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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마가복음 공부


많은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3:7-12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편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신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책잡기 위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도 안식일에 한편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시는 사건을 살펴봤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예수님은 더욱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헤롯당과 연합하여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몰려온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심지어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님을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1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셨습니다(12).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1장에 이어서 두 번째입니다. 마가복음 1:29-34절에 보면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대로 예수님께서는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때 귀신이 예수님을 알므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마가는 이와 같은 내용을 오늘 본문에서 두 번째로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7-8절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으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편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바리새인들은 평소에 상종치도 않았던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꼬 의논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의 갈등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의 계획을 아시고 회당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로 물러가셨습니다. 이제까지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공격적으로 대응해 오셨습니다. 그들과 금식에 대해 논쟁을 하시고, 안식일에 대해 논쟁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책잡고자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도전하여 안식일에 한편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들과 더 큰 갈등으로 발전하기 전에 회당에서 떠나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로 물러가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행하십니다. 그런데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가르쳐야 할 교훈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13절에서처럼 더 이상 종교지도자들과 갈등을 피하여 무리들과 제자들을 가르치고자 회당을 떠나 바닷가로 물러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로 나가셨을 때 큰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온 지역과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온 허다한 무리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큰 일 곧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에 대한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습니다. 아마 이들 대부분은 예수님께로부터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단순한 호기심을 가지고 몰려온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같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온 종교지도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가지고 나온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여튼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몰려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9-10절을 보면 “예수께서 무리의 에워싸 미는 것을 면키 위하여 작은 배를 등대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고 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가까이로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에워싸 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셨기 때문에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너도나도 할 것없이 예수님을 만지기 위해서 달려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바다에 빠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무리의 에워싸 미는 것을 면하기 위하여 제자들에게 작은 배 한척을 등대하도록 곧 준비시키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당시 상황을 능히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밀려오는 무리들로 인해서 배를 띄워서 무리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배를 강대상 삼아 무리들을 마주하여 가르치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가가 오늘 본문을 기술하면서 갈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 근처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가가 왜 이렇게 갈릴리와 유대를 넘어서 이방 땅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든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영향권이 유대와 예루살렘 지역에 제한 되었던 세례 요한의 영향권보다 더 컸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함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5절을 보면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영향권은 온 유대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마가는 예수님의 영향권을 갈릴리와 온 유대와 예루살렘을 뛰어 넘어서 이방에 미쳤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사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두로와 시돈은 주로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입니다. 곧 이방 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향권은 이스라엘 전역뿐만 아니라 이방인 지역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향권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지역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이사야 49:6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의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49:6절을 보면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9장 말씀은 여호와의 종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여호와의 종은 야곱의 지파를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서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하는 일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종을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겠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세상 만민의 메시아가 되십니다. 마가가 예수님께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온 갈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두메와 요단강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까지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의 메시아가 아닙니다. 세상 만민의 메시아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은 세상 만민의 메시아로써 사역을 담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가는 바로 이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방의 지명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만민의 메시아 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한편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신 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뿐만 아니라 귀신들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11-12절을 보면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몰려온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도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잠시 본 것처럼 예수님께서 귀신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세상에 알리지 말라고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참조. 막 1:29-34).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귀신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말라고 명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들에게 이와 같이 명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문맥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먼저는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가 하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시는 것은 복음전파 곧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에 의한 증거에 의한 것이지 결코 더러운 사악한 귀신의 증거에 의해서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 할 때에 도리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곧 귀신들린 자들이 증거 하기 때문에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직까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메시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 올바르게 성숙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백성들이 메시아에 대해서 오해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관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하여 이스라엘을 회복시킴으로써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압제당하고 있는 모든 현실에서 자신들을 건져내어 다스리시는 분으로서 유대인의 왕 차원을 넘어서질 않고 있었습니다.

