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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마가복음 공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말씀:마가복음 2:18-22

 

오늘 말씀은 금식에 대한 논쟁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후 얼마간의 시일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18절을 보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이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에는 목적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실시하는 금식과 기도는 종교 의식적인 것이었습니다. 율법으로 규정된 금식은 단 한 차례밖에 없습니다. 대 속죄일에 금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레위기 16:29-31절에 보면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했습니다. 대 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나 금식해야 했습니다(레 23:27, 29, 32). 하나님께서 대 속죄일에 금식하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 안에 남아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를 하여 정결케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케 되었습니다(레 16:30). 이스라엘은 매년 대 속죄일마다 스스로를 괴롭게 할 것 곧 금식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였었는가를 의식하고 회개케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 속죄일에 금식하게 한 것은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를 받아 구원 얻었음을 고백하는 회개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금식의 날이 늘어났습니다. 스가랴 8:19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성이 함락된 4월 9일, 성전이 파괴된 5월 9일, 유다 총독 그달랴가 암살된 7월 3일, 예루살렘이 포위된 10월 10일에 금식했습니다. 또한 에스더서 9:31절을 보면 유대인을 멸절시키려는 하만의 음모에서 벗어난 후에는 그 날을 기념하는 7월 14-15일의 부림절에도 금식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곧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눅 18:12). 이렇게 해서 대 속죄일 외에도 여러 날을 금식일로 정하고 전통과 관습으로 지켰습니다.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그 전통과 관습을 따라 지키는데서 유대적인 신앙의 경건성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이 실시하는 금식과 기도는 바리새인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가르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 곧 천국 도래에 대한 복음을 듣고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새 날 곧 하나님의 긍휼을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들기 위해서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할 때에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근신하는 가운데 그 날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따라서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기다리는 표시로 금식을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제자들의 금식과 기도가 종교 의식적이었던 반면에 요한의 제자들의 금식과 기도는 경건주의에서 실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금식의 날을 갖고 정기적으로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그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그 제자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의 제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율법을 범하는 것으로 보였고, 요한의 제자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애통함이 없는 것으로 비쳐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라고 따져 물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9-20절을 보면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이야말로 혼인 잔치의 때와 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와 제자들과의 관계를 혼인집의 신랑과 손님과의 관계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신랑은 물론 예수님 자신을 말합니다. 그리고 ‘손님들’은 문자적으로는 ‘신부방의 아이들’인데 이들은 신랑의 혼인예식에 초대받은 친구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신랑을 도와 혼인예식을 잘 치를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이었습니다. 혼인예식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잔치 상을 받고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신랑과 함께 있으면서 그를 도와 손님들을 맞아들여 음식을 먹고 마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혼인예식의 잔치 상을 받아 놓고 곧 신랑을 곁에 두고 금식 한다면 말이 됩니까? 예수님은 이처럼 혼인집 손님을 예로 들어서 자신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설명하셨습니다.

 

금식이 율법에 요구되고 있는 것은 속죄의 은혜를 바라보는 회개의 상징으로서 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애통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런 금식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원리상 그들의 구원이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오셔서 함께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2:5절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을 혼인에 비유했습니다.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 62:5). 이 말씀은 예루살렘의 구원을 약속하는 이사야 62:1절에 이어지는 구절로서 구원을 결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신랑에 비유되고, 예루살렘은 신부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유에서 신랑이 혼인 집 손님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하여 임하셨음을 뜻합니다. 이제 구원의 때가 임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찾아오셨습니다. 지금은 새 출애굽의 때이며, 이스라엘의 회복이 곧 발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임박한 구원의 시대는 인간의 금식 때문에 도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차서 다가 온 것입니다. 인간의 금식이 그 시대를 앞당기지 못하며, 인간이 금식을 하지 않아도 그 시대는 오고야 맙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 출애굽과 이스라엘의 회복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방식으로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금식을 통해 새 출애굽이 온다고 생각했지만 새 출애굽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시작 되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어집니다. 20절을 보면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혼인잔치가 벌어지면 하객들은 떠나가고 신랑이 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비유 속에서는 신랑이 떠나고 하객들이 남습니다. 이러한 특이성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주어진 파격입니다. 여기서 신랑의 빼앗김은 이사야 53:8절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이사야 53:8절을 보면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고난 받는 종의 끌려감에 대해 말씀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2:20절에서 말하는 신랑의 빼앗김은 이사야 53:8절에서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합니다. 이사야 53장을 배경으로 보면 예수님의 죽음은 그의 백성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입니다. 마가복음 14:24절을 보면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는 대속의 죽음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대속을 통해서 죄사함을 얻고 이스라엘은 회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곧 새 출애굽이 이루어집니다.

