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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온글입니다. 개혁교회 올바른 예배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시급히 개혁되어야 할 그릇된 예배 문화

                                                                                          김병혁 목사(솔리데오 그로리아교회)

 

종교개혁자들이 교회 개혁 운동을 주도함에 있어서 가장 구체적이며 실제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던 분야가 예배 개혁이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성경의 정신에 따라 예배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중세 교회의 전매특허와 같았던 자의적 예배, 형식적 예배의 폐단을 개혁하여 성경과 신앙고백(교리)에 충실한 예배를 구현하였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국 교회는 교파와 교단과 상관없이 종교개혁적 예배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부흥과 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시대적 변화와 유행을 좇아 거침없이 성경적 기준과 범위를 벗어난 온갖 형태의 예배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종교개혁자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문답과 예배모범을 통해 성경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예배에 관한 교훈과 규정을 전해 준 바 있습니다. 이 내용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전반적인 한국 교회의 예배가 얼마나 개혁주의적 이해와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말씀에 합당한 예배 개혁에 관심을 갖고, 참된 예배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덧붙여 예배와 관련하여 한국 교회에 잘못 토착화되어 시급히 개혁이 필요한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예배 순서에 여러 사람을 참석시키는 경우

 

한국 교회는 예배 순서에 여러 사람이 강대상(설교단)에 오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예배 참여라는 명분으로 예배 순서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구성하여 여러 사람이 예배 순서에 직접 참여하도록 만듭니다. 특히 어떤 일을 기념하는 예배에는 모든 순서 하나하나를 쪼개어서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어떤 경우에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축사하는 순서까지 예배 순서에 집어넣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한 예배일뿐입니다. 매우 불필요하고 과장된 의식입니다.

 

2. 헌금한 사람의 이름을 일일히 거명하여 복을 빌어주는 행위

 

한국 교회만큼 헌금 종류가 많은 교회는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예배 시간에 목사가 헌금한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말하면서 일일히 축복을 빌어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기복주의 신앙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헌금은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이어야 합니다. 현세적인 복을 받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됩니다. 또한 헌금의 종류도 대폭 줄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각종 절기 헌금과 구약의 의식적 헌금을 그대로 도입하여 마치 많은 헌금을 내는 사람이 믿음이 더 좋은 양 왜곡하고 있습니다. 헌금한 사람들의 이름을 주보에 기재하고 소개함으로 그릇된 경쟁심을 부추기는 행위도 중단되어야 합니다.

 

3. 멀티미디어 예배 & 스크린 예배

 

한국 교회내에 예배 시간에 멀티미디어기 사용은 유행을 넘어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만 규모 있는 교회를 가보더라도 예배당에 대형 프로젝터와 ppt를 이용한 시각적인 예배를 하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더욱 심각합니다. 사람들의 상상과 고안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님(특히 제2위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아무렇게나 소개하거나 세상의 그림과 음악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그때문에 회중들은 말씀을 듣기 보다는 예배를 관람(?)하는 관중이 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경우는 목사가 있음에도 스크린 중계를 통해 담임 목사 혹은 유명 목사의 설교를 듣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4. 성가대 중심의 예배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예배 시간에 성가대 중심의 찬양보다는 회중 찬양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성가대를 포기할 수 없는 교회 형편이라면 성가대를 좀 더 성경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가대를 위해 특별석을 배치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중과 함께 앉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성가대는 너무 화려하고 기교가 많은 노래를 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회중을 의식하는 성가대는 오히려 회중들로부터 말씀에 대한 관심과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대신 감정과 느낌을 충실하게 하여 예배를 그르치는 주범이 될 수 있습니다. 보다 높은 수준의 성가대를 위해 사례를 주어 믿지 않는 전문 음악인이나 연주자를 초청하는 것은 교회를 극장으로 만들겠다는 심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5. 설교단 혹은 강단을 지나치게 장식하는 일

 

어떤 교회는 많은 돈을 들여 설교단 혹은 강단 주변을 치장하곤 합니다. 매주 값비싼 꽃으로 강단을 장식하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강단 뒤쪽에 수입산 목재를 이용하여 만든 십자가 형상을 만들어 세우고 조명등을 설치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런 일을 루터가 안다면, 당장 그것을 팔아 교회에 있는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야단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사례를 더 말하면, 설교단이나 강단을 성역화하는 태도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아예 금줄을 걸어 놓고 설교단이나 강단에는 아무나 다가갈 수 없도록 하기도 합니다. 설교단과 강단을 회중석과 의도적으로 차단시킴으로써 말씀을 전하는 자가 일반 회중보다 영적으로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이는 로마 카톨릭이나 이단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개혁주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태도입니다.

