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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마가복음 공부


세리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

 

 말씀: 마가복음 2:13-17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죄사함의 은혜를 베풀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리 레위를 부르신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곧 죄사함의 은혜를 베풀기 위해 오신 그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행위를 통해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13절을 보면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제 다시 갈릴리 바닷가로 나아가셨습니다. 이때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기적을 행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는 일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1:21절에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 가르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의 가장 핵심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초점은 능력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셨습니다. 1:16-20절에서 처음 네 명의 제자들을 부르셨던 예수님께서는 이제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레위는 세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마태복음 9:9절에 보면 이 사람의 이름은 마태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보다도 레위의 직업이 세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당시의 세리는 오늘날처럼 세관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길에 앉아서 통행세를 받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길을 가다가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레위에게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레위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일어나 좇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당시에 세리는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는 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세리들이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은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세리라는 직업은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가 헤롯 안디바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도록 했는데 세리들은 갈릴리로 통행하는 물건들에 대해 세금을 징수함으로써 그 세금을 로마에 바치는 일을 하는 자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빌붙어서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세리는 단순히 세금을 걷는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반역자처럼 여겨졌습니다. 둘째는, 당시의 세리는 합당한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걷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거두어들인 세금에서 일정액을 로마에 상납하고 나머지는 자기들이 착복했습니다. 이러한 일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눈에 세리는 부도덕한 자로 보였습니다. 그러한 세리인 레위를 예수님이 부르셨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15절에 보면 예수님이 레위의 집에 가셔서 같이 앉아 식사를 하셨습니다. 레위만이 아니라 레위가 초청한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당시로서는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있어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요, 교제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상종하지도 않았던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합니까? 16절에 보면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하며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하는 핵심은 ‘함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대화를 하거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저하시키는 행위였으며, 불경건한 태도였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세리나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예수님의 행동보다는 바리새인들의 비난이 더 합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리였던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일이나, 그와 그의 동료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은 그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시고 함께 식사하신 세리는 유대인들에게는 멸시 받는 죄인이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배척하는 세리를 제자 삼으시는 것도 모자라서 레위와 그가 초청한 다른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신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는 것은 자신이 오신 목적이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레위를 부르신 일을 좀더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4절을 다시 보면 예수님께서 레위에게 “나를 좇으라”고 하셨을 때 레위는 즉시 일어나 좇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부르신 레위는 계속해서 세리의 일을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자신의 일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렇게 레위가 곧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사실을 볼 때 레위가 예수님을 깊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미 예수님을 신뢰하고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레위에게 단순히 “나를 좇으라”는 말만 하셨는지, 아니면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레위가 이전에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예수님 안에서 새로이 시작되는 삶을 큰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레위는 이미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과 그의 가르침에 대한 소문을 통하여 자기의 마음 속에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생겨났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 마음의 동요가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는 분명히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던 삶에 대한 바른 인식과 뉘우침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는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주저함 없이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레위의 심적 변화에 대한 성경의 직접적 언급이 없긴 하지만 그에게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그는 즉시 예수님을 따라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레위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고, 또한 다른 동료 세리와 죄인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갑자기 예수님이 레위의 집에 가시고 사람들이 와서 식사를 합니다. 마가복음은 구체적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5:29절을 보면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레위는 예수님에게서 입은 그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한 나머지 잔치를 벌이고 여러 친구들을 초청하여 그 감격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하였습니다. 그가 경험한 은혜의 기쁨은 이렇게라도 나타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컸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서 볼 때 예수님이 레위를 부르시고 그와 함께 식사하신 점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행동이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레위는 이제 더 이상 적어도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죄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전에 그의 삶은 죄인이었습니다. 그 사실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선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가 더 이상 죄인이 아닌 이유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원래의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함께 식사를 하신 이유는 바로 레위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께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것은 자신의 죄를 깨닫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사실 의인이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입니다. 로마서 3: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세상에 의인은 아무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신 말씀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인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창세전에 택하시고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를 불러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이 말씀을 성취하시고자 레위를 부르셨고, 그와 함께 식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진정한 의인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동시에 예수님을 향하여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시비를 거는 자들에 대해서 너희들이 진짜 죄인이라는 점을 역설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리새인들이 하는 말을 들은 예수님은 그들에게 건강한 자와 병든 자, 의인과 죄인을 대조하는 대답을 통해서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오해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알고 있었는지를 지적하여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진짜 병든 자요, 누가 진짜 죄인인지를 꼬집으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의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율법적 열심은 자기들을 의롭게 해 준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교만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천국은 자기네들처럼 고상한, 곧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외형적으로 잘 지키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생각 되는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벽을 쌓고 의롭다고 자만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이 병든 자들임을 반어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이들에 대해 예수님은 당시에 잘 알려진 속담을 예로 들어 대답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막 2:17). 이 말은 예수님이 지어내신 말이 아니라 당시에 사용되던 속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속담을 예로 들어 말씀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에 비해서 자신들은 건강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너희가 병든 자요, 죄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병든 자요, 죄인이라고 하는 자들이 도리어 건강한 자요, 의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완악함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앞선 사건인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사건(2:1-12)에서 예수님께서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금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이유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예수님께서는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죄인들과 함께 식사 하실 수 있으며, 저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어찌하여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가?”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잘 안다고 하였지만 정작 그들은 율법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그 율법이 가리키는바 복음은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스스로 의로운 척 하고 살았습니다. 자신들의 의와 경건을 자랑하고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그들의 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신 말씀은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통회하고 회개하는 죄인을 불러 의인 삼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복음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죄인이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이해하고 자신의 비참함 가운데에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은혜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가 진정한 죄인이며, 복음은 그러한 죄인들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은 그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외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만큼은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는 영광까지 허락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용서는 바로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는 자에게 허락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히 깨닫는 자를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 죄인들을 의인으로 삼아주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거룩한 식사에 참여케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의 본문 이전에 나왔던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는 일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은 이제 다시금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심으로서 그들이 곧 병든 자들이고, 예수님 자신은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오신 의사이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의사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시되 회개케 하여, 곧 죄에서 돌아서게 하여 그들을 치료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에게서 죄를 치료하여 제거하는 영적 의사로서 그들을 가까이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치료를 받아 죄에서 돌이킨 자, 곧 회개한 자만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와 진정한 영적 교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다 하더라도 그 죄를 철저히 깨닫고 인정하는 자에게 그 죄는 없다고 선언이 됩니다. 반면 아무리 작은 죄를 범하였다 하더라도 그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그 죄는 죽음에 이르는 죄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역설입니다.