 

새 출애굽은 금식을 통해서 오지 않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미 새 출애굽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구원의 시대가 임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옛 시대의 방식을 고집하게 됩니다. 이 방식을 전통으로 고착시키며, 고집하게 됩니다. 또한 이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시대는 옛 시대의 방식으로 오지 않으며, 옛 시대의 방식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인간의 노력들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던 구원의 방식들은 위로부터 임한 하나님의 구원 앞에 무용지물로 드러나고 맙니다. 금식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써 아름다운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이 새 출애굽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새 출애굽을 가져다줍니다. 새 이스라엘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 금식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하고 있는 메시아 곧 구주이십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분이십니다. 그분과 더불어 함께 있는 것은 그분과 더불어 희락하는 것인데 슬픔을 토로하는 금식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금식과 같은 규정은 예수님께서 오시면 없어질 것이었습니다(골 2:16, 히 9:10).

 

그런데 금식 규정 준수 여부를 논하며 그것을 빌미로 책잡고자 하는 것은 실은 그들 자신을 율법 아래 놓아 스스로를 죄와 사망에 묶어 놓는 것이 되고 맙니다. 혼인집에서 울 수 없고 초상집에서 웃을 수 없듯이, 기쁨이 넘쳐야 할 때에 슬픈 마음으로 금식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다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실상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신 것은 그것 자체가 큰 기쁨이요, 복인 것입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모든 복이 예수님 안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쁨의 근원이십니다. 그런 분과 함께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장 귀한 보물을 소유한 사람이 기쁨을 억제할 수는 없듯이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사람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기쁨이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사실을 신랑과 신랑 친구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참으로 슬퍼하고 금식해야 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는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을 내다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혼인집 손님을 예로 들어 자신이 누구신지를 계시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이 자신을 좇는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먹고 마시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하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있는지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으로 기뻐하고 신앙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금식과 같은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 신앙해 나가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불신앙인지를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관계를 예로 들어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성을 설명하는 것을 통해서 금식의 무가치, 무의미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생베 조각과 헌 옷 비유와 새 포도주와 새 부대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왜 금식을 하지 않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21-22절을 보면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새 옷에서 조각을 내어 낡은 옷에 대고 깁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하면 새 것이 낡은 옷을 당겨 헤어짐이 더 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생베 조각은 탄력성이 뛰어납니다. 그에 반해 낡은 옷은 탄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빨래를 하면 생베 조각이 오므라들며 헌 옷을 잡아당겨 헤어짐이 더 심하게 됩니다. 마가는 새 옷과 헌 옷 비유에서 낡은 옷에 새 옷 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구약의 율법, 곧 전통과 관습 아래 살아갑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도래한 새 시대의 복음을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반면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통해 새 시대 복음을 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새 시대의 복음에 대한 의식 정도가 어떤 것인가 하면 낡은 구약의 전통과 사상 하에서 만들어 놓은 제도에 올려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도래한 새 시대의 복음, 곧 하나님의 복음에서 증거 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어 먹고 마시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의 제자들이 새 시대의 복음을 접하고 살아간다고 하면서 구약 율법에 매여 전통과 관습을 좇으므로 여전히 금식일 규정의 준수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 율법주의를 그대로 담고 있는 신앙은 형식적인 신앙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구약의 율법과 전통 아래 남아 있어서는 결코 복음적 신앙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구약 율법주의와 새 시대의 복음은 결코 화합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유사한 신앙이 항상 잠재적으로 잔재해 있으며, 발현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고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열심으로 금식과 기도를 통해 자기 의의 만족에 도취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금식과 기도 문제 뿐만 아니라 예배와 전도와 같은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 전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두는 경건과 자기 의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을 경계시킵니다. 디모데후서 3:5절을 보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출애굽의 시대 우리는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킨 은혜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곧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화목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 은혜에 기초해서 주님과 동행하며,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마가는 계속해서 ‘새 포도주와 새 부대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새 포도주가 발효하여 팽창하게 되면 낡은 가죽 부대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해 터져 포도주와 부대 모두 버리게 되고 맙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존 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가져야 할 메시아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회개의 물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들었습니다(마 3:1-12).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그들 선생이 자랑으로 삼고 있는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함을 들었습니다(요 12:34). 사실 모든 성경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기록되었습니다(눅 24:44). 메시아 곧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은 새 시대의 복음입니다. 그 분에 대해 듣고, 그 분을 바라봄은 새 시대의 도래의 특징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자에게 팽창되어 갈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자기 자신이 누구 신가를 증거 하여 계시함으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으로 복음은 모든 자에게 팽창되어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시아사상은 새 포도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서 메시아사상을 가지고 메시아의 도래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 안에서 여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적 전통과 관습을 그대로 답습하여 장로들의 유전과 제도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형식적 신앙을 고집하고 남아 있으면서 메시아의 도래를 바라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 결코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그들 자신을 정죄하는 심판이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비유를 통해서 그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복음은 낡은 율법과 전통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복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낡고 형식적인 부대를 버리게 하시고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복음을 담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복음잔치에 기쁨으로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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