 

6. 예배 중에 사적인 광고를 하거나 박수를 치는 경우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예배 중에 광고를 하는 것을 매우 당연시합니다. 교회 광고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광고를 빙자하여 목회자가 농담과 우스갯소리를 하거나 회중을 야단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참 몰지각한 일입니다. 교회에 알릴 것이 필요하면 주보나 다른 방법을 통하여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굳이 예배 시간에 광고를 넣거나 인간적인 교제를 위한 순서를 가미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한 예는 종교개혁자들의 예배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어야 할 예배에 사적인 말로 예배의 경건성을 흐뜨러트리는 것은 매우 불경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박수치는 행동을 조장하거나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예배 시간에 사람을 소개하고는 그를 위해 박수치게 하는 행동은 삼가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적 관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일입니다.

 

7. 성찬식이나 세례식에서 집례자가 흰 장갑을 끼는 일

 

거룩한 예식이라는 생각에서 성찬식이나 세례식에서 흰 장갑을 끼는 것을 선호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흰 장갑이 과연 거룩함의 표상이 되는가도 문제이지만, 성찬식이나 세례식이 주일 예배보다 더 거룩하다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말씀보다 의식을 더 중요하게 혹은 더 거룩하게 취급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태도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 굳이 장갑을 착용할 이유가 없다면 성례를 집례할 때도 그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8. 경건하지 않는 노래와 춤을 허용하는 경우

 

한국 교회에는 성경적, 신학적, 교회사적으로 출처를 알 수 없는 노래와 춤(율동)이 교회 안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도 복음송, ccm의 흥겨운 가락에 맞춰 손을 높이고 몸을 흔들면서 노래하는 모습은 어느 교회에서든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일상적인 교회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 젊은층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혁주의 관점에서는 매우 낯설고 이질적인 모습입니다. 개혁교회는 음악에 있어서도 말씀에 합당한 경건성과 거룩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신자가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서 은혜와 질서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개혁자들은 시편 찬송을 하였습니다. 설령 시편 찬송만은 아니라 하더라도 성경과 교리에 합한 찬송을 선정하여 진심어린 고백과 감사를 담아서 불러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예배 음악 개혁과 실행은 더이상 미뤄 둘 수 없는 매우 시급한 사안입니다.

 
9. 누구나 하는 공예배 목회기도

 

공예배시에 목회 기도를 목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는 장로이고, 어떤 경우에는 집사나 일반 성도가 하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일 공예배에서 하는 목회기도는 목사가 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목회는 목사의 본연의 사역이며, 바른 신학적인 관점에서 기도할 수 있는 이는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사와 방불한 장로라면 그에게도 허용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에서는 공예배 목회 기도를 장로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만약 교회에 또다른 교역자가 있다면, 차라리 그에게 목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목회 기도를 아무나 하려 해서는 안 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목사를 의식한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허락해 준(?) 목사를 위해 과도하게 칭찬하거나 높이는 말로 기도하는 것은 바른 신앙의 태도가 아닙니다. 기도를 가지고 인간적인 관계를 위한 방편으로 삼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10. 예배마다 다른 방식으로 행해지는 경우

 

한국 장로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예배에 대한 일정한 규범이 없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존중하고 그 가르침에 따른 예배 모범을 받아들인다면 교회마다 예배 순서와 규정이 크게 다를 수 없습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예배 본질의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장로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장로교회 간판을 달고 있는 교회마다 예배 순서와 규범에 있어서 통일성을 볼 수 없는 현실입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마다 순서와 형식을 달리하여 회중의 입맛에 맞는 예배를 스스로 고르도록 배려(?)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을 교회 자랑이라고 드러내기도 합니다. 역사적 장로교회를 지향하는 성도에게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개혁주의 전통을 존중하는 교회라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맞는 예배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시대 상황과 회중의 반응에 따라 즉흥적이고, 감상적이고, 자의적인 예배를 창안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의 다양성은 예배의 진실성보다 결코 우위개념이 될 수 없습니다.

 

11. 특정한 사람끼리 모이는 예배

 

공예배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모든 성도가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적인 예배입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공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효율과 효용의 법칙에 따라 예배를 분화하는 추세입니다. 주일날 어린이예배, 청소년예배, 청년예배, 장년예배 등의 이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각 예배의 순서와 형식도 다를 뿐 아니라 말씀도 다릅니다. 이러한 교회적 상황에서 세대 간의 신앙적 일치를 이루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세대 간의 독자성만 강조될 뿐, 보편 교회의 통일성을 해치는 예배 형태임에도 많은 교회들이 잘못된 예배 문화를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말씀에 충실한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에서는 갓난 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지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가 함께 참여하는 공예배를 강조합니다. 언약에 충실한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가 한데 모여 한 고백과 한 믿음과 한 성례와 한 성령 안에서 예배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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