도하시고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예수님께서 각종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신다는 소식이 온 갈릴리에 퍼지자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께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에 보면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간구하기를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그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4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한 동네에 있을 때였습니다. 온 몸에 문둥병이 들린 한 사람이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기를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문둥병은 레위기 13-14장에 보면 부정한 병입니다. 문둥병에 걸린 자가 부정하다는 말은 문둥병자들은 어떠한 종교적, 사회적인 활동에 참여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문둥병에 걸린 자는 진 밖에 거주하였습니다. 율법은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는 사람들 역시 부정하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에 문둥병자들은 철저히 사람들로부터 격리 되었습니다(레 13:46). 또한 문둥병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리우고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쳐야 했습니다(레 13:45). 어떤 사람들은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문둥병자에게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불치병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그 병에 걸리까 두려워 하였다고 합니다. 문둥병자는 진 밖에서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 분문의 이 문둥병자도 그런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는 문둥병으로 인해 절망적이고 어두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문둥병자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능력 있는 가르침을 하시고,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문둥병자는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둥병을 고쳐 주실 능력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을 뛰어 넘어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문둥병자는 예수님께 나아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지대한 존경의 표시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하면 그가 예수님을 알고 있는 존재론적 인식에서 입니다. 랍비들에 의하면 문둥병자들을 치료하여 온전한 몸이 되게 하는 것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만큼이나 힘들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힘으로서는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다’라고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고 있는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문둥병자의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을 예수님에게서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는 그의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41절에 보면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대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민망히 여기사’라는 말은 「마가복음 원문을 찾아서」(신현우, 웨스터민스터 출판부, 2006)라는 책에 보면 ‘분노하셨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곧 ‘분노하사’가 원래 마가가 기록한 표현이며, ‘민망히 여기셨다’라는 표현은 필사자들이 쉽게 고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민망히 여기사’라는 의미를 따라서 본문을 많이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분노하셨다’는 번역을 따라서 본문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분노하셨을까요? 문둥병자가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분노하셨을 것입니다. 어만(B. D. Ehrman)이라는 학자는 문둥병자는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믿고 있었지만 문둥병자를 치유하실 의도가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왜 문둥병자는 이러한 의심을 하였을까요? 유대인들은 병의 원인을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병의 원인을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둥병자도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문둥병자는 자신의 병이 자신의 죄 때문에 생겼으며, 따라서 죄 용서 없이는 치유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문둥병을 치유 받고 싶었지만 예수님께서 자기와 같은 죄인도 용서하실지 의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이라고 돌려서 말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치유되지 않으면 그 원인이 예수님께서 자기를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셨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내비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견해에 예수님께서 동의 하실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2:17절에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2:10-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중풍병자가 곧 일어나 상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이를 통해서 자신이 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타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장차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마가복음 10:45절을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섬기시되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대속물로 내어 주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마가복음 14:22-26절을 보면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지막 유월절에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찬을 제정하시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마가복음 15장에 보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큰 소리를 지르며 운명하셨습니다.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시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막 15:38). 이로써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9-20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자기 몸을 찢어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죄 용서는 예수님의 새 출애굽의 내용이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 문둥병자는 자기 병을 치유 받기를 원하면서도 죄 용서를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분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나아온 문둥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41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 고침을 받는 것보다 죄 용서 받는 것이 더 중요함으로 죄용서만 받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라고 하면서 죄 용서까지 암시하신 후에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의 문둥병을 깨끗이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이 문둥병자에게 있어서 문둥병의 치유는 죄 용서의 표적으로써 중요하였을 것입니다. 곧 자신의 문둥병이 치유됨으로써 자신의 죄가 용서 받았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자신이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42절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있자마자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졌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나음 받은 문둥병자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43-44절을 보면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에게 엄히 경계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제사장에게 가서 치유 받았음을 검증 받도록 하셨습니다. “삼가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43-44).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이 문둥병자로 하여금 사회에로 복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문둥병자는 진 밖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즉 사람들로부터 격리 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문둥병자가 죄 용서와 치유에 이어서 사회적인 관계를 회복하도록 배려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 출애굽의 역사 속에는 죄 용서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지만, 죄 용서는 질병의 치유와 사회적 관계의 회복을 통해서 체험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치유를 통한 육체의 회복과 사회적 관계의 회복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새 출애굽의 사역 속에는 영적인 회복과 더불어 육적인 회복, 사회적 회복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 중에 한 가지만 강조한다면 다른 것을 무시하는 것으로써 예수님의 사역과 복음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 용서를 받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이 또한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에 기초해서 볼 때 사회적인 관계의 회복이 없다면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앞에서 죄 용서함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회복과 함께 육적인 회복을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온전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 받은 문둥병자에게 엄히 경계하여 자신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치유 받은 것을 아무에게도 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에 자주 나타나는 메시아 비밀 주제와 관련이 됩니다. 문둥병자 치유는 아마도 당시에 메시아의 표적으로 간주 되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7:22절에 보면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인지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묻는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예수님의 이 답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문둥병자가 치유 받는 것은 메시아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고침 받은 문둥병자에게 엄히 경계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이 치유 받은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자신이 메시아 되심을 숨기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숨기고자 하셨을까요? 당시에는 메시아란 군사적 메시아로만 기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종류의 메시아 곧 고난 받는 메시아였으므로 오해를 주지 않고자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45절에 보면 이 사람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제사장 앞에 이르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둥병을 고쳐 주신 사실을 사방에 퍼뜨렸습니다. 그로인해서 사람들은 예수가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치셨다는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아 왔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하여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피하여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은 아마도 그들에게 군사적인 메시아로 여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일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문둥병자를 고치신 일로 유명하게 되자 ‘동네’(povli" 폴리스) 곧 도시로 들어가지 않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적한 곳 곧 광야로 몰려왔습니다. 광야는 세례 요한의 사역의 주 무대였으며, 예수님의 사역도 광야를 무대로 전개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찾아가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를 택하셨고, 사람들은 광야로 몰려왔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새 출애굽의 역사는 모세의 출애굽 때처럼 광야와 관련되어집니다.

 

모세도,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출애굽의 사역을 광야를 무대로 하였습니다. 물론 오늘날 새 출애굽의 역사는 도시 한 가운데 있는 교회들에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버나움이란 도시의 회당에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회당에도, 그 도시에도 머물러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도시에서 유명해지자 그 도시를 떠나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광야는 예수님 사역의 새로운 무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새 출애굽의 사역은 도시에서 시작될지라도 광야로 향하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경제활동을 위하여 도시로 몰려들지만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출애굽의 장소인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새 출애굽의 장소인 광야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세상의 일상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주일 하루만이라도 세상의 일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일상을 내려놓고 광야로 나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결코 새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로 나아오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주일 하루만이라도 우리의 일상을 내려놓고 광야의 예배 처소를 찾는 역사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역사가 있게 하시고,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고 영육간에 회복이 되듯이 우리 가운데도 이와 같은 새 출애굽의 역사가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인간이 겪는 온갖 불행의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 불화한 상태에서 사는데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인간이 결코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사단의 밥이 되고 맙니다. 사단은 인간에게 모든 불행을 가져다 줍니다. 따라서 인간이 모든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죄를 회개 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과 화목 하는 길 뿐입니다. 이 길을 인간에게 마련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리스도로서 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치심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거룩한 자, 곧 그리스도로서 율법의 요구인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시고 있음을 제사장에게 ‘증거’로서 행하심으로 나타내신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시는 분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문둥병자에게 임한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광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우리의 문둥병과 같은 죄를 사함 받게 하시고, 우리의 영적, 육적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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