 

하나님은 바리새인과 같은 외식적인 자들이 아니라, 자기가 처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레위와 같은 자들에게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우리가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순간 죄인이 됩니다. 반면 죄인이라고 겸손히 고백하는 순간 의인이 됩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따라 살기 위해서 힘쓰는 교회라고 해서 우리 개개인이 다른 이들보다 더 의롭다는 교만함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진리를 아는 자들이기에 더욱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죄인됨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죄인은 구원을 받을 것이나, 의인인 척하는 자는 그 죄로 인해 멸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아니하고 여전히 그 죄 속에 있기를 기뻐하는 자를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찾으시는 죄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인정하는 자입니다. 죄로 말미암는 자신의 비참함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자입니다. 죄에 대한 깨달음과 그 죄로 말미암아 통회하는 자입니다. 죄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겸비함을 가진 자, 그 죄 씻음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이 그동안 어둠 가운데 있었음을 인식하고, 더 이상 죄가 아니라 은혜의 지배 가운데 있기를 원하는 자를 부르시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참조. 눅 5:32). 그래서 많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죄인들을 외면했지만 우리 주님은 죄인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들을 불러 믿음을 일으키셨고, 그들에게 회개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의롭다 칭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죄인이었던 그들 의인들을 당신의 거룩한 식탁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성찬에 참여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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