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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이승구 교수의 글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제까지 개혁주의 입장에서 바른 설교에 대해서 많이 배워왔고 바르게 설교하기 위해 힘써 왔는데 이 글이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바른 설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승구 교수 : 여러가지 이상한 이야기가 많아서 개혁주의적 설교관을 제시하는 일련의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우선 이 글에서는 바르트의 입장과 개혁파 정통주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우리가 과연 취하고 나갈 길이 어떤 것인지를 숙고했으면 합니다.

 

2016년 특강 : 개혁주의적 설교관(1)

 

은혜의 방도인 하나님의 말씀

 

이승구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개혁신학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신학이다. 그런 점에서 개혁신학은 어거스틴의 은혜 이해를 계승하고 이를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더 철저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개혁신학의 입장이다. 이 말을 수사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아주 철저하게 이 논지를 주장한다.

 

따라서 개혁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sola gratia) 의존한다. 그것이 바른 믿음이다(sola fide). 이 믿음으로만 우리는 구원을 얻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중요하게 여긴다. 구원도 그러하고, 교회와 예배와 삶에서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은혜 전달의 통상적 방도들

 

그런데 개혁파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되 통상적으로는 은혜의 방도(media gratiae)를 사용하셔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여 신도를 중생시킨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개혁신학에서는 마치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말씀 안에 갇혀 있는 것을 시사(示唆)하는 루터파 신학자들이 애용하는 '말씀을 통하여'(per verbum)라는 용어의 사용을 자제한다. 오히려 성령님께서 '말씀을 사용하셔서, 또는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는 뜻으로 '말씀과 함께'(cum verbo)의 원리를 강조해 왔다. 이렇게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강조하는 게 개혁파의 입장이다. 그러므로 개혁파는 성령님과 말씀 모두를 강조해 왔다.

 

통상적인 '은혜의 방도'(media gratiae)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즉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visible word of God)인 성례만을 언급하기도 한다. 기도를 더해 은혜의 방도로 제시하기도 한다.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 사상과 감정과 세계관을 고치고, 결국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고 적용시켜 주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이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작용해 은혜를 베풀게 되므로 결국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한 측면이 된다. 그러므로 기도를 은혜의 방도로 언급하는 것이나 기도의 과정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나 결과는 같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은혜의 방도가 되는 말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눈에 보이는 말씀'(verbum visibile)이요, '이미 믿는 신자들의 믿음을 강화시키는'(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5문) 은혜의 수단인 성례에 대해서는 2014년 로버트 레담 교수가 이미 논의한 바 있으므로, 이번에는 은혜의 방도로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 verbum invisibile)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만 논의하기로 한다. 루터파와 개혁파에 의하면 일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울이 말한 바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도가 어떻게 우리 가운데서 나타나는지를 살피는 게 우리의 종국적 목적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역사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나님 말씀의 삼중 형식 중 '기록된 말씀' 중심의 이해

 

개혁신학에서는 늘 하나님 말씀의 삼중 형식에 대해서 이야기 해 왔다. 성육신하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the living word of God)이신 성자와 구약에서 성육신 이전의 그가 기록돼 있고, 신약은 그야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the written word of God)인 성경, 그리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the proclaimed word of God)인 설교가 하나님 말씀의 삼중 형식이다. 사람들은 이를 20세기에 유행시킨 칼 바르트 때문에 흔히 이런 용어와 이해를 바르트가 만들었다고 많이들 오해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것이 루터와 개혁자, 정통파 교회가 항상 하던 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참으로 바르트 이전에도 성경적인 신학이 늘 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 중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전개하여 소위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monism)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 이해를 제시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중심이고 유일한 계시가 된다. 그는 이런 입장에서 구약과 신약의 내용을 계시와 직접 동일시하기를 거부했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자신이 유일한 계시라고 여긴 그리스도에 의해 판단하려 했다. 그에게 그리스도가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이다(the Word of God). 바르트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논하면서 상대적이지 않은 "계시 자체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다른 것이 아니며, 그 안에서 성취된 화해와도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에 비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인간의 말이요, 성령께서 역사하사는 순간에만 하나님 말씀이 된다. 그러나 그것인 하나님 말씀인 것은 오직 계시의 순간에서고, 그 순간도 역사와 시간 안에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바르트는 성경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계시의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werden) 것으로 보았다. 계시에 대한 증언으로 여길 뿐이었다.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은 계시를 참으로 증언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르트는 이를 이 시대에서 신학이 살아 있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도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어야 하며, 오직 그런 면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다.

 

"선포는 참으로 계시를 약속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에게 이 세상 시공간에 있는 것은 모두 특정한 잠정성만을 가지고 있다. 항상 궁극 이전의 것(pen-ultimate)이다. 그에게는 항상 시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그리스도만이 중요하다. 이것이 소위 '말씀의 신학'의 근간이 되는 내용이고, 여기서 그의 역동적 특성이 늘 드러난다. 바로 이런 의미의 역동성이 바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 일원론이고, 그리스도 중심주의이다.