 

한 예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보면 그들은 거기에서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의 떡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아 갔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적을 보고서는 생각하기를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이다. 자신들이 기다려 왔던 그 선지자이다’하고 말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잡아 자신들의 임금을 삼고자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14-15절을 보면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메시아관이 이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메시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바른 관념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메시아에 대한 오해를 가져와 그 일이 예수님의 사역을 가리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귀신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메시아에 대해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가는 이러한 이해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이사야 42:1-4절을 보면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했습니다. 마가가 예수님께서 한편 손 마른 자를 고치신 후에 있은 일로서 각종 병을 앓고 있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모습 곧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을 알게 해 주기 위해서 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메시아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택한 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보내심을 받는데 그것은 순전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의 관계성에 의해서 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며 모든 병든 자를 고치시는 일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계획을 이 땅에 실현하여 나아가시는 모습으로서 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온전히 해 나가십니다. 예수님은 그 일 때문에 보내심을 받았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여 나가심으로 그 일을 해 나가십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인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은 하나님의 택한 종 메시아의 사역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그에게 부어주셔서 그가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령을 보내실 메시아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하는 것은 성령과 메시아와의 특별한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곧 메시아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겠다는 문장의 맥을 통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공의’는 ‘심판’으로도 번역이 됩니다. 그리고 ‘이방’은 ‘나라들’, 또는 ‘온 세상’을 말합니다. 메시아의 사역이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통하여서 그들에게 알게 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단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전우주적으로, 다시 말해서 모든 이방인들, 온 세상 사람들까지 그 복에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은 그 메시아의 사역에 있어서 나타나는 특징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그는 다투지 않는다고 합니다. 들레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들레지도’라는 단어는 야단스럽게 떠듦을 의미합니다. 곧 잘난 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메시아는 사역을 수행해 나가실 때에 야단스럽게 떠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잘난 체 하지도 않습니다. 메시아는 잘난 척하며 앞으로 나서지도 않고 자기를 요란스럽게 선전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합니다. 길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자가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모든 표현들은 메시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잠잠하셨다, 입을 다무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적을 행하시는 외적 과시나 그와 같은 주의를 끌만한 능력 행함을 통하여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키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죽일 음모를 하는 것을 알고서는 그들을 피하시고, 또한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이 소리질러 외치는 것을 못하게 막으신 것은 다 그런 의도에서 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과 메시아로서 하시는 사역을 올바르게 이해되는 것은 그들의 이성과 지성에 호소하여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설득케 하심과 복종케 하심에 의하여 되어지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은 메시아는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셔서 자기에게로 나아오게 하시는지를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17-21절을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42:1-4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상한 갈대’는 인간의 약함을 의미합니다. ‘꺼져가는 심지’ 역시 인간의 무력함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연약한 인간의 삶을 그려줍니다.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는 공의를 베풀어 이길 때까지라는 말입니다. 결국 이 모든 말씀은 인간 스스로서는 메시아를 알 수 없고, 그래서 메시아의 사역에 복종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러한 인간이지만 메시아의 공의로 말미암아서 세상에 있는 죄를 정복하고 그의 공의가 다스리는 때까지 그들을 내버려두시지 않고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곧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보게 합니다. 온 세상에 그의 이름을 드러내시어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 사실을 예언하였고, 예수님은 그 예언을 이루시는 것으로서 때로는 사람들을 피하시며,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못하게 엄히 명하셨습니다.

 

이상의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많은 무리가 몰려들 때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이 있기까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기시고자 하셨습니다. 동시에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무리의 입에서 무르익은 고백이 나오기를 기대하십니다. 하지만 그때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실 것이고 무리를 직접 지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때 무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시며, 하나님 나라의 도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섬겨줄 일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증언하고 보여줄 수 있는 공동체, 곧 하나님 나라를 모형으로 드러내었던 구약의 이스라엘 공동체와는 다른 새로운 형식의 공동체가 세워지기 위해서 그 터전을 놓을 인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은 열 두 사도를 세우시는 배경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우리로 예수님이 세상 만민의 메시아이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영적인 메시아이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나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메시아로 영접하고 그 분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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