 

이에 비해 개혁파 정통주의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중심적 입장을 견지한다. 개혁파 정통주의는 성경을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긴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전했고 기록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모압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신 28:2)라고 말했다. 성경 기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것은 예수님 자신의 입장이기도 했다는 것을 우리들은 강조한다. 예수님께서는 고르반이라는 말을 하면서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유대인들의 잘못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 15:6)고 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것을 소개하면서 '기록되었으되'라고 강한 권위를 부여하면서 말하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성경 기록을 언급하시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되"(마 22:31)라고 하신다. 성경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성경 자체가 성경에 있는 것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로마서 12:19)고 하여, 구약 말씀을 인용해 이를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 개혁파 선배들은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언급하기로 기뻐하였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하여 중요한 한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성경이 완결되자 이제 특별 계시를 새롭게 형성하는 요소들이 더 이상 덧붙여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왔고, 그의 사역은 다 이루어졌고, 그의 말씀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별 계시가 완성된 상황에서는 특별 계시는 성경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현존하며 계속 지속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를 아주 분명히 천명한다. 우리는 제1장 성경에 대한 고백을 하면서 1항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던 과거의 방식은 이제 중지되어 버렸다"는 진술과 6항 중에 진술된 "이 성경에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 아니면 인간들의 전통에 의해서이든 아무 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가 없다"는 말을 중시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까지 계속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특별 계시사(historia revelationis)는 그쳐졌으나 구속사(historia salutis)는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빙크가 잘 표현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객관적인 특별 계시는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완성되었고, 그 계시의 효과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 인류 역사에서 완전히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혁파 정통주의도 지금도 살아 계시고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모두 중요시하여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으로 신학을 하려 하기에 개혁파 정통주의의 그리스도 중심주의는 결국 삼위일체 중심주의가 된다(바르트도 삼위일체를 말하나 그의 삼위일체 이해는 정통적 삼위일체 이해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드러내 정통파 신학자들은 그가 제시하는 방식에 대하여 안타까워한다).

 

개혁파 정통주의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도 하늘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며 경배한다. 그런데 그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 바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기에 개혁파 정통주의는 인식론적으로 성경으로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 있기에 정통파 그리스도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님께서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는 "객관적 계시에 새로운 것을 첨가한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계시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신자가 이 객관적 계시를 알고 자신의 것으로 삼도록 도울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성령의 사역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다른 이름들, 특히 조명과 중생으로 불린다."(고후 4:6, 요 3:5) 바빙크는 "분명한 구분을 위해(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님의 사역은) 조명으로 지칭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를 들면, 바울 사도가 옥에 갇혔을 때도 사도가 전한 말씀을 다른 형제들이 그대로 전하는 것에 대해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빌 1:14)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설교가 바른 설교이고 하나님 말씀의 전달이려면 항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하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에 대해서도 우선권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말 성경에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번역된 선포로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므로 기록된 말씀은 항상 선포되고 풀어 설명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개혁파 정통주의는 설교를 항상 강조했다. 성경 없이 선포될 게 없고, 선포 없이는 효과적인 전달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선포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전 1:21)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를 원하신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그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처음에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모스는 자신이 선포하는 것에 대해 이것이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고 한다. 따라서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다.(암 3:13) 스가랴가 하나님을 대언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역대하 24:20, 강조점은 덧붙인 것임)고 한다.

 

또한 예레미야가 이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신 이 모든 말씀을 말하기를 마치니”(예레미야 43:1, 강조점은 덧붙인 것임). 이처럼 구약에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선지자들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신 27:10; 신 28:10; 수 3:9; 수 23:14-15; 삼상 9:27; 삼하 7:25, 28; 왕상 20:28; 왕하 22:15; 왕하 23:16; 대하 33:18; 사 21:17; 렘 23:23; 렘 25:27; 렘 39:16; 렘 42:20-21; 렘 45:2). 따라서 구약의 신실한 백성들은 선지자가 전하는 말에 대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서 엘리야에게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왕상 17:24)라고 했다.

 

또한 처음 신약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 가운데서도 열심히 기도하고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고 말하는 것에서도 사도들에 의해서 선포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해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행 13:5)라고 하며,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행 13:44)라고 하여 바울이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공표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고 했다.(행 18:11) 따라서 사도들의 말을 듣고 복음을 믿는 것에 대해서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행 11:1)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선포한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성문화하기를 원하여 성경이 형성되고 우리에게 계시로 주어진 것이다.

 

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계속해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읽히고 사람들에게 들려지기를 원하셨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도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고 했던 것이다. 또한 골로새서를 보내면서 바울은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골 4:16)고 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기록된 말씀도 선포되고 들려지기 원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의 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선지자나 사도가 선포한 것과 그것을 기록한 것과 우리들의 선포를 정확히 비교하여 연속성과 차이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선지자와 사도들이 선포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들이었다. 나단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대상 17:3),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대하 11:2)을 잘 생각해 보라.

 

만일 하나님께서 직접 주지 않은 걸 선포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로 여겨졌다.(신 18: 20, 22) 이렇게 하나님에게 받은 말씀을 전하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선포 속에 성령 하나님께서 영감 해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을 기록하게 하신 게 성경이다. 여기에 선지자와 사도들의 선포와 성경의 연속성이 있다. 성경 기자들이 기록한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직접 준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오늘날 목사님들이 설교하는 말은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한 하나님의 말씀이고(여기에 연속성이 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다(여기에 비연속성이 있다). 여기서 개혁주의적인 바른 설교와 신비주의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조엘 비키도 이와 같은 의미의 말을 다음같이 표현한 적이 있다.

 

"신비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경험을 분리시키는데 반해,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은 말씀 중심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스도를 높임,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같은 경험적 기독교를 요구한다. 이런 설교만이 본질적으로 교회의 건강과 번영을 가져 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경에 근거해 지금 여기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전달해야만 한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회중에게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우리의 다음 주